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빠 100명 중 2명, 아이슬란드 아빠는 90명 누리는 이것
20대 한국 여성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미래를 준비하는데 있어 어떤 허들이 있습니까?' 164명이 357개의 허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목소리를 품고, 오마이뉴스 X 시사인 X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여성들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는 아이슬란드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아이슬란드 사람 33명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리가 다다른 결론은 하나입니다. '여성이 멈추면 세상이 변한다.' <편집자말>
[독립편집부 기자]
▲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 트요르닌 호숫가에서 산책하고 있는 부부의 모습. |
ⓒ 선재 |
노르웨이 인구는 546만명이다.
덴마크 인구는 581만명이다.
스웨덴 인구는 1,016만명이다.
아이슬란드와 인접한 북유럽 국가들이다. 1970년만 해도 1인당 GDP 순위에서 아이슬란드보다 모두 앞섰던 나라들이기도 하다. 당시 스웨덴은 4,666달러로 4위, 덴마크가 3,421달러로 14위, 노르웨이가 3,354달러로 16위였다. 아이슬란드의 경우는 21위로 1인당 GDP는 당시 4위 스웨덴의 55.7% 수준(2,598달러)이었다.
50년이 지났다. 2021년 10월 기준 1인당 명목 GDP를 보면 이들 4개국 순위가 많이 바뀌었다. 노르웨이가 4위(8만2244달러)로 가장 앞서 있고, 그 다음이 아이슬란드로 6위(6만8843달러)다. 덴마크가 7위(6만7919달러), 스웨덴이 11위(5만8639달러)다. 현재 아이슬란드의 1인당 GDP는 4위 노르웨이의 83.7% 수준이다. 각 나라의 인구까지 감안하면 '고작' 34만명 수준의 아이슬란드가 그동안 얼마나 비약적으로 경제 발전을 이뤘는지 알 수 있다.
브린힐두르 헤이다르(Brynhildur Heiðar, 이하 브린힐두르) 여성권리협회 사무총장은 "아이슬란드는 20세기 초반까지 가난한 나라였다,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은 성평등"이라고 했다. '얼음의 땅' 또는 '화산 제국'으로도 불리는 아이슬란드는 척박한 환경 탓에 발전이 더뎠다고 했다. 우리를 만난 토르스테인 비그룬드손(Þorsteinn Viglundsson, 이하 토르스테인) 전 사회평등부 장관도 "아이슬란드는 평등으로 더 부유한 사회가 됐다"고 단언했다.
평등은 물론 말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어떤 제도가 뒷받침되었기에 아이슬란드는 평등하면서도 부자인 나라가 된 것일까.
▲ 아이슬란드는 1970년만 해도 인접국인 덴마크나 스웨덴보다는 가난한 나라였다. 2021년 10월 기준 1인당 명목 GDP에서 아이슬란드는 두 나라보다 앞서 있다. 척박한 환경 탓에 경제 발전이 어려웠던 아이슬란드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원정대가 만난 사람들은 "평등으로 부자가 될 수 있었다"고 확언했다. 과연, 아이슬란드 모델을 우리나라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아이슬란드 국무총리실 성평등국 사무실 벽에 새겨진 글이 그 답을 대신하고 있다. ⓒ 독립편집국 |
1975년 10월 24일, '데이 오프(Women's Day Off, 모든 여성의 월차 투쟁)'에서 여성들이 강력하게 요구했던 것은 보육의 공공성 확보였다. '데이 오프'는 여성의 정치 참여를 급성장시킨 결정적 계기가 됐고, 여성들의 요구는 여성 유권자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사회 시스템으로 안착했다. 공공보육을 강화하는 내용의 유치원법 제정이 그 예다.
이로 인해 남성은 생활비를 벌어오고 여성이 양육을 전담하는 기존 성역할 구조가 대대적으로 재편됐다. 국무총리실 성평등국에서 일하고 있는 트릭그비 할그림손(Tryggvi Hallgrimsson, 이하 트릭그비)은 "1980년대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많이 들어왔다"면서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유치원의 보편화다, 그 후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OECD 안에서 높은 노동시장 참여율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아이슬란드 성평등 보고서(Gender equality in Iceland)를 보면, 1960년대 34.3%에 그쳤던 여성 노동시장 참여율은 1980년대 65.2%로 2배 가까이 뛰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줄곧 75%대를 유지하고 있다.
75%, 유치원의 보편화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숫자다. 0∼1세 영아를 돌보는데 꼭 필요한 육아휴직 역시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했다. 이를 위해 아이슬란드는 2003년 남녀 육아휴직 할당제를 도입했다. 부모가 함께 9개월의 육아휴직(유급 80%)을 쓰도록 했다. 여성 3개월, 남성 3개월, 그리고 나머지 3개월은 두 사람 중 원하는 쪽이 사용하게 했다. 이같은 제도는 2021년 한 단계 더 발전했다. '여성 5개월 - 남성 5개월 - 선택 2개월' 체제로 모두 12개월을 쓸 수 있다. 원하는 쪽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육아휴직 3개월의 대부분을 여성이 쓴다는 조사 결과에 따른 조치다.
이와 같은 제도는 결국 직장 내에서 여성이 육아 문제로 차별을 겪을 확률을 크게 낮춘다. 트릭그비는 "남자든 여자든 비슷한 기간 동안 육아휴직을 쓸 거란 것을 고용주로 하여금 인식하게 한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남성이 양도 불가능한 육아휴직을 쓰도록 했다는 점에서 매우 선구적인 제도"라고 덧붙였다. 아버지가 자녀들과 더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사회복지부에서 일하고 있는 벤니 헌누도티르(Venny Honnudottir, 30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현재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다.
"첫째 딸 아이를 돌보다가 복직했고, 그 다음에는 남편이 돌봤어요. 남성도 똑같이 휴직을 하기 때문에 육아나 가사 노동에 대해 그만큼의 책임감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들과의 유대감이 매우 높아져요."
현재 아이슬란드 아빠들은 90%가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엄마가 육아휴직을 쓰는 비율은 18.5%다. 아빠의 경우는 2.2%에 불과하다.
▲ 아이슬란드 국무총리실 성평등국 사무실 모습. "진정한 평등은 생각하는 방법을 바꾸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써 있다. |
ⓒ 선재 |
2005년 오후 2시 8분.
2010년 오후 2시 25분.
2016년 오후 2시 38분.
2018년 오후 2시 55분.
임금 불평등. '데이 오프'가 1975년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다. 1985년, 2005년, 2010년, 2016년, 2018년에도 '데이 오프'가 있었다. 그때마다 여성들은 8시간 노동 기준으로 남성과의 임금 격차를 계산했고 그에 따라 여성들의 퇴근 시간을 제시했다. 2018년 제시된 퇴근 시간이 오후 2시 55분이었으니, 그때까지도 성별 임금 격차가 여전히 존재했다는 이야기다.
이와 같은 차별에 구조적인 변화가 생겼다. 아이슬란드는 2018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임금차별금지법(동일임금인증제)'을 도입했다. 25인 이상 기업 및 기관의 경우 남성과 여성에게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동일임금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성평등부에서 일하고 있는 트릭그비는 "동일 임금을 받는다고 남성이 돈을 잃는 것이 아니다"면서 "현재 노동시장은 '맞벌이'를 요구하고 있다, 여성이 평등한 임금을 받는다면 그 여성과 함께 하는 남성 역시 질 높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업무가 기업들이 제출하는 보고서를 확인하고 승인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이 제도는 고용주가 평등에 대한 책임을 갖게 한 것이다. 브린힐두르 여성권리협회 사무총장은 말했다.
"운전기사는 남성적인 일, 비서는 여성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왔을 수 있습니다. 운전이 비서보다 높은 직책인가?에 대해 회사가 판단을 내리자는 게 기본적 접근입니다. 동일임금 지급 관련 미흡한 부분을 고치는 것 역시 경영진의 몫입니다. '동일임금인증제'는 불평등을 방치하지 못하도록 회사에 책임을 지운 겁니다. 성차별적인 사회에서는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성차별을 받았다는 걸 개인이 증명해야 하죠. 증명에 성공하더라도 결국 한 명에 대한 차별만 바뀌는 겁니다. 사회가 바뀌어야죠."
불평등을 개선하는 책임을 사회가 져야 공평하다는 이야기다. 그런 차원에서 2008년 금융 위기는 "아이슬란드를 바꾼 또 하나의 계기"였다고 브린힐두르 사무총장은 말했다.
▲ 2009년 4월 24일, 요한나 시구르다르도티르 (Johanna Sigurdardottir)총리가 당시 TV토론회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 연합뉴스/EPA |
당시 금융 위기의 주체는 남성이었고 이 기간 동안 특정 성에 기반한 사회문화적 담론과 고정관념이 지배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시 금융 위기를 초래했던 큰 규모의 경제 관련 프로젝트들 중에서 산업 프로젝트, 감세 정책, 그리고 주택 단지 개발 등은 여성보다 남성에게 고용 기회를 제공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애초에 금융 부문이 소수의 남성들에 의해 운영되었고, 성 고정관념과 남성들의 문화에 기반한 사업 계획과 운영이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정부는 소수 집단이 너무 많은 권력을 갖지 못하도록 주요 기업들을 체계적으로 감시해야 하고, 성인지예산과 성인지조세 정책(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반영하여 국가 예산을 배분하는 정책, 기자 주)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 노동 및 지역 정책을 개발할 때 성 주류화 원칙을 사용해야 한다.
(2012년 아이슬란드 국회 특별조사위원회 조사 내용)
기회의 불평등. 2008년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았던 이유에 대한 국가적 해석이다. 금융계·정계·경제계에 포진한 '남성 인맥 카르텔'이 정부 규제와 금융 산업을 쥐고 흔든 결과 국가적인 위기상황을 맞았다는 분석이었다. 그리고 아이슬란드는 여성 정치인에게 전권을 맡겼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2월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Johanna Sigurðardottir) 총리가 집권했고, 그는 은행가들, 정치인들에게 법적 책임을 물었다. 90명 가량이 금융 위기 발생 혐의로 기소됐고, 그 중에는 게이르 힐마르 하르데(Geir Hilmar Haarde) 전 총리도 포함돼 있었다. 게이르 전 총리는 '업무 태만'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와 같은 흐름은 구조적인 개혁으로도 이어졌다. 2013년 아이슬란드는 50인 이상 기업 임원에 최소 40% 여성을 의무화하는 여성할당제를 법제화했다. 토르스테인 전 사회평등부 장관은 "여성할당제법이 제정된 후 훌륭한 자격을 가진 여성을 뽑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면서 "부작용에 대한 부정적인 예측은 모두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았다"고 우리에게 설명했다. 브린힐두르 사무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 때 비로소 유리천장이 깨졌습니다. 여성이 의사 결정의 위치에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여성이 평등한 참여자가 된다면, 성평등에 도움되는 결정을 내릴 수 있거든요. '의제화'시키는 것, 이것은 여성이 권력을 가질 때 시작됩니다."
1975년 '데이 오프'를 계기로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정치 분야에 평등한 참여자가 됐다. 2008년 금융위기는 여성들이 경제 분야의 평등한 참여자가 될 수 있는 발판으로 작동했다.
▲ 아이슬란드 곳곳에는 인권과 평등을 상징하는 무지개길이 있다. |
ⓒ 김민수 |
지난 해 아이슬란드에서는 <선거하는 여인들>(Konur sem kjosa: Aldarsaga)이란 제목의 책이 나왔다.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결정해 온 역사'가 담겨 있는 이 책의 저자는 에를라 훌다 할도스도띠르(Erla Hulda Halldorsdottir) 아이슬란드 대학 교수다.
성평등의 비결이 뭐냐고요? 말만 하지 말고 그 길을 향해 걸어가세요.
(마그네아 마리노스도티르, Magnea Marinosdottir, 아이슬란드 복지부 수석고문이 2017년 11월 WEF에 기고한 글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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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이주연·장일호·정창·이정환
영상 : 김민수 | 사진 : 선재 | 제작 : 이종호 | 개발 : 황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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