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 여성작가들 글쓰기의 요람, '어딘글방' 이야기

김남중 2022. 1. 6.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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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활활발발
어딘(김현아) 지음, 위고, 246쪽, 1만6000원
어딘글방에서 모여 글쓰기를 하는 청년들. 지난 2019년 한 행사에서 훌라춤을 공연한 뒤 나란히 서서 기념 사진을 찍는 모습이다. 어딘글방의 주인인 어딘은 왼쪽에서 네 번째. 위고 제공


소규모 글쓰기 모임인 ‘글방’이 유행이다. 곳곳에서 다양한 색깔과 형식을 가진 글방들이 열리고 있다. 글방 문화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어딘글방’이다. ‘어딘’이라는 예명을 쓰는 김현아(55)씨가 운영해온 글방이다.

“글방을 한 지 10여년이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주일에 한 번 글을 써서 만나 합평회를 하는 방식에는 변함이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의 글에 대한 피드백을 들을 때 두근두근 초긴장하는 얼굴들도 변함이 없다.”

어딘글방은 이슬아, 이길보라, 하미나, 양다솔, 이다울 등 출판계가 주목하는 1990년대생 여성 작가들을 배출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 작가들은 10대, 20대에 매주 어딘글방에 모여 써온 글을 발표하고 함께 비평하며 글쓰기를 수련했다. 영화감독이자 작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이길보라는 “어딘글방에서 배운 글쓰기는 나의 삶과 예술 창작의 가장 기본적인 도구다”라고 말했다.


‘활활발발’은 쟁쟁한 작가들의 스승인 어딘이 쓴 어딘글방 이야기다. 책에는 아직 작가라는 이름을 달지 않은 젊은이들이 쓴 끝내주게 멋진 글들이 많이 나온다. 글도 대단하지만 이렇게 뜨겁게 글을 쓰는 청소년과 청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어딘은 글방을 “일주일에 한 번, 한 편의 글의 무게를 기꺼이 함께 견디고 싶은 이들이 만들어내는 시공간”이라며 “그 속에서 냉정하고 차분하게 스스로를 이해하고 다정하고 활발하게 타인을 수용하며 지나간 시간을 딛고 다가올 시간을 창발 중”이라고 소개했다.

어딘은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이지만 글방의 젊은이들과 격의 없이 우정을 나눈다. 어딘은 이들과 함께 글을 쓰고 밥을 먹고 여행을 한다. 글방 멤버 중에는 중학생도 있고 장애인도 있고 게이도 있다. 어딘은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으며,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평등하고 가치 있다고 얘기한다. 다만 정직하고 용감하게 쓰기를 격려한다.

“글을 쓰는 일은 재능보다, 성실함보다, ‘용기’에서 비롯된다고 나는 종종 글방러들에게 말하곤 했다.… 위반의 대가를 치를 용기, 그것을 함께 기르자고 글방 같은 걸 계속하는 거라고 예나 지금이나 나는 생각한다.”

어딘글방의 초창기 멤버였으며 요즘 가장 힙한 작가로 부상한 이슬아는 “동료가 무엇인지를, 스승과 제자와 라이벌과 원수가 어떻게 동료가 되는지를 어딘으로부터 배웠다”면서 “큰 사랑을 지닌 스승에게 배웠으므로 나도 그를 닮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고백했다.

이 책은 글방이라는 소박하고 아날로그적인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 현명한 젊은이들과 멋진 어른이 주고받는 아름다운 관계에 대한 이야기지만 탁월한 글쓰기 책이기도 하다. 글쓰기란 무엇인가,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놓고 어딘과 청년들이 주고받는 뜨거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어딘은 “일주일에 한 편씩 한 번도 빠지지 않고 3년”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글쓰기는 매주 향상되지 않는다. 지지부진 지리멸렬의 답보 상태가 몇 달 혹은 해를 넘기기도 한다.… 진척 없는 시간이 흐르고 흐르다 어느 날 ‘점핑’의 순간이 온다. 지난주까지와는 완전히 달라진 글이 그야말로 짜잔 하고 나타난다.”

어딘은 또 “글쓰기는 용기와 관련된 행위”라고 강조하며 “눈부신 한 편의 글 안에 전투의 상흔이 이곳저곳 깊게 배어 있다”고 얘기한다.

그와 함께 글을 쓰면서 청년들은 “무엇이 되기 위해 거듭나는 과정을 나는 이따금 잊어버리고는 했다”고 고백하게 되고 “매끈한 글을 완성하기 위해, 정제된 결론에 이르기 위해서, 나를 어지럽게 하는 현실과 아직도 헷갈리는 내 생각을 건너뛰고 삭제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또 “중립, 중용, 평정 같은 말은 종종 쓸 데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렇게 글이 익어간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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