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판 신발로 하루만에 430만원 수익.. 급성장하는 리셀시장

정신영 2022. 1. 8.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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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위험 고수익" 리셀테크 열풍
유명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와 나이키가 협업한 한정판 신발 ‘조던1X오프화이트 레트로 하이 시카고 더 텐’은 지난 4일 리셀 플랫폼 ‘크림’에서 929만9000원에 거래됐다. 아래는 가수 지드래곤과 나이키가 협업한 ‘나이키X피스마이너스원 에어포스1 로우 파라노이즈’가 같은 날 245만원에 시세를 형성하고 있는 모습. 크림 캡처


지난해 11월 28일 유명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41·아래 사진)가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아블로는 루이비통의 최초 흑인 수석디자이너이자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오프화이트’의 창립자다.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생전에 선보였던 ‘유작’들의 가격은 요동치고 있다. 2017년 9월 나이키와 협업한 한정판 신발 ‘조던1X오프화이트 레트로 하이 시카고 더 텐(조던1 더텐)’은 아블로 사망 다음 날 1100만원까지 치솟았다. 전날까지 670만원에 거래되던 신발이 하루 만에 430만원 오른 것이다. 발매가 190달러(22만6600원)와 비교하면 수익률은 4767%에 이른다.


하루 만에 수백만원의 수익을 낼 수 있는 ‘리셀’이 뜨거운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리셀은 중고거래와 다르다. 한정판처럼 희소성 있는 제품을 구해 웃돈을 받고 되파는 행위를 말한다. 투자가치가 존재하는 상품을 현물거래한다는 측면에서 주식시장과 유사하다. 리셀가격도 주가처럼 매일 변한다. ‘조던1 더텐’은 지난 4일 기준 929만9000원까지 떨어졌다. 리셀러들은 리셀 플랫폼이 제공하는 거래 체결내역과 입찰 현황을 보면서 시세를 예측해 고점 매도를 노린다.

주식이나 코인 투자와 차이점이 있다면 리스크가 적다. 공모주나 펀드와 달리 초기 투자비용은 10만~20만원으로 진입 장벽이 낮다. 여기에 나이키, 아디다스 등 제조업체에서 진행하는 한정판 제품의 ‘래플(추첨)’에 당첨만 되면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 발매가격 밑으로 값이 떨어지는 일은 드물다.

지난달 가수 지드래곤의 패션 브랜드 ‘피스마이너스원’과 나이키가 협업한 한정판 신발 ‘퀀도1’은 발매 직후 정가(21만9000원)의 3배까지 값이 뛰었다. 2019년 지드래곤 생일에 맞춰 818켤레만 제작된 ‘에어포스1 로우 파라노이즈’(발매가 21만9000원)는 현재 250만원대에 거래된다.

리셀이 ‘저위험·고수익 투자’로 떠오르면서 MZ세대를 중심으로 리셀시장은 급성장 중이다. 미국 투자은행 코웬앤드코에 따르면 글로벌 신발 리셀시장은 매년 20% 성장할 것으로 추산된다. 2019년 20억 달러 규모에서 2025년 60억 달러까지 확장할 전망이다. 해외에선 구매자와 판매자를 중개하는 온라인 플랫폼이 활발하다. 미국의 고트(GOAT)와 킥시파이(Kixify), 중국의 나이스(Nice), 일본의 스니커덩크(SNKRDUNK)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도 네이버, 무신사, KT, 롯데쇼핑 등이 앞다퉈 리셀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한국의 리셀시장은 ‘나이키매니아’ ‘디젤매니아’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소수의 신발 수집가들 거래에 머물렀다. 하지만 몇년 사이 시장 규모가 팽창하면서 판매자로부터 제품을 넘겨받아 검수를 하고 구매자에게 배송하는 중개 플랫폼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018년 ‘아웃오브스탁’이 등장한 이후 힌터의 ‘프로그’, 서울옥션블루의 ‘엑스엑스블루’ 등이 생겨났다. 2020년 대기업까지 뛰어들며 리셀 거래는 뜨거워졌다. 2020년 3월 네이버 스노우의 ‘크림’, 7월 무신사의 ‘솔드아웃’, 10월 KT알파의 ‘리플’이 출시됐다. 같은 해 7월에는 ‘유통공룡’ 롯데쇼핑이 아웃오브스탁과 손잡고 시장에 진입했다. 지난해 9월엔 미국의 유니콘 기업 ‘스탁엑스(StockX)’가 한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더 치열해지고 있다.

무신사의 한정판 마켓 ‘솔드아웃’. 솔드아웃 홈페이지 캡처


솔드아웃을 론칭한 무신사도 2001년 온라인 패션커뮤니티 ‘무진장 신발 사진이 많은 곳’에서 출발했었다. 솔드아웃은 출시 2개월 만에 앱 누적 다운로드 25만회를 돌파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5월 자회사 ‘에스엘디티’로 분사하고, 가상화폐거래소 운영사 두나무로부터 1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네이버 자회사 스노우가 출시한 크림은 서비스를 시작한 지 1년반 만에 한국 리셀시장 점유율 1위로 성장했다. 지난해 거래액만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스노우는 벤처캐피털(VC) 알토스벤처스, 소프트뱅크벤처스, 미래에셋캐피탈로부터 1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지난해 8월에 100만명 넘는 가입자를 보유한 스니커즈 커뮤니티 ‘나이키매니아’를 80억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후발주자인 KT알파의 리플은 실물배송 없이 소유권을 거래하는 ‘빠른 거래’로 차별화에 나섰다. 판매자와 구매자 간 거래시간을 단축해 편의성을 높이자 전체 거래 대비 빠른 거래 비중이 40% 이상을 차지했다. 빠른 거래의 거래금액은 185%나 늘었다.

그러나 리셀시장의 전망이 무조건 밝은 건 아니다. 지나치게 ‘치킨게임’으로 치닫는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현재 리셀 플랫폼 시장 1위인 크림, 2위인 솔드아웃은 사실상 수익 구조를 갖고 있지 않다. 시장 선점을 위해 중개수수료, 검수비, 배송비 등을 받지 않고 있어서다. 경쟁이 치열해지자 엑스엑스블루는 수수료율을 낮추며 대응했지만 결국 2년여 만에 시장에서 철수했다. 리셀 플랫폼 관계자는 “지금은 서비스를 출시한 지 2~3년 된 시점이다. 수익을 내야 하는 단계는 아니다. 플랫폼 사업이다 보니 이용자 확보와 서비스 확장을 우선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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