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검수완박 되새김질

지호일 2022. 1. 7.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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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가할 거라면 감히 저항할 수 없는 크나큰 고통을 가해야 해. 그래야 네가 자기보다 강하다는 걸 절실히 깨닫게 되지." 영국의 정치판을 무대로 한 소설 '하우스 오브 카드'(마이클 돕스 저)에서 집권당 원내총무 프랜시스 어카트가 늙은 사냥터지기에게 배운 이치라며 읊조린 말이다.

중수청 추진파는 검수완박이 검찰 개혁의 완성이라고 말한다.

검찰이 지난해 부정부패 사범으로 단속한 숫자가 현 정부 출범 첫해 대비 9분의 1 수준으로 주저앉았다는 자료가 뜻하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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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일 사회부장


“고통을 가할 거라면 감히 저항할 수 없는 크나큰 고통을 가해야 해. 그래야 네가 자기보다 강하다는 걸 절실히 깨닫게 되지.” 영국의 정치판을 무대로 한 소설 ‘하우스 오브 카드’(마이클 돕스 저)에서 집권당 원내총무 프랜시스 어카트가 늙은 사냥터지기에게 배운 이치라며 읊조린 말이다. “사냥터지기는 물론 야생 개에 대해 한 말이었어. 하지만 정치에도 아주 유용한 교훈이지.”

우리 집권 세력도 이 교훈을 충실히 따르려나 보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이슈를 다시 끄집어내는 걸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열린민주당과 합당에 합의하면서 열린민주당이 내건 7가지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 안에 ‘검찰 수사권 폐지’가 가시처럼 박혀 있다. 여권에서 발의한 ‘공소청법안’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의 추진 모터를 재가동하는 모습이다. 이들 법안은 중수청을 신설해 검찰의 ‘6대 범죄’ 직접 수사권을 이관하고, 검찰은 기소와 공소유지 업무만 맡도록 돼 있다.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가속 페달을 밟았다가 여당 내에서도 속도 조절 주문이 나오고,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친다)을 외치며 총장직을 던지는 명분을 줬던 사안이다. 이것이 대선을 목전에 두고 되새김질되기 시작했다. 중수청 추진파는 검수완박이 검찰 개혁의 완성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추가적 개혁 조치가 시급하다는 것인데 현실은 어떠한가. 지금껏 벌려놓은 개혁 산물의 안착도 감당하기 버거운 상황 아니던가.

물가의 어린애처럼 위태로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만 봐도 그렇다. 신설 기관의 미숙함과 수사력 부족을 여실히 드러내는 중인데, 스스로도 “우리는 아마추어”라고 고백한다. ‘고발 사주’ 의혹 수사는 손준성이란 미로에 갇혀 헤매더니 지금은 가히 수사 실종 상태까지 가 있다. 다른 고위 공직자를 수사하는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언론·민간인 사찰 논란을 비롯한 온갖 잡음을 생산하는 중이다. “격려가 우선”이라는 법무부 장관의 당부가 생뚱맞게 들릴 정도로, 첫돌도 전에 존폐 논란에 직면한 게 공수처의 현실이다.

경찰은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 수사개시권과 종결권이 생겼지만 범죄수사 대응 능력이 과연 개선됐는지는 의문이다. 사건 처리 소요일수가 과거보다 늘었다는 통계도 있다. 지난해 1~10월 경찰 수사 사건 1건당 평균 처리 기간은 61.9일로, 2020년 같은 기간(53.2일)과 비교하면 8.7일 늘어졌다. 전국적 수사 조직인 경찰청 산하 국가수사본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부동산 투기 의혹 수사,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수사에 나섰지만 존재감을 내보이지 못한다. 이런데도 중수청을 덧세우겠다는 건, 먼저 지은 집의 설계에 문제가 있다는 데도 그 옆 부지에 비슷한 설계의 새 건물을 올리겠다는 것과 다름없지 않을까.

국가 차원의 반부패 수사 역량 저하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검찰이 쥐고 있던 수사권을 서너 토막으로 잘라 분양한다고 해서 수사 능력도 자동 이식되는 건 아니다. ‘¼×4’가 1은커녕 ¼에도 못 미칠 수 있는 것이다. 검찰이 지난해 부정부패 사범으로 단속한 숫자가 현 정부 출범 첫해 대비 9분의 1 수준으로 주저앉았다는 자료가 뜻하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 사회가 극적으로 정화된 게 아니라면 부패 수사망에 구멍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검수완박 구호를 재생하는 쪽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중수청이나 공수처, 경찰이 더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정의로울 것이란 보장은 있나. 결국 개혁 드라이브는 자신들을 위한 액션 아닌가.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시름하는 일반 국민의 삶과 상관은 있는 일인가.

지호일 사회부장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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