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인간 존엄성 실종된 규제 일변도의 코로나 방역

2022. 1. 10. 00:2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

지난해 12월 한 요양 병원에서 코호트 격리 중인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접한 유가족이 있었다. 임종은커녕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화장된 뼛가루만 받았다. “어머니의 마지막 길이 너무 외롭고 쓸쓸하셨을 텐데 염도 수의도 못 해드렸다. 사과 한마디 없는 정부에 한이 맺힌다”고 유가족은 오열했다.

이는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다. 지난 6일 현재 코로나19 출현 이후 2년간 발생한 사망자 5887명의 유가족 대부분이 비슷한 경험을 했다. 사망자들은 병원 입원 도중 가족의 얼굴·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조차 나누지 못한 채 임종에 이르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병원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회복되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다 사망 소식을 접한 유가족은 절망한다. 먼발치에서 고인의 얼굴조차 볼 수 없다. 뒤늦게 관련 규정을 고치겠다고 하지만 그간에는 ‘선 화장 후 장례’라는 방역 규제에 따라 화장된 유골함만 받는 게 우리의 현실이었다.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와 존엄성도 허락하지 않는, 잔인한 확진자 장례 지침이었다.

「 임종임박 환자에 가족 면회 허용
코로나환자 가족 면회도 검토할 때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 3월 가이드라인을 통해 “시신으로부터 코로나에 걸릴 수 있다는 증거는 없으며 시신을 화장해야 한다는 것은 ‘흔한 미신’에 불과하다” 고 단언한 바 있다. 미국 등 대부분 국가는 WHO의 기준을 채택해 왔다. 하지만 질병관리청은 팬데믹 발생 이후 ‘선 화장 후 장례’ 원칙을 고수해오다 지난해 2월 이를 지침으로 명문화하는 비과학적 행태를 보여왔다.

그동안 발생한 확진자 65만여명의 상황은 어땠을까? 입원 치료 기간 중 겪었던 보호자 면회 금지, 일상으로부터의 격리와 철저한 고립 및 소외 등은 인권과 존엄성 훼손 그 자체였다. 물론 코로나 대유행이란 공중 보건 차원의 위기 상황에서 감염병 예방과 관리의 중요성 및 필요성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방역 조치들은 최소한의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두어야만 한다. 아울러 환자와 가족의 인권과 자기 결정권을 최대한 보장하여야만 한다. 그럼에도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코로나 환자들이 병실에서 외로이 사투를 벌이는 동안 가족들의 면회는 허용되지 않는다. 환자 상태가 악화하여 임종이 임박해야만 가족에게 이를 통보하고 면회가 허용된다. 그나마 유리 벽으로 분리된 별도의 격리 공간에서 보거나 혹은 가족이 방호복과 안전 장비를 착용하고 병실을 제한적으로 방문할 수 있을 뿐이다. 임종이 임박한 경우는 말 그대로 죽음 직전의 상황이다. 환자는 의식이 없거나 기계 호흡기 등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래서는 환자와 가족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될 리 없다. 그저 행정적 요식 행위에 그칠 공산이 크다. 감염병 예방의 중요성과 병원 측의 어려움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코로나 환자에 대한 현행 격리 규제와 면회 금지, 그리고 비과학적 장례 지침은 인권 침해와 개인의 존엄성 훼손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가 전면 금지됐던 요양 병원과 요양원은 지난해 3월부터 예외적으로 가족 면회가 허용됐다. 임종 시점, 의식불명 및 이에 준하는 중증 환자, 또는 주치의가 환자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가족 면회가 가능해졌다. 3개월 뒤인 6월 들어서는 입원 환자와 면회객 중 한쪽이 예방 접종을 끝낸 경우까지 면회가 확대되었다. 이런 전례를 참고하여 코로나 환자에게도 최소한도의 가족 면회를 허용하는 것은 의학적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정부가 누누이 강조해온 ‘소외와 차별이 없는 포용적 방역’이 제일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은 누구보다 코로나 환자와 사망자, 그리고 가족이 돼야만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