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 아들 해병대서 죽게했나" 엄마의 한 10년만에 녹인 꽃

최종권 2022. 1. 8.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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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철 금천고 교장이 7일 학교 명예의 전당 앞에서 고 백귀보를 소개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美 대학 휴학 후 해병대 입대…훈련 중 세상 떠난 제자


“제자의 영혼이 계속 살아남아서 많은 사람에게 울림을 줬으면 합니다.”
7일 충북 청주시 금천고에서 만난 김명철(62) 금천고 교장은 옛 제자의 얼굴이 걸린 명패를 한참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금천고 현관 한쪽 벽면을 장식한 진열장엔 ‘금천고 명예의 전당’이란 현판이 걸려있었다. 김 교장이 김정희 추사체로 직접 서각한 작품이다.

명예의 전당 가장 상단에는 10회 졸업생인 고(故) 백귀보씨의 사진이 있었다. 2015년부터 금천고 재학생에게 지급해 온 ‘백귀보 장학금’의 모태가 된 인물이다. 그는 2004년 군에 입대했다가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 교장은 “귀보가 하늘나라로 떠나며 남긴 장학금으로 지금까지 100명의 후배가 도움을 받았다”며 “귀보의 뜻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10회 제자들과 함께 명예의 전당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 교장은 백씨가 고교 3학년이던 1999년 담임과 제자로 만났다. 백씨는 부모님이 사업차 미국에 거주할 당시 태어났다. 금천고를 졸업한 뒤 20살이 가까워지면서 국적을 선택해야 하는 고민에 빠졌다. 김 교장은 “귀보가 대학교 1학년 스승의 날에 학교를 찾아왔다”며 “미국 국적을 선택하면 군에 입대하기 싫어서 미국 국적을 선택했다는 비난을 받을까 봐 고민이 된다는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금천고 명예의 전당에 전시된 고 백귀보씨 명패. 최종권 기자


김명철 교장 10년 넘게 현충원 헌화


김 교장은 당시 “미국 국적을 취득하고, 대한의 남자로서 군에 입대하면 된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백씨는 그 자리에서 “그렇게 하겠다”며 동의했다. 백씨는 이후 국내 대학을 자퇴하고, 미국으로 넘어가 일자리를 얻은 뒤 원하던 대학의 무역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해병대 입대를 위해 2004년에 한국을 찾았다. 미국에서 다니던 대학은 휴학한 상태였다. 김 교장은 “내가 역사 과목을 가르치고 있어 민족 정체성과 국가관에 대해 자주 강조했는데, 귀보가 내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며 “나중에 알아보니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군대에 꼭 가야 한다고 했다더라”고 했다.

백씨는 그해 3월 해병대에 입대했으나 훈련을 받던 중 폐렴으로 사망해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갑자기 세상을 떠난 아들을 가슴에 품은 어머니는 김 교장을 원망했다. 김 교장은 “부모 입장에선 내가 자식을 죽인 원수가 된 셈이었다”며 “귀보의 사망 소식을 듣고 길에서 한참 울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귀보 어머니께서 ‘내 아들 살려내라’고 소리쳤다”고 했다.
김명철 금천고 교장이 7일 학교 명예의 전당 앞에서 '백귀보 장학금' 마지막 수여자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금천고 ‘백귀보 장학금’ 명예의 전당에 올려


백씨의 부모는 매년 6월 6일 아들을 기리기 위해 현충원을 찾으며 마음을 달랬다. 하지만 현충원을 찾을 때마다 이상한 것이 있었다. 백씨의 묘비 앞에 생화가 놓여 있던 것이다. 이는 김 교장이 현충일에 제자를 기리기 위해 헌화한 것이었다. 김 교장은 “매년 현충일 아침 일찍 귀보의 묘를 찾아 몰래 국화를 놓고 갔다”며 “귀보가 자원봉사를 했던 옥산 희망원 아이들을 데리고 헌화를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 사실을 10년이 지나 알게 된 백씨 어머니는 2015년 5월 15일 서경중 교감으로 재직 중인 김 교장을 만나 5000만 원을 내놓았다. 아들 앞으로 나온 국가의 위로금과 유공 연금을 모은 것이었다. 김 교장은 “장학금을 내놓으면서 저에 대한 원망도 내려놓으신 것 같았다”며 “어머니와 함께 귀보의 모교인 금천고를 찾아 전액 장학금으로 기부했다”고 말했다.

금천고 명예의 전당에는 백귀보씨의 명패 외에도 금천고 교직원이 2008년부터 운영해 온 ‘금나리장학회’ 명패도 전시됐다. 금천고 졸업생들의 트로피와 상패도 함께 전시됐다. 명예의 전당은 금천고 10회 졸업생의 기금 500만 원과 김 교장이 제작한 현판을 더해 완성했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jong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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