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만 하는 국회, 예산편성권으로 계획도 짜게 해야"[행정·정책 학회 토론회]

강태화 2022. 1. 6.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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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명확하게 구분해, 해야 할 일만 제대로 해야 한다”
한국행정학회ㆍ한국정책학회·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중앙일보와 함께 6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정책 세미나 ‘대전환의 시대, 대한민국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서 가장 강조된 내용이었다. 행정학회와 정책학회가 내부 토론을 통해 도출한 제언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자리였다.

이날 세미나에서 나온 제언은 국회의 역할 확대, 지방정부의 재정 자립, 시장에 대한 규제 철폐, 정확한 목표제시와 평가 그리고 정부 부처간 칸막이 철폐 등 다섯가지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행정학회 주최 대통령선거 후보자 초청 '차기정부 운영 및 주요 정책분야 대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①"국회가 평가만 하지말고 계획 짜게 해라"

두 학회는 시급하게 해야할 일로 ‘권한 이양’을 꼽았다. 특히 국회가 정책의 계획을 수립하는 단계에서부터 핵심 역할을 해야한다고 제언했다.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대표 발제에서 “국회는 현재 정책의 계획ㆍ집행ㆍ평가 과정 중 평가만 담당하기 때문에 무책임한 ‘지적질’을 반복하는 것”이라며 “국회가 스스로 정책의 계획을 여야 합의로 세워야 정책의 집행과 결과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특히 정부 권력의 원천이 ‘재정’에서 비롯된다고 규정하며 예산의 편성 시스템의 개혁을 주문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행정학회 주최 대통령선거 후보자 초청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박 교수는 “계획을 수립해야 할 핵심은 예산”이라며 기획재정부가 담당하고 있는 예산편성권의 상당부분을 국회로 이양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국회가 예산총액과 부문별 증가율을 결정하고, 기재부는 예산편성을 하는 방식으로 변화하면 된다”며 “나아가 정부가 수립한 중장기계획도 국회가 합의해 구속력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회가 계획단계에서 배제돼 실패한 정책 사례로는 탈(脫)원전과 노동정책을 꼽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국내 첫 원전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고식에서 ″원전 중심의 발전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뉴시스

박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은 국회 합의가 없었기 때문에 논란이 됐된 것”이라며 “민노총이 참여를 거부해 제대로 가동되지 못했던 대통령 직속 경사노위도 국회로 이양할 경우, 국회 결정이 최종안이 되기 때문에 민노총도 참여하지 않을 수 없게된다”고 했다.

토론에 참가한 강제상 경희대 교수도 “모든 것을 대통령이 하겠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다만 국회가 지금껏 정치적 주도권 싸움을 해오다보니 행정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점에 대한 보완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②"지방정부가 직접 국세 징수하게 하자"

지역 균형발전도 예산배분 방식, 즉 ‘돈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의견도 제시됐다.

12월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91회국회(정기회) 13차 본회의에서 '607조 7000억원' 규모의 2022년도 예산안이 가결 처리되고 있다. 역대 최대규모의 이번 예산에는 손실보상금과 매출감소 지원,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등 68조원 규모의 소상공인 지원 사업 예산이 포함됐다. 뉴스1

박진 교수는 “중앙정부가 모든 것을 결정해 지방은 집행만 하면 발전적 경쟁을 할 수 없다”며 “특히 지금처럼 중앙정부가 예산을 지방에 배분하는 방식으로는 지방정부가 중앙에 예속되는 구조만 고착화된다”고 지적했다.

대안으로는 지방정부가 정해진 비율에 따라 국세를 직접 징수하는 ‘공동세’ 도입이 제시했다.

박 교수는 “중앙정부가 국세를 걷어 지방에 교부할 게 아니라, 지방정부가 정해진 비율에 따라 직접 국세를 걷는 공동세를 도입하고, 재정자립도가 낮은 곳에 배분율을 높여 균형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며 “경쟁적 기업유치와 직결된 법인세부터 공동세로 전환해 지방정부의 적극적 기업유치 경쟁을 유도할 것을 추천한다”고 했다.

이와 함께 52시간 노동제, 최저임금도 지방정부가 상황에 맞게 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시됐다.

다만 이러한 주장에 대해선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이견이 노출되기도 했다.

▶이창길 세종대 교수=“공감하는 측면이 많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중앙정부의 역할은 계속 증가할텐데, 주요 사안에 대한 지방분권을 하는 문제도 쉽지 않은 과제다.”

▶박진 교수=“사실 2018년 행정안전부의 업무보고에 공동세 도입이 포함된 적이 있었지만, 교부세가 필요없게 되면서 행안부 내부에서도 역할 축소 등과 관련한 반대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한다.”


③"시장 규제를 시장의 자율에 맡겨라"

시장(市場)에 대해서는 기업의 시장 진입과 퇴출을 막고 있는 규제를 제거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행정학회 주최 대통령선거 후보자 초청 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마치고 사회를 맡은 원숙연 한국행정학회장(왼쪽)과 대화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날 세미나에서는 정부가 시장에 재화와 서비스를 직접 공급하는 것도 시장의 생산성을 저해한다고 의견이 개진됐다.

박진 교수는 “이윤이 적다고 정부가 직접 공급할 게 아니라 최저보조금입찰제 등을 통해 민간끼리 경쟁하게 해야 한다”며 “가령 저소득층이 모여살게 하는 방식의 LH의 임대주택보다 저소득층에게 바우처를 제공해 민간 주택을 구매하게 하는 방식이 효율적 주거안정과 소셜믹스(Social Mix) 차원에서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 2020년 기준 전체 기업의 40.7%가 이윤으로 이자도 내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정부가 과도한 보조금을 지급해 기업 퇴출을 막는 상황에 대해서도 “새로운 주체의 진입을 막는 대표적 규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학회 내부의 우려도 나왔다.

이창길 세종대 교수는 “시장까지 정부의 분권 프레임으로 넣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시장의 실패가 눈에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국가의 역할이 필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④"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정확하게 평가받자"

두번째 발제자로 참가한 이석환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가 성과를 측정해 국민에게 정확하게 보고할 수 있어야 한다”며 “차기 대통령은 취임 후 6개월 내에 국정과제와 부처의 핵심지표를 선정해 달성계획을 국회에 보고하고, 목표는 초등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표현돼야 한다”고 말했다.


⑤"부처간 칸막이를 없애야 성공한다"

두 학회는 또 “차기 정부는 ‘하나의 정부’가 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석환 교수는 “문광부, 교육부, 행안부, 기재부는 국민의 관점에서는 그저 하나의 정부”라며 “같은 자치단체 내에도 생태통로와 태양광 발전소가 지어지고, 도시숲을 조성하면서도 아파트를 짓고, 덕수궁 앞 가로수를 벌목하면서도 숲길을 조성하는 등의 충돌사례를 줄여야 국민의 요구에 바로 반응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행정학회와 한국정책학회, 경제인문사회연구원이 주최하는 '차기정부운영 및 주요정책 대토론회'가 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원숙연 한국행정학회 회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행정학회와 정책학회는 이날 ‘미래정부’를 주제로 한 세미나를 시작으로 오는 13일과 20일 미래인재와 국가교육, 기후변화와 에너지, 연금개혁, 지방분권, 과학기술, 국책연구기관 등 7가지 주제에 대한 세미나를 이어갈 예정이다.

원숙연 한국행정학회 회장(이화여대 교수)은 “코로나 팬데믹은 정부의 역할과 국가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고 있”며 “7차례의 세미나의 결론이 불편한 진실이 될 수도 있지만, 논의 결과를 담은 공식입장을 여야 선대위에 전달해 성공한 정부의 기초를 만드는 데 기여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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