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가 본 빛에서 20세기 형광등까지.. 빛으로 보는 미술사

손영옥 2022. 1. 9.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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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울시립미술관 '빛: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
서울 노원구 북서울시립미술관에서 빛을 주제로 서양 미술사의 명작을 보여주는 ‘빛: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을 한다. 제임스 터렐의 ‘레이마르, 파랑’. 북서울시립미술관 제공


#1. 대홍수가 덮친 뒤의 칠흑 같은 세상. 저 멀리 희미하게 동이 튼다. 살아남아 배 한 척에 의지하는 노아의 가족에게 빛은 하나님의 손길 같은 희망의 상징이다. 성경 속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형상화한 19세기 영국 낭만주의 화가 제이콥 모어(1740∼93)의 ‘대홍수’(1787)에서 빛은 하나님과 동의어다. 절대자에 대한 숭고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요소다.

#2. 미국의 생존 작가 제임스 터렐의 설치미술 작품 ‘레이마르 파랑’(1969)은 파란 방이 작품 그 자체다. 사각으로 프레임이 된 흰빛이 파란 방안에 은은하게 퍼져나가며 절대자 앞에 섰을 때처럼 숭고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공산품에 불과한 형광등 불빛이 수 세기 전 화가 모어가 ‘대홍수’에서 물감으로 그려 넣은 빛과 같은 종교적 효과를 내는 게 신기하다.

영국 테이트미술관 컬렉션이 한국에 상륙했다. 문화의 변방으로 통했던 서울 노원구의 북서울시립미술관에서다. 2013년 개관 이래 블록버스터 전시는 처음인 데다 규모가 역대급이라 동네가 떠들썩하다. 입장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영국의 19세기 대화가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 낭만주의 풍경화가 윌리엄 터너(1775∼1851),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 등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 등장하는 위대한 화가들의 작품이 집결했다는 점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그뿐인가. 일본의 야요이 쿠사마, 영국의 아니쉬 카푸어, 덴마크의 올라퍼 엘리아슨, 미국의 제임스 터렐, 한국의 백남준 등 동시대 작가들도 아우른다.

‘빛: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이라는 제목이 함축하듯이 전시는 도도한 미술사의 흐름에서 예술가들이 빛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떻게 변했는지, 그런 철학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매체를 사용했는지 등을 과학과 예술의 결합으로 완성된 근대 명화부터 동시대 설치미술까지 43명의 작품 110점으로 훑는다.

‘태초에 빛이 있었다’는 말처럼 빛은 화가들에게 절대자의 다른 이름이었다. 모어와 동시대를 살았던 윌리엄 블레이크가 ‘아담을 심판하는 하나님’(1795)에서 신을 법의 화신으로 바라보는 관점도 재미있다. 이처럼 전시는 ‘빛, 신의 창조물’로 시작해 ‘빛, 연구의 대상’ ‘빛의 흔적’등 빛을 주제로 한 16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윌리엄 터너의 ‘그림자와 어둠-대홍수의 저녁’. 북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물리학의 등장과 함께 빛은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된다. 대기의 변화를 연구하며 빛이 가득한 풍경을 그린 영국 낭만주의 풍경화가 존 컨스터블(1776∼1836)과 윌리엄 터너의 작품도 놓쳐서는 안 된다. 터너의 ‘그림자와 어둠- 대홍수의 저녁’(1843년 전시)은 차가운 색과 따뜻한 색, 빛과 어둠을 대립시켜 대기가 만든 순간적 인상을 표현한다.

클로드 모네의 ‘엡트강가의 포플러’. 북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빛에 대한 연구는 프랑스로 건너가 인상주의에서 절정을 이룬다. 빛이 만들어내는 찰나의 인상을 재현하고자 했던 인상주의 화가들을 이끈 클로드 모네의 작품도 왔다. 모네는 동료 화가들을 이끌고 무조건 야외에서 그려야 한다고 외쳤던 사람이다. 스스로도 아침 점심 저녁,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반사 효과를 연구하며 무수히 그렸는데, 대표적 포플러 연작인 ‘엡트강가의 포플러’(1891)를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이번 전시작품 가운데 최고 보험가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프레드 시슬레(1839∼99) 카미유 피사로(1830∼1903) 아르망 기요맹(1841∼1927) 등 결이 다른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도 나와 비교·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현대에 와서도 빛을 탐구하려는 미술가들의 노력은 계속된다. 빛의 물리학을 연구하는 릴리안 린의 키네틱 아트 작품 ‘액체 반사’(1968)는 예술과 과학에 대한 연구가 시대를 초월한 예술가들의 관심 사항이었음을 보여준다.

댄 플래빈 ‘Ⅴ. 타틀린을 위한 기념비’. 북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댄 플래빈은 형광등을 갖고 ‘V. 타틀린을 위한 기념비’(1966∼69)를 만들어냈다.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형광등 몇 개를 세웠을 뿐인데, 숭배의 감정을 자아낸다. 볼셰비키 혁명을 기념하는 작품을 만든 러시아 예술가 블라디미르 타틀린에게 바치는 연작인 동시에 전등의 발명으로 실내외 도처에 있게 된 빛이야말로 우리가 동상처럼 숭배하는 대상이 아닌가라고 질문하는 작품 같다.

제임스 터렐은 같은 형광등을 갖고도 명상적이면서 종교적인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테이트모던에 거대한 인공 태양을 설치했던 올라퍼 엘리아슨은 이번 전시에서 빛이 산란하는 설치 미술작품 ‘우주 먼지 입자’(2014)를 선보였다.

빛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신년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전시다. 5월 8일까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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