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군부 앞 하나된 민족들.. 암울한 현실에도 '봄의 혁명' 꿈

임송수 2022. 1. 10.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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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쿠데타 이후 1447명 숨져
공동의 적 앞에 민족 단결 강조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미얀마는 여러 민족으로 나눠진 국가다. 하지만 이들 민족은 9일 국민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역사적인 아픔을 뒤로하고 이제 군부라는 공동의 적에 대응해 단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몬족 민쩌쏴린씨, 친족 찡찬회씨, 라카인족 수타진씨, 카친족 모람씨, 버마족 조모아씨.


“미얀마인들은 군부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한마음’으로 뭉쳤습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소수민족 출신 미얀마인들은 9일 국민일보와 가진 화상 인터뷰에서 역사적 아픔을 뒤로하고 ‘군부’라는 공동의 적에 대응하기 위해 민족들의 단결을 강조했다. 카친족 출신 모람(27·여)씨는 이같이 말하며 “민족통합정부(NUG)와 시민, 국제사회의 노력으로 군부는 반드시 무너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2월 1일 미얀마 군부가 문민정부의 압승으로 끝난 2020년 총선이 부정선거였다고 주장하며 쿠데타를 일으킨 지 어느덧 1년 가까이 지났다. 평화적 시위로 시작한 저항은 군부의 잔혹한 유혈 탄압 속에 내전으로 번졌으며, 여전히 군부는 탄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현지 인권단체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쿠데타 이후 군부의 폭력으로 이날까지 1447명이 숨지고 총 1만1421명이 체포 또는 구금된 것으로 집계됐다.


내전이 길어지고 있지만 미얀마인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민족 단결을 외치고 있다는 점에서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 몬족 출신 민쩌쏴린(34)씨는 군부 쿠데타가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수도권과 달리 소수민족 중심의 지방은 경제적 토대가 마련되지 않은 열악한 상황이었던 탓에 ‘민주주의’를 고리로 한 연대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에 군부가 무너진다면 과거와 달리 모든 지역의 민족이 민주주의를 위해 함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족들의 연대가 놀라운 이유는 미얀마에 뿌리 깊게 박힌 ‘민족 갈등’ 때문이다. 1948년 미얀마 독립 이후는 민족 분쟁의 역사이자 군부의 역사다. 미얀마 독립 영웅 아웅산 장군은 영국 식민지 시절 소수민족들에 협력을 요청하면서 그 대가로 미얀마 독립 10년 후 자치와 독립을 약속했지만 62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네윈은 이미 사망한 아웅산 장군의 약속을 백지화하고 버마 민족주의를 노골화했다. 이후 미얀마의 60년은 버마족 ‘군부’의 독재와 민족 갈등으로 점철됐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도 이들이 버마족과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다. 친족 출신 찡찬회(34·여)씨는 “최근 5년간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인권을 알게 됐고 자유를 사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라카인족 출신 수타진(29·여)씨는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인간답게 사는 것 하나”라며 “이미 군부 밑에서 수십년을 살아왔다. 다음 세대로 이 과제를 넘겨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행히 화합을 위한 첫발은 뗐다. 자치권을 인정하지 않는 허울뿐인 ‘연방공화국’ 미얀마에서 진정한 연방 민주주의 국가로 변모하겠다는 다짐이 그것이다. 지난해 4월 민주진영 인사들이 구성한 임시정부인 미얀마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는 민족통합정부(NUG) 수립을 발표하며 “NUG는 연방 민주주의 헌장에 따라 모든 민주주의 세력의 연립정부이자 집단지도체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NUG의 장관 13명 중 6명은 카친족과 카렌족, 친족 등 소수민족 출신이다.

다만 봉합이 아닌 화학적 결합을 위해선 해묵은 불신을 해소하는 게 필수 과제다. 모람씨는 “그동안 정부는 수차례 거짓말을 해 왔다”고 지적했다. 민쩌쏴린씨는 “민족들이 아직 서로를 믿지 못한다”며 “민족들이 단결하기 위해선 모두가 합의하는 헌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버마족인 조모아(48) 한국미얀마연대 대표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겠지만 민족들이 70년 동안 못한 화해를 해야 한다”며 이들의 우려에 공감했다.

다만 민족들의 연대가 이뤄지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올해 첫날부터 곳곳에서 동시다발적 시민 저항이 이어졌지만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2022년은 미얀마에 연방 민주주의가 확대되고 실현되는 시간이 될 것”이라며 사실상 정권을 내려놓을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더구나 올해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의장을 맡은 훈센 캄보디아 총리가 아세안의 미얀마 군부 배제 기조를 깨고 지난 7~8일 미얀마를 방문하는 등 국제 정세도 유리하게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군부의 집권이 장기화될 가능성에 대비해 무력뿐 아니라 국민들의 정치적 의식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국 대학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강의를 들으며 정치에 대해 배우고 있다는 수타진씨는 “교육을 통해 ‘민주화가 무엇인지’ ‘왜 민주화를 바라는 것인지’ 등에 대한 지식을 갖춰야 한다”며 “예컨대 한국의 민주화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알아야 우리의 민주화에도 참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28년 전 한국에 들어와 인권과 자유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는 조모아 대표도 “교육으로 국민의 정치적 의식을 높여야 한다”며 “민족들 간 화해도 결국 정치적 해결로 가능하다”고 밝혔다.

타지에서 새해를 맞은 이들의 개인적인 소망은 나라의 안녕이었다. 수타진씨는 “아이들이 학교가 없어서 숲속에서 공부하고 있고, 음악가를 꿈꾸는 이는 총을 들고 있다”며 “모두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꿈을 꾸면 좋겠다”고 바랐다. 민쩌쏴린씨는 “평화롭고 번영하는 나라가 돼서 어머니, 동생, 친구들이 웃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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