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포럼] 엔드리스샷

최현철 2022. 1. 7.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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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철 사회디렉터

추가 백신 접종의 명칭이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방역당국이 부스터샷 간격을 3개월로 줄이던 무렵이다. 그때만 해도 파이널(4차), 피니쉬(5차), 디엔드(6차) 등 코로나19 종식을 염원하지만 그럴 수 없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담긴 수준이었다.

돌파감염이 급격히 늘고, 오미크론 변이까지 확산하자 리스트도 추가됐다. 이제 64차까지 지어진 이름이 온라인에서 번지고 있다. 상당수는 아무말 대잔치지만, 눈에 띄는 이름도 보인다. 도돌이샷(24차), 네버엔딩스토리샷(26), 뫼비우스샷(30), 아직 부족하샷(51), 여기까지 올줄 몰랐샷(58), 환갑샷(61) 등. 재치있는 네티즌들은 엔드리스샷이나 무량수(10의 68제곱을 뜻하는 불교용어)샷 같은 걸 추가할 지도 모르겠다.

「 접종 완료 4개월 뒤 항체 급격 감소
두 달 마다 맞는 게 백신인지 회의
대안 못 찾으면 수렁서 못나올 것

사실 추가접종이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영유아와 소아를 대상으로 한 12개 국가 필수 예방접종 중 결핵을 빼곤 모두 2~3회를 맞는다. DPT(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결합백신)는 기본 3차에 4세 이후 1~2회 추가접종(소아마비 백신까지 혼합)을 해야 한다. 독감은 매년 맞는다. 1차 접종만으론 충분한 효과가 나오지 않거나, 바이러스가 해마다 변화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서울 양천구의 병원을 찾은 한 시민이 부스터샷 접종 주사를 맞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전 세계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때 mRNA 백신이 구세주처럼 등장했다. 이 백신의 바이러스 방어력이 90%를 넘는다니, 까짓 두 번 맞는 게 무슨 대수일까. 몇 달 지나지 않아 화이자 CEO가 “한 차례 더(부스터샷)!”를 외칠 때도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백신 효과가 떨어지는 것보다는 델타라는 독한 변종에 더 눈길이 갔다.

하지만 접종을 시작한 지 1년도 안 돼 네 번째 접종 얘기가 나오자 사람들의 시선도 급격히 싸늘해졌다.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사실이 도드라져 보이기 시작했다.

백신 허가를 앞두고 나온 기사는 대부분 두 번째 접종 후 1~2주 정도 지난 시점의 항체 형성 여부를 집중 분석한 ‘효능’ 또는 ‘방어력’에 초점을 맞췄다. 백신회사들은 접종 후 4개월가량 지나면 항체가 확 즐어든다는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굳이 강조하지 않았다.

실제 그런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4~6월 백신 접종 완료율 50~70%를 달성한 이른바 백신 선진국들은 일제히 ‘코로나 독립’을 외치며 방역조치를 해제했다. 이때가 백신 효력이 떨어지는 시점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기존 바이러스보다 훨씬 전염력이 강하면서 독하기까지 한 델타 변이가 세력을 확장하던 시점과 겹쳤다. 집단면역을 통한 코로나 종식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2020년 3~4월로 돌아간 듯한 상황이 펼쳐지자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화이자 CEO는 기다렸다는 듯이 “부스터샷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얼마 뒤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공개된다. 10월 초 미국의 의학전문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에 고령자와 면역 저하자들을 중심으로 화이자 백신을 두 번 맞은 뒤 2개월이 지나면 항체가 현격하게 떨어진다는 내용의 논문이 실렸다. 이쯤 되면 백신 사기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국민의 60~80%를 맞히는 데 3~6개월씩 걸렸는데, 그게 완성되기도 전에 새로 시작해야 한다면 애초에 집단면역은 불가능하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두 달에 한 번씩 맞아야 하는 게 백신이 맞느냐는 근본적인 질문까지 나왔다. 백신 접종이라면 늘 세계 1등을 놓치지 않던 이스라엘이 4차 접종 승인을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것도 이 때문이다.

들불처럼 번지는 오미크론의 기세에 각국 정부는 속속 4차 접종을 승인하고 있다. 접종 초기 효과는 확연하기에 일단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민들의 반발도 이전보다 훨씬 거세지고 있다. 승인한 당국마저 두 달 뒤 ‘5차’를 검토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마당에, 이런 반발을 음모론으로만 치부하기도 어려워졌다.

이미 2차 접종 때부터 접종 간격을 놓고 우왕좌왕했던 우리 방역당국은 부스터샷 접종 간격도 6개월에서 4~5개월, 3개월 순으로 당겼다. 이어 방역패스의 유효기간을 정했다. 2차 접종 후 6개월이 지나 부스터샷을 맞지 않으면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워졌으니 사실상 부스터샷을 의무화한 셈이다. 이에 더해 고위험군을 중심으로 4차 접종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지금은 검토지만 언제든 4차 접종이 의무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제 우리 방역당국도 진지하게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당장은 백신 외에 뾰족한 수가 없는 게 사실이다. 그렇기에 막무가내로 백신을 거부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다른 방안을 찾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엔드리스샷의 무한 수렁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최현철 사회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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