[소년중앙] 까치밥 남겨두는 마음과 팥배나무의 공통점

김현정 2022. 1. 1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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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 해가 시작됐습니다. 소중 독자 여러분은 새해 첫날 일찍 일어나 해돋이를 봤나요?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소원도 빌었나요? 올해는 코로나19로 일출 명소인 동해안 쪽에 직접 찾아가서 해돋이를 볼 수는 없었을 텐데요. 대신 저마다 자기 위치에서 해를 보았을 겁니다. 시간의 차이는 조금 있지만 동해안 정동진에 떠오른 해는 우리 집 위로 떠오르는 해랑 같은 해입니다. 해돋이 명소에 가서 해가 뜨는 걸 못 봤다고 너무 실망하거나 아쉬워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새해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 늘 춥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겨울이니까요. 겨울에는 옷도 두껍게 입고, 난방을 강하게 하고, 추운 밖으로는 잘 나가지도 않습니다. 인간이 과거 자연에서 살았을 때를 생각해보면 지금의 삶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락하고 편리하죠.
이에 비하면 자연의 생물들은 얼마나 힘들까요? 개구리나 뱀 같은 동물은 땅속 깊이 들어가 겨울잠을 자고 식물들도 일부 상록수를 제외하면 잎을 떨어뜨리고 잠시 쉽니다. 곤충들도 역시 일부를 제외하고는 겨울은 좀 쉬어가지요. 몇몇 예외는 있지만 포유동물이나 새들만이 겨울에도 활동하며 살아갑니다. 특히, 새들은 도심에서도 쉽게 우리 눈에 띄는 편이에요.
새는 크게 철새와 텃새로 나뉘는데요. 철새는 자신의 환경에 맞게 장소를 옮겨가며 살아갑니다만 텃새는 자신의 고향에 적응해서 계절이 바뀌어도 떠나지 않고 내내 살아갑니다. 참새나 까치, 까마귀, 직박구리 같은 새들이 대표적이죠. 그러한 텃새들도 혹독한 겨울은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나무에 매달려 있는 열매들이 겨울을 나는 데 도움을 주죠. 솔씨나 단풍씨앗도 좋고, 도토리도 먹을 게 많아 좋은 음식입니다. 특히, 빨간색을 띠고 과육이 단맛이 나는 것들이 새들의 주된 밥상인데요. 팥배나무·찔레나무·낙상홍·가막살나무·남천 등은 겨울이 되어도 특유의 빨간색 열매를 매달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그중에서 이번에는 ‘팥배나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아마 이름이 낯설고 처음 들어본 친구도 있을 텐데요. 팥배나무는 원래 깊은 산 속에 살지만 꽃과 열매가 예뻐서 공원에도 많이 심고, 마을 근처 산에서도 볼 수 있어요. 열매는 팥을 닮고, 5월에 피는 흰 꽃은 배꽃을 닮아서 팥배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팥배나무 열매는 가을에 흰 가루가 묻은 듯한 모습으로 붉게 열리는데요. 그대로 건조해지면서 겨울 산에서 만나게 되면 영락없이 팥처럼 생긴 모양이에요. 새에게는 그 작은 열매도 겨울을 나는 데 큰 도움이 되죠.
팥배나무는 한자로는 감당(甘棠)이라고도 부릅니다. 이에 얽힌 감당지애(甘棠之愛)라는 말이 있어요. 옛날 중국의 어떤 관리가 주민들을 위해 선정을 베풀어 사랑과 존경을 받았어요. 그가 주로 정사를 맡아 보거나 쉬던 곳이 팥배나무 아래였다고 합니다. 그의 선정을 기억하기 위해 감당, 즉 팥배나무를 자르지도 꺾지도 말고 아꼈다는 데서 감당지애라는 말이 나왔다고 해요.
이런 이야기가 전해와서인지 팥배나무를 보면 왠지 새들에게 선행을 베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겨울에 굶주리는 새들을 위해 계속 매달고 있는 그 열매가 감사할 따름이죠. 우리 조상들도 감을 딸 때 모두 따지 않고 새들을 위해 한두 개는 남겨두었는데요. 흔히 말하는 ‘까치밥’이 바로 이것이죠. 그 마음이 감당지애와 통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 가을에 열매를 땅에 떨어뜨리고 겨울을 나고 봄에 싹이 돋아나야 하는데 너무 늦게 번식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할 거예요. 사실 생각해보면 식물의 입장에서는 이듬해 봄에 싹이 나서 자라면 되는 것입니다. 3월에 돋아나야 한다면 그전까지만 땅에 떨어져 뿌리를 내리면 되는 거죠. 팥배나무는 새에게 열매를 내어주지만 새 덕분에 씨앗이 멀리 이동도 하고 번식에 도움을 받습니다. 팥배나무 말고도 아주 많은 식물이 겨울에도 열매와 씨앗을 이동시키지요. 조금은 삭막한 겨울, 빨간 열매를 매달고 있는 팥배나무를 보며 작은 것이지만 다른 존재에게 도움을 주고 자신의 미래에도 서두르지 않고 있는 여유로움을 함께 느껴보면 어떨까요?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그림=황경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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