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와 나이듦에 저항하던 이 노인의 처절한 선택
[김봉건 기자]
안소니(안소니 홉킨스)는 은퇴 후 집에서 홀로 소일하고 있는 80대 노인이다. 최근 그가 주변에서 겪고 있는 일들은 온통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언젠가부터 큰 딸 앤(올리비아 콜맨)은 안소니의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의아한 건 이 집은 안소니가 젊은 시절 고생하여 마련한 공간인데, 딸이 자꾸만 자기 집이라며 억지를 부린다는 사실이다. 그는 앤이 멀쩡한 자기 집을 놔두고 왜 이러는 건지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 영화 <더 파더> |
ⓒ 판씨네마(주) |
영화 <더 파더>는 치매에 걸린 한 노인에 관한 이야기다. 기억력 저하와 인지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서 겪게 되는 노인의 일상을 1인칭 시점으로 섬세하게 그렸다. 배우 안소니 홉킨스는 이 작품을 통해 영국 독립영화 시상식, 보스턴 및 플로리다 비평가협회 등 남우주연상 6관왕을 차지하면서 연기력이 정점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기억이 사라져가는 현상을 겪고 있는 안소니. 이로 인해 그는 극심한 혼란과 불안 증세를 호소하게 된다. 이제껏 쌓아온 관계와 신뢰 등이 일시에 흔들리는 초유의 경험이다. 그는 파편화된 기억들 속에서 상황을 올바르게 인지하기 위해 퍼즐 조각을 맞추듯 조각 모음해 보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흡사 깊은 수렁에 빠지기라도 한 양 헤어나올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망연자실하게 된다.
▲ 영화 <더 파더> |
ⓒ 판씨네마(주) |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그 때문인지 우리는 본능적으로 나이 듦이라는 현상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노인을 비하하거나 심지어 나이 듦을 죄악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안티에이징을 외치는 온갖 종류의 광고는 또 어떤가.
나이 듦이란 곧 죽음과 가까워진다는 의미. 그래서일까? 현대인들은 이를 애써 외면하기 바쁘다.
하지만 나이 듦이란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현실. 이로 인한 신체 기관의 퇴행 역시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영화 <더 파더>는 여러 신체 기관 가운데 특별히 뇌의 퇴행, 즉 노인성 치매와 관련한 이야기다. 우리의 신체 기능 전반을 관장하는 뇌의 퇴행은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킨다. 뇌 기능이 손상되면서 기억력과 인지기능을 저하시켜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 영화 <더 파더> |
ⓒ 판씨네마(주) |
영화는 누구든 회피하고 싶어 하는 나이 듦에 대한 이야기다. 극중 안소니가 뇌 기능의 퇴행으로 인한 혼란과 고통을 호소하다가 어느 순간 아기처럼 변모해 가듯 우리의 삶 속에서 나이 듦과 그에 따르는 변화는 순리에 가깝다. 외면하고 싶다 하여 외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자식이 부모의 보살핌을 받고, 그 부모가 늙으면 자식의 보살핌을 받게 되는 현상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처럼 말이다.
극의 변곡점마다 장엄하게 흘러나오는 클래식 선율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안소니가 느끼고 있을 불안과 혼돈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케 해주는 장치로 다가온다. 영화 <더 파더>는 나이 듦이라는 보편적 현상과 관련한 이야기를 통해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었거나 의식적으로 외면해 왔을지도 모르는, 누구나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를 진지하게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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