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최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시드니 포이티어 별세..백악관 "세상 변화시킨 배우" 애도

나원정 2022. 1. 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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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시드니 포이티어가 2009년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에게 자유 메달을 받던 모습이다. [AP=연합]

영화 ‘들판의 백합’으로 1964년 흑인 최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할리우드 역사를 새로 쓴 배우 시드니 포이티어가 6일(현지 시간) 별세했다. 향년 94세.
AP통신은 7일 바하마 총리 대변인을 인용해 그가 전날 미국 LA 자택에서 숨졌다고 전했다. 미국과 카리브해 바하마 국적을 모두 가진 그는 1997~2007년 주일본 바하마 대사, 2002∼2007년 주유네스코 바하마대사를 맡기도 했다.
포이티어는 1950~60년대 할리우드 영화에서 피부색을 넘어 주연급 스타로 거듭난 선구자였다. 1927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시절을 수도‧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바하마 섬에서 보냈다. 부모는 가난한 토마토 농부였다.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한 포이티어는 15세에 형이 있는 마이애미로 갔다가 단돈 3달러를 들고 뉴욕으로 향했다. 광고를 보고 처음 본 오디션에서 카리브해 억양을 지적받은 뒤부터 미국 뉴스 앵커들을 보며 발음을 연습해 불과 몇 달 뒤부터 연극 무대에 설 수 있게 됐다.
연극배우 경력을 발판삼아 23세에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데뷔작인 영화 ‘노 웨이 아웃’(1950)에서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를 치료하는 의사 연기로 주목받은 그는 이후 흑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집는 캐릭터를 도맡으며 할리우드에서 흑인 연기자들을 위한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영화 ‘흑과 백’(1958)에선 인종주의자인 백인 죄수(토니 커티스)와 흑인 죄수가 하나의 족쇄에 묶인 채 벌이는 탈주극을 통해 흑백 인종 문제를 장르적으로 풀어내 흥행과 비평 모두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포이티어는 이 영화로 흑인 최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베를린영화제 은곰상(남자 배우상), 영국아카데미 최우수 외국배우상을 수상했다.


인종차별 농장주 뺨 때렸던 흑인 탐정


시드니 포이티어가 1967년 미국 LA에서 핸드 프린팅을 하고 있다. [AP=연합]
1959년엔 흑인 여성 작가가 쓴 최초의 브로드웨이 연극 ‘태양의 건포도’ 초연에서 주연을 맡았다. 시카고의 평범한 흑인 가정의 삶을 섬세하게 그려낸 이 연극은 “미국 극장을 영원히 바꾸었다”(타임스)고 호평받았다. 1961년 이 연극을 각색한 동명 영화 출연으로 포이티어는 이듬해에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흑과 백’ 등에 이어 세 번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영화 ‘밤의 열기 속으로’(1967)에선 백인 경찰서장에게 살해 용의자로 지목됐다가 수사를 돕게 되는 탐정 팁스 역을 맡았다. 팁스가 인종차별주의자인 농장주에게 뺨을 맞자, 곧바로 뺨을 때려 되갚아주는 장면은 할리우드 영화사의 기념비적 순간으로 남았다. 영화 ‘초대받지 않은 손님’(1967)에선 백인 연인의 부모를 만나러 찾아가는 의사를 연기했다. 당시 미국에서 인종 간 결혼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드문 작품으로 평단과 대중의 갈채를 받았다.

수녀들과 함께 교회를 짓는 퇴역군인을 연기해 첫 아카데미상을 거머쥔 ‘들판의 백합’, 영국 빈민촌 학교의 마음 따뜻한 교사로 출연한 ‘언제나 마음은 태양’(1967)도 대표작으로 꼽힌다. 2000년 방송인 오프리 윈프리와 인터뷰에서 포이티어는 데뷔 초 흑인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주는 역할을 의식적으로 거부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위엄과 우아함의 전형"


시드니 포이티어가 2002년 제7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거머쥐었다. [AP=연합]
포이티어가 자신의 동명 자서전을 직접 읽은 오디오북 ‘더 메저 오브 어 맨(The Measure of a Man·사람의 척도)’(2000)은 발간 이듬해 그래미상을 받았다. 포이티어는 2002년 아카데미 공로상을, 2009년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에게 민간인 최고 영예인 자유 메달을 받았다.
그의 별세 소식에 조 바이든 대통령은 포이티어를 “한 세대에 한 번뿐인 배우”라며 “그의 작품이 스크린 안팎 세상을 변화시켰다”고 백악관 성명을 통해 추도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포이티어가 “위엄과 우아함의 전형”이라고 애도했다고 BBC 등이 전했다. 오프라 윈프리는 “내게 가장 ‘위대한 나무’가 쓰러졌다”고 트위터를 통해 추모했다. 아카데미 후보에 4차례 올랐고 2017년 ‘펜스’로 여우조연상을 차지한 배우 비올라 데이비스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고인을 애도하며 “당신이 역할을 통해 보여준 위엄과 힘, 탁월함 등은 우리 흑인들도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글을 남겼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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