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라떼' 이제 없다.."불참" 北 한마디에 완전 꼬인 문 정부 [뉴스원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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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혜 외교안보팀장의 픽 : 北 베이징 올림픽 불참 공식화
“라떼는 말이야”가 짜증 나는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과는 상황도, 사람도 다른 라떼 시절 이야기를 해봤자 현재의 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안 돼서다. 거기다 과거의 기억은 미화되기 쉽다. 라떼의 무용담을 부각하려 할수록 꼴사나워진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2018년 평창 겨울 올림픽은 문재인 정부의 “라떼는 말이야”다. 남북 선수단이 함께 입장하고,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방남해 함께 웃고 악수하던 그때는 평화가 당장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였다. 이는 이후 남․북․미 간 연쇄 정상 회담으로 이어지는 시발점이었다.
그래서 문 정부는 지난해 도쿄 여름 올림픽에 이어 올해 치러질 베이징 겨울 올림픽에서도 ‘평창 어게인’을 꿈꿨다. 하지만 북한이 베이징 올림픽 불참을 공식화하며 한 줄기 희망마저 사라졌다.
애초에 도쿄와 베이징은 평창이 될 수 없었다. 평창 올림픽에서의 화해 분위기는 상상조차 어려웠던 수많은 ‘if’가 해소됐기에 가능했다.
만약 2018년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가 아니었다면, 그래서 비핵화 진전 없이 북한이 참여하는 ‘빅 이벤트’에는 관심이 없는 원칙론자였다면, 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제 핵무력을 완성했으니 한국과 미국을 간 볼 시기가 됐다고 판단하지 않았다면? 어느 하나의 if만 어긋났어도 불가능한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베이징 올림픽을 맞는 2022년 미국의 대통령은 조 바이든이고, 최우선 외교 과제가 중국 견제다. 일찌감치 ‘외교적 보이콧’(선수단은 참가하고 정부 대표단은 보내지 않음)으로 쐐기도 박았다.
북한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제재로 선수단 참가가 불가능해진 데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굳게 닫은 국경을 열 생각이 없다. 그럼에도 정부 내에는 선수단은 못 오더라도 북한이 우방국인 중국의 경사를 축하하기 위한 고위급 정부 대표단을 보낼 수도 있다는 일말의 기대가 존재했다. 하지만 북한은 7일 “적대세력들의 책동과 세계적인 대류행전염병상황으로 경기 대회에 참가할 수 없게 됐다”고 공식화했다.
평창 어게인을 만들기 위한 핵심 당사자는 남․북․미인데, 미국과 북한이란 상수 자체가 이미 충족되기 어려웠던 셈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건 여전히 대북 관여에 진심인 문 대통령밖에 없다.
정부는 그간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을 바이든 행정부의 올림픽 보이콧에 동참하지 않는 명분으로 활용했다. 평창 어게인을 염두에 두고 ‘직전 개최국으로서의 역할’까지 공식 이유로 댔는데, 해당 역할의 정체는 아직도 불분명하다.
정부가 득실을 정교하게 따진 결과라면 보이콧에 동참하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그 이유와 명분이 북한 하나였다면 상황은 꼬일 수 있다. 애초에 미국이 보이콧의 이유로 삼은 중국 내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는 입장이랄 것도 없이 “지켜보고 있다”는 영혼 없는 말만 반복했다. 그렇다고 한․중 양자 관계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당위를 설득하지도 않았다.
이제 한국에서 고위급 대표단을 보내면 미국에선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목적 실현이 불가능한데 고위급이 움직이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고, 반대의 경우에는 중국으로부터 ‘직전 개최국으로서 우리 올림픽의 성공을 돕는다고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문 정부 내내 반복됐던 ‘북한 중심 외교’가 낳은 결과다. 중요한 현안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 양자관계나 국제정세의 큰 맥락이 아니라 오로지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만 집중했기에 생긴 부작용들이 있다는 뜻이다.
라떼 시절에 집착하는 사람은 현재를 놓치기 쉽다. 평창 라떼는 이제 없다. 계속 “라떼는 말이야”를 반복해봤자 돌아오는 건 “그래서, 뭐, 어쩌라고”밖에 없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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