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값 불만이 반정부 시위로..카자흐스탄 '비상사태' 선포
중앙아시아 국가 카자흐스탄에서 새해 초부터 연료 가격 등 물가 상승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전국으로 번져 내각이 총사퇴하고 전국에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지난 5일(현지시간)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최대 도시 알마티와 수도 누르술탄(옛 아스타나) 등 전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야간 통행금지 조치를 발동했다. 이날 알마티에선 수천 명의 시위대가 시 청사와 대통령 관저 등에 난입하고, 다른 도시에서도 시위대가 정부기관을 공격했다.
6일엔 시위가 더 격해져 사망자가 속출했다. 외신은 군의 발포로 시위대 수십 명이 사살됐으며, 시위 진압에 투입된 군과 경찰 13명도 숨졌다고 보도했다. 1000여 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400여 명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시위대가 알마티 공항을 장악해 공항 이용객의 발이 묶이기도 했다. 아시아나항공에 따르면 지난 5일 알마티에 도착한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탑승객과 승무원 등 70여명도 공항 청사를 빠져나오지 못하다, 6일 오전 호텔로 이동했다.
비상사태 선포에도 시위가 격화하자 토카예프 대통령은 동맹인 러시아가 주도하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 도움을 호소했다. 러시아는 공수부대를 파견했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 공수부대가 카자흐스탄에 도착해 시위 진압 작전에 투입됐다고 전했다. 아르메니아 정부도 CSTO 소속 평화유지군을 카자흐스탄으로 파견할 것이라고 밝혔다. CSTO는 옛 소련에 속했던 러시아·벨라루스·아르메니아·카자흐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 등 6개국이 2002년 결성한 군사·안보 협력체다.
카자흐스탄의 시위는 새해 들어 차량용 액화석유가스(LPG) 가격이 2배로 인상된 데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지난 2일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면서 촉발됐다. 정부는 가격 상한제를 통해 생산 단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공급하던 LPG에 대한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중단하는 작업을 새해 첫날에 마무리했다. 그러자 주요 도시에서 LPG 가격이 2배로 인상됐고, 전반적인 물가 급등이 예상되면서 지난 2일부터 항의 시위가 시작됐다.
러시아의 일부 언론은 지난 5일 “카자흐스탄에서 전국 규모의 시위가 촉발된 것은 다음 주 진행되는 러시아와 미국·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간 릴레이 회담을 앞두고 러시아의 주의력을 흩뜨리기 위한 외부 세력의 선동”이라는 주장하며, 외부 세력으로 미국을 지목했다. 토카예프 대통령도 “카자흐스탄은 외국에서 철저히 훈련받은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을 받은 희생양이 됐다”며 이번 시위를 테러로 규정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은 카자흐스탄의 시위대가 평화롭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당국은 침착하게 시위대를 진정시킬 것을 당부한다”며 “미국이 배후라는 러시아 일각의 미친 주장은 완전한 거짓이며, 러시아가 수년 전부터 반복해온 가짜 정보 플레이의 일부임을 분명히 전달한다”고 말했다.
외신 등은 이번 사태가 카자흐스탄의 해묵은 정치 지형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2019년 물러난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 세력의 장기 독재와 전횡,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악화한 경제난 등에 대한 국민의 누적된 불만이 에너지 가격 인상 사건을 계기로 폭발했다는 시각이다.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1991년부터 28년간 장기 집권하고 물러난 뒤 안보회의 의장직을 맡으며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토카예프 대통령도 그의 세력으로 분류된다.
김영주·박형수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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