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노동이사제, 공공부문 개혁과 병행해야

2022. 1. 10.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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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민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부)


공공기관 노동이사제가 국회에서 통과될 전망이다. 모처럼 여야가 합의한 사안이지만 일각에서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는 종업원의 경영 참여를 가능하게 해서 경제 민주화에 도움이 된다. 공공기관이 외풍을 받지 않고 경영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해 본 결과 흔히 걱정하는 것처럼 의사 결정의 지연이나 노동조합 이기주의 같은 것은 큰 문제가 아닌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러 사외이사 가운데 한 명을 노동이사로 둔다고 해서 그런 문제가 크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에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현실적으로 공공기관장이 그 노력의 절반 이상을 노동조합과의 관계 유지에 투입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실정에서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가 들어오면 오히려 경영이 더 효율적으로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려도 있다. 이미 공공기관 종사자의 근로조건이 민간부문보다 나은 상태다. 한국경제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대기업·공공부문 종사자와 중소기업 종사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이중구조다. 그중에서도 공공기관 정규직은 청년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일자리다. 그렇게 공공기관이 인재를 흡수하면서 민간부문의 활력을 저해하는 측면도 있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는 그 종사자에게 경영 참여까지 할 수 있게 해줘 그런 문제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나아가 한국은 앞으로 사회안전망 확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 등 때문에 ‘큰 정부’로 가는 것이 불가피하다. 거기에는 국민의 부담을 줄여주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공공부문은 그냥 두면 언제나 방만해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국민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공공부문 개혁이 필수적이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가 그런 노력을 저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보다 더 큰 우려는 노동이사제가 민간부문으로 확대될 가능성이다. 지금 재계는 그럴 가능성에 대해 경악하고 있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노동이사제는 독일 같은 나라의 특수한 역사적 산물로서 보편적 제도가 되기 어렵고, 노사 관계가 적대적인 한국의 사정에서는 기업 경영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정부나 여당도 노동이사제를 민간에까지 확대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문제는 조만간 민간에서도 노동이사제를 도입할 수밖에 없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재계의 행태 때문이다. 그동안 수많은 개혁 노력에도 불구하고 재벌은 아직도 일감 몰아주기, 인수합병, 기업 쪼개기 등으로 총수 일가의 이익을 추구하고 그것을 통해 경영권을 상속하고 있다. 그런 행태를 제지하는 법을 만들어도 전관 변호사를 써서 빠져나가고, 총수 일가가 임명하는 사외이사는 거수기나 로비스트 역할밖에 못 하는 실정이다. 그렇게 해서 대규모 기업집단의 경영권이 재벌 3, 4세까지 대물림하고 있는데, 이들이 창업주인 조부나 증조부의 기업가적 재능을 물려받았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이들은 기업경영은커녕 직장생활도 제대로 해보지 않은 채 이사로 들어가곤 한다. 최고경영자가 되면 물려받은 기업집단이 이미 글로벌기업이 된 상태에서 세계적 창업주와 경쟁해야 하는 상태가 되니 그 기업집단뿐 아니라 나라 경제 전체의 장래가 불확실해진다. 이들이 법을 어겨도 나라 경제가 인질로 잡히다시피 하고 있으니 제대로 처벌할 수 없다. 유능한 젊은이들이 그런 세습체제하에서 가신 역할밖에 못 하게 되는 현실 때문에 공공부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이사회에 기업 내부사정을 아는 노동이사가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지 않겠는가. 독일의 특수한 사정이 노사공동의사결정제를 가져왔다면 한국의 특수한 사정이 노동이사제를 가져오더라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독일처럼 하지는 못하더라도 지금 공공기관에 대해서 하는 것처럼 사외이사 한 명을 노동이사로 넣는 정도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게 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는 도입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와 함께 추진해야 할 과제도 있다. 정부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하고 공공부문을 개혁해야 한다. 재계는 경영방식을 고쳐야 한다. 노동이사제가 기업경영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재벌의 행태를 개혁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이제민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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