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거인의 기억을 잃은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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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과 비아냥거림은 이제 만연하는 정도를 넘어서 거의 시대정신이 된 듯하다.
소셜미디어를 보면 다들 내가 싫어하는,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를 놀리고 능멸하는 데 열과 성을 다한다.
"과거의 무질서를 인간의 본성 탓으로 돌리는 대신 시대 탓으로 돌리자. 시대가 바뀌면 타당한 희망의 근거가 생겨나게 마련이다." 정신승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낡은 것이 죽으면 새로운 게 태어날 것이란 희망을 갖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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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과 비아냥거림은 이제 만연하는 정도를 넘어서 거의 시대정신이 된 듯하다. 소셜미디어를 보면 다들 내가 싫어하는,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를 놀리고 능멸하는 데 열과 성을 다한다. 그런 말들은 길지 않아도 상대를 증오하고 혐오하는 마음이 듬뿍 담겨 있어 임팩트가 강하다. 대선이 임박하니 사람들의 정념도 활활 타오른다. 놀림과 빈정거림이 더욱 맹렬해진다는 얘기다. 이런 풍조가 아름다울 리 없다. 상스럽고 비루한 세태다.
하지만 사람들의 조롱과 비아냥거림이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대선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새 시대의 희망 따위는 저 멀리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선대위를 떠난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은 “우리나라에 여러 문제가 산적해 있어 대통령 되는 사람이 국정을 완전히 쇄신해 세계 속에 다음 세대가 중심으로 들어갈 디딤돌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후보가 본인 말을 듣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에서 나온 발언이겠지만, ‘국정을 쇄신할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에는 많이들 공감할 것이다.
한 후보는 대중의 환심을 사려고 온갖 돈 퍼주기 공약을 쏟아내기에 바쁘다. 그럴 돈이 어디 있냐고 물으면 세금 걷으면 다 된다고 한다. 자신에게 불리한 의혹 사건에 대해서도 뻔뻔함으로 일관한다. 그런 식의 대응이 가능하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다른 후보는 너무 많은 헛발질로 인해 애초의 ‘강단 있는 투사’ 이미지는 온데간데없고 ‘아무 생각 없는 바보’ 캐릭터만 생겼다. 당 내분이란 악재까지 더해져 여기서 완전히 주저앉고 마느냐, 아니면 기적적으로 다시 일어서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반사이익으로 급부상 중인 제3의 후보는 예전에 대중의 놀림을 한 몸에 받았던 인물이다. 조롱을 오랜 시간 견디다 보니 그에게 ‘별의 순간’이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한심한 처지에 놓인 게 우리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다소 위안이 된다. “서구에서 1945년 이래 정치 제도권에 대한 환멸이 지금처럼 심한 시기는 없었다. 이런 불만과 불편이 오래 지속될 것 같다.” 영국 역사학자 도널드 서순이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이란 책에서 밝힌 현 실태 진단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에 등장한 세계는 성장과 안정, 교육 확대를 통해 젊은이들이 자기 부모보다 더 잘 살고 더 자유로울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 세계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기대를 할 수 없게 됐다. 유럽에선 기성 정당들이 몰락하는 가운데 복지 정책은 쇠퇴하고 외국인 혐오만 팽배해지고 있다. 서순은 “기존의 제약 안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지도자와 정당이 나타나서 구원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병이 심각하지 않은 시대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라는 희망을 잃었다”고 단언했다. 그의 혹독한 논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병든 시대에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오르는 것’이 불가능하다. 지금은 거인들에 대한 기억을 잃은 난쟁이들의 시대다.” 좋았던 옛 시절의 위대한 지도자들에 대한 기억조차 잊은 시대란 뜻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병든 시대, 난쟁이들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해선 안 된다. 어떻게든 조롱과 환멸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마키아벨리의 말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과거의 무질서를 인간의 본성 탓으로 돌리는 대신 시대 탓으로 돌리자. 시대가 바뀌면 타당한 희망의 근거가 생겨나게 마련이다.” 정신승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낡은 것이 죽으면 새로운 게 태어날 것이란 희망을 갖는 게 좋다. 그래야 계속 살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천지우 정치부 차장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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