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괴는 어디·회사는 왜..1980억 횡령 직원 구속, 밝힐 의문들
회삿돈 1980억원을 빼돌려 주식에 투자한 혐의를 받는 오스템임플란트 직원 이모(45)씨가 지난 8일 구속됐다. 이씨는 붙잡혔지만, 그가 빼돌린 돈으로 샀다는 금괴의 행방은 어떻게 됐는지부터 그가 횡령자금으로 주식 투자를 벌이며 ‘슈퍼개미’로 주목받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회사 자기 자본의 약 97%를 한 개인이 홀로 빼돌리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인지 등 풀어야 할 의문은 여전히 많다.
서울남부지법 이효신 당직판사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업무상 횡령 혐의를 받는 이씨의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열고 “도주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날 영장실질심사 직전 이씨가 스스로 참여를 포기하면서 법원은 피의자와 변호인 출석 없이 서면으로 심리를 진행했다.
오스템임플란트 재무팀장이던 이씨는 지난해 3월쯤부터 그해 말까지 총 8차례에 걸쳐 회삿돈 1980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았다. 오스템임플란트 자기자본 2047억원의 96.7%에 달하는 규모다. 다만 이씨가 이 중 100억원은 다시 돌려놔 피해 액수는 1880억원으로 유지됐다.
경찰 등에 따르면 이씨는 범행 초기엔 회사 계좌에서 50억원을 자신의 계좌로 송금했다가 다시 돌려놓고, 다시 50억원을 한 번 더 빼돌렸다가 원상복구하는 등 회사의 회계 감시 시스템을 테스트하는 행적을 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5번에 걸쳐 480억원을 빼내고, 발각되지 않음에 자신을 얻은 듯 지난해 10월에는 한 번에 1400억원을 횡령하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했다.
‘슈퍼개미’ 주목받는데…동진쎄미켐 몰빵→손절한 배경?
이씨는 횡령 자금을 주식 매입과 금괴, 부동산 구입 등에 쓴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거금을 한번에 빼돌린 지난해 10월에는 동진쎄미켐 주식 1430억원어치(392만주)를 사들이며 ‘파주 슈퍼개미’로 주목받았다. 상장사 주식을 5% 이상 보유하면 신상정보가 공시되기 때문에 자신이 드러날 위험성이 있다. 그가 그런 위험 부담을 안고도 이 같은 행위를 한 배경이 무엇인지 의문이 생기는 대목이다. 이씨는 이후 12월까지 336만여주를 1112억원에 되팔아 300억원 이상 손실을 봤다.
실제 한국거래소는 이씨 계좌를 감시해온 상태다. 동진쎄미켐처럼 단일 계좌 등에서 대량 매매가 이뤄질 경우 감시 시스템에 적발되기 때문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한 회사의 주식을 7% 가까이, 1400억원어치를 사들인 만큼 호재를 미리 알고 한 행위인지 의심해 본다”고 전했다. 미공개 정보 이용이나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 부정거래가 있었는지 본다는 취지다.
금괴 851개(680억여원) 샀다고?…354개는 어디로
동진쎄미켐 주식을 매도한 이씨는 1112억원 중 680억여원으로 1㎏ 금괴 851개를 매입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돈은 다른 계좌로 분산 송금해 빼돌리고 횡령금 중 75억원으로는 아내와 처제 명의를 이용해 부동산을 차명 매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경찰이 지난 5일 이씨를 검거한 경기 파주 은신처에서 압수된 금괴는 497개에 그쳤다. 나머지 354개(280억여원)는 소재가 불분명한 상황이다. 빼돌린 돈으로 도피하거나 몸을 숨길 때 가지고 다니기 힘들 양의 금괴를 샀다는 점도 의문을 남기는 부분이다. 851개의 금괴는 총 851㎏에 달한다.
회사 자본 97%를 개인이 횡령?…회사는 정말 몰랐나
이씨 측은 현재 오스템임플란트 회장의 지시를 받고 횡령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금괴 일부도 회장에게 건넸다는 것이다. 오스템 측은 사실무근이라며 이씨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다만 시가 총액 2조원을 웃도는 코스닥 순위 20위권 기업에서 직원 1명이 회사 자기자본을 잠식할 정도 규모의 거액을 빼돌리는 것이 정말 가능한지는 의혹을 남기는 부분이다. 경찰도 내부 공범이나 묵인, 혹은 윗선의 지시가 있었는지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오스템 측 임직원들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재무팀 직원이나 책임자 등을 피의자로 전환할지 고려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추가 수사를 벌인 뒤 혐의 적용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가 지난 6일 최규옥 회장과 엄태관 대표를 횡령·자본시장법(시세조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서울경찰청에 배당하기로 했다.
이런 가운데 오스템임플란트가 이씨의 100억원 추가 횡령 사실을 사전에 알고도 외부에 밝히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9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 7일 신청한 이씨의 구속영장에서 횡령액을 총 1980억원으로 적시했는데 이는 오스템임플란트가 지난 3일 이씨를 고소한 사실을 공시하면서 밝힌 횡령액 1880억원에 100억원이 추가된 것이다.
그런데 새롭게 드러난 횡령액 100억원은 오스템임플란트가 자체 내부조사를 통해 파악한 내용으로, 이달 초 서울 강서경찰서에 피해 사실을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100억원은 이씨가 회사 계좌에 돌려놓아 실제 피해액수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횡령 자체로는 규모를 축소해 허위 공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피해주주들의 소송 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오킴스 엄태섭 변호사는 “공시일 전후 여부를 떠나 추가 횡령 사실을 현재까지 공시하지 않은 것은 자본시장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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