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두 도시 이야기

김봉수 2022. 1. 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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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완주했다.

몇 해 전 드라마 시리즈에 빠지는 바람에 주말 내내 피폐하게 지낸 경험이 있어 영화 말고는 피해오던 터였다.

제작자는 도시 파리의 일상과 장소를 전작의 뉴욕과 묘하게 겹치며 연결한다.

'섹스 앤드 더 시티'가 삭막하던 뉴욕의 인상을 단숨에 로망으로 바꾼 것처럼 이 드라마가 도시 파리의 위상을 더 높일까 질투 섞인 걱정이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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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완주했다. 몇 해 전 드라마 시리즈에 빠지는 바람에 주말 내내 피폐하게 지낸 경험이 있어 영화 말고는 피해오던 터였다. 한동안 순위에 올라 있어 궁금하기도 했고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제작자가 만들었다는 걸 듣고 나서는 거부할 수 없었다.

드라마는 흥미롭다. 간결하고 경쾌하며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다. 광고 화면같이 화려한 파리 풍경과 패션을 배경으로 다음 에피소드로 중독성 있게 이끈다. 이래서 드라마 시리즈는 문제다. 주인공 에밀리는 시카고 출신으로 파리 광고회사에 파견 근무를 하게 된다. 불어도 할 줄 모르고 미국 교외에서 자란 촌뜨기이다. 아직 어리고 서툴러서 때론 무시당하지만 미국식 정의와 모험으로 난관을 헤쳐나간다는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다. 프랑스에 대한 묘한 선망과 경멸 같은 양가의 감정이 드러난다. 그들에게 프랑스는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불합리하고 게으르고 위선적이며, 때로는 지나치게 솔직하다. 문화와 예술의 전통이 강해서 촌스러움을 못 참지만, 우월감과 자부심이 지나쳐 보이기도 한다. 인생에 대한 전반적인 태도나 사랑과 불륜의 정의는 청교도의 나라 미국인에겐 생소하다. 서구 문명의 작은 균열같이 보이지만 문화적 충격과 충돌은 비교적 공정하게 다뤄진다.

제작자는 도시 파리의 일상과 장소를 전작의 뉴욕과 묘하게 겹치며 연결한다. 그것은 도시 또는 도시 생활에 대한 애정이자 찬사다. 비좁은 부엌에서 할 수 있는 요리는 간단한 아침뿐 대부분 외식이다. 자동차를 가진 주인공은 없다. 모두 걷거나 자전거로 출근하고 연애한다. 아파트는 거리와 직접 맞닿아 있다. 단지는 없다. 창은 남쪽보다는 거리를 향한다.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거리와 공원이 걷는 동안 끊임없이 볼거리와 이벤트를 만든다. 거리에서 패션을 과시하기도 감상하기도 한다.

‘섹스 앤드 더 시티’가 삭막하던 뉴욕의 인상을 단숨에 로망으로 바꾼 것처럼 이 드라마가 도시 파리의 위상을 더 높일까 질투 섞인 걱정이 들 정도다. 드라마는 도시야말로 인간적 장소의 연속이어야 한다는 진리를 차분하게 설득한다. 장소란 텅 빈 공간에 경험과 기억이 더해진 시공간적 개념이다. 미국의 지리학자 이푸 투한은 빠르게 움직이는 중에도 멈추게 하는 것이 장소라고 정의했다. 공간이 의미와 기억을 획득해가며 하나의 장소로 변모한다. 그러니 도시계획가나 건축가는 공간을 만들지만 여러 가능성을 갖는 ‘잠재적 장소’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파한다. 흥미로운 도시의 장소가 걷게 하며 서로 교류하게 하며 자신의 도시를 사랑하게 한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 이어 다가오는 대선에서 다시 주거 공급 공약이 난무한다. 도시와 건축 관련해서는 거의 유일한 공약이기도 하다. 한데, 신도시는 물론이고 도심에서도 인간적인 장소를 만드는 배려와 고민보다는 용적률과 층수를 풀겠다며 경쟁이다. 차분하게 정돈된 파리 시내 건물 용적률은 300%가량이지만 높이는 고작 7층이다. 그런데도 기껏해야 용적률 250% 아파트를 위해 35층도 부족하다며 아우성치고 공약은 이에 호응하는 모양새다. 주변에 담을 둘러치고 어린이 놀이터마저 걸어 잠그는 아파트 단지가 도심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렇게 도시의 장소를 만들 수는 없다.

계속해서 다음 에피소드 버튼을 눌러대면서도 씁쓸해지는 것은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의 맨 처음 대목이 떠올라서이다. "우리만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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