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쪼개기 상장'..우리사주 따상 갈 때 개미는 비명

방극렬,김준엽 2022. 1. 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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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전경. 연합뉴스


이달 27일 모회사인 LG화학에서 분할해 상장 예정인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은 최근 직원 대상으로 우리사주 850만주에 대한 신청을 받았다. 직원들은 근무연차에 따라 1인당 적게는 1억원 후반에서 많게는 4억원어치 주식을 배정받았다. 회사에서는 투자금이 부족한 직원들을 위해 연 3%대 이자율의 금융기관 대출 상품까지 연계해줬다.

사내 대출까지 빌려 2억원대 우리사주를 배정받은 LG엔솔 직원 A씨는 9일 “공모가가 저평가됐다고 판단해 풀베팅했다”며 “상장 시 기관과 펀드 자금이 유입돼 주가가 뛸 거라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LG엔솔이 ‘따상’(시초가가 공모가의 2배로 오른 후 상한가)에 성공할 경우 A씨는 단 하루 만에 3억원 안팎의 수익을 거두게 된다. 수천만원의 예치금과 수만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공모주 1주를 얻을까 말까 한 일반 투자자에 비해 엄청난 특혜를 누리는 셈이다.

기존 회사의 유망한 사업을 분할해 자회사를 설립, 상장하는 물적 분할(쪼개기) 방식이 대기업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알짜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바탕으로 주식시장 상장에 성공해 큰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지만 모회사 주가에는 악재로 작용한다. 상장 흥행의 과실이 일부 경영진과 내부 직원들에게만 돌아가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 때문에 물적 분할에 따른 이익을 기존 모회사 주주들에게도 나눠주는 방식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이 같은 ‘쪼개기 상장’이 이뤄질 때마다 A씨 같은 내부 임직원은 미리 공모주 등을 배정받고 프리미엄을 누려왔다. 갑작스러운 분할로 모회사 주가가 폭락해 ‘개미’들이 울상 짓는 동안 스톡옵션이나 우리사주를 받은 경영진과 직원들은 막대한 수익으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들만의 상장’이라고 비판받는 이유다.

물적 분할로 독립한 기업들은 상장 시 직원들에게 보상으로 우리사주를 넉넉히 챙겨주고 있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라 우리사주조합은 전체 공모주식의 최대 20%를 우선 배정받을 수 있다. 지난해 카카오페이(20%)와 SK바이오사이언스(19.57%) 현대중공업(19.4%) 등은 우리사주를 직원들에게 완판하거나 대부분 배정했다.


분할 상장으로 우리사주를 받은 직원들은 손쉽게 거액을 손에 쥔다. 최근 2년간 IPO 시장의 활황으로 상장 직후 ‘따상’ 혹은 ‘따블’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상장한 SK바이오사이언스의 지난 7일 기준 주가는 21만3000원으로 공모가(6만5000원)보다 227.7% 상승한 상태다. 우리사주 물량과 직원 수를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직원 한 명이 평균 7500여주를 받아 11억1000만원가량의 수익을 벌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와 카카오페이 직원들도 1인당 6억2600만원, 2억5400만원을 번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기업 직원은 실제 수익을 실현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법적으로 의무보호예수 기간이 설정돼 있어 우리사주로 받은 주식은 1년간 매도할 수 없어서다. 다만 유망한 핵심 사업부로 꼽혀 물적 분할된 기업의 주가가 1년 만에 공모가에 가깝게 떨어지는 일은 흔치 않다. 게다가 우리사주를 받은 직원이 퇴사하면 곧바로 주식을 내다 팔 수도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 등에서는 일부 직원이 차익 실현을 위해 퇴사한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주로 고위임원이 받는 스톡옵션은 이런 매매제한조차 없다. 카카오 차기 대표로 내정된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 등 경영진 8명은 카카오페이가 코스피200 지수에 편입한 지난달 10일 44만993주를 동시에 매각해 469억원가량 차익을 거뒀다. 경영진이 스톡옵션을 한꺼번에 대량 매각한 사례가 극히 드물어 ‘도덕적 해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카카오페이는 지난 4일 사내 간담회를 열고 사과 및 재발 방지를 약속했으나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게다가 류 대표는 이해상충 방지를 이유로 올해 상반기 안에 보유한 스톡옵션을 모두 행사할 예정이다. 카카오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카카오 노조는 지난 5일 류 대표의 내정 철회를 요구한 데 이어 카카오 지분 7.42%를 보유한 국민연금공단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발동해 주주총회에서 류 대표 선임 안건에 반대표결을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이들 경영진의 행태는 증시에 악영향을 미치고 직원들의 사기를 꺾었다며 류 대표 내정을 철회하지 않으면 사상 첫 쟁의행위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이 떼돈을 버는 동안 모회사 소액주주들은 끝없는 주가 하락을 감내해야 한다. 모회사 시가총액에 자회사의 가치가 이미 반영돼 있는 만큼 분할 상장 시 주가는 내려갈 수밖에 없다. SK케미칼은 SK바이오사이언스를 자회사로 상장시킨 후 주가가 31.4% 떨어졌다. 최근 물적 분할 후 IPO 계획을 발표한 CJ ENM과 NHN의 주가도 급락했다.

이 때문에 자회사 상장으로 생기는 과실을 내부 임직원이 독점할 게 아니라 모회사 소액주주 등에게 나눠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관휘 서울대 교수는 “외국에서는 자회사를 물적 분할해 상장하더라도 기존 주주에게 신주를 지급한다거나 현금 보상을 하기도 한다”며 “기존 주주의 권익이 존중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송영훈 한국거래소 상무는 “물적 분할 후 상장을 심사할 때 기존 주주에 대한 보호책과 소통 여부를 까다롭게 따질 것”이라며 “자산 1조원 이상 기업이 제출해야 하는 지배구조 보고서의 작성 가이드라인에도 이런 기준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방극렬 김준엽 기자 extre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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