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쏴도 '복붙' 반응 美..우선 순위 밀린 北, 한국 책임은?

박현주 2022. 1. 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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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에도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는 원론적인 규탄 입장만 내거나 기계적 대응에 그치는 분위기다. 북핵 문제가 미국의 외교적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현실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북한 국방과학원이 5일 극초음속미사일 시험발사를 진행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6일 보도했다. 노동신문. 뉴스1.


美, 北 미사일 발사에 판박이 입장 반복


미 국무부는 북한이 지난 5일 발사한 극초음속미사일 관련 입장을 묻는 중앙일보 질의에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으로 규탄한다"며 "주변국과 국제사회에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지난해 9월 28일 북한이 극초음속미사일을 처음으로 발사했을 때와 똑같은 입장이다.

지난해 10월 19일 북한의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때는 백악관과 성 김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모두 이를 '도발'로 규정했지만, 이번엔 도발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부터 꾸준히 이어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으로 규탄한다", "한ㆍ일에 대한 미국의 방어 약속은 철통 같다", "미국인, 미국 영토, 동맹에 즉각적 위협은 아니다", "북한의 불법적인 무기 프로그램은 상황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미국은 북한과 외교적인 접근에 전념하며, 북한의 대화 참여를 촉구한다" 등 단골 멘트를 매번 재활용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MANDEL NGAN / AFP. 연합뉴스.


입장 내고 통화하고 회의 열고...실효 조치는 없어


지난해 3월 25일 북한이 바이든 행정부 들어 처음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을 때만 해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열린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북한) 미사일은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 위반"이라며 "우리는 동맹, 파트너와 협의하고 있으며 북한이 긴장 고조를 선택한다면 상응하는 대응이 있을 것"이라고 직접 경고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해 미 국무부나 주한미군을 관할하는 인도태평양사령부 차원의 관성적 대응이 사실상 전부다. ▲ 한국 언론 질의에 답변 ▲ 한ㆍ미 북핵 수석대표 간 유선 협의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회의 소집 등 정해진 '메뉴'에 있는 대로 움직이는 수준이다. 북한이 SLBM 도발을 했을 때도 독자 제재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

유엔 안보리 회의가 열리더라도 중ㆍ러의 반대로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한목소리는 나오지 않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10월엔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와 SLBM 발사로 인해 안보리 비공개 긴급 회의가 두 차례 열렸지만, 공동성명 채택은 모두 불발됐다.

지난 5일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선 안보리 회의 소집 여부도 아직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6일 "현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정교회 크리스마스 휴일(1월 7일) 일정 등으로 안보리가 쉬고 있다"며 "아마 다음 주는 돼야 관련 일정이 재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북한의 무력 도발에 대한 미국의 소극적 대응이 관례처럼 굳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경우 북한은 무력 증강에 더욱 박차를 가할 우려가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의 의도는 한ㆍ미가 비핵화를 요구할 수 없을 정도로 핵무기 고도화를 달성해 핵 군축 협상으로 유도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도 "이미 국내외 여론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한반도 군비 경쟁으로 보는 측면이 있다. 북한이 불법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이 묻히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1년 북한 미사일 발사 일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정작 韓부터 북핵ㆍ인권 눈 감아


이처럼 미국이 북한의 도발에도 큰 관심을 주지 않으며 외교 정책의 후순위에 두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건 동맹인 한국이 잘못된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위협에 처한 당사자가 북한의 도발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데,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라는 건 무리라는 지적이다.

정부는 지난해 9월 15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대통령이 기자들 따위나 함부로 쓰는 '도발'이라는 말을 망탕 따라 하고 있는 데 대해 매우 큰 유감을 표시한다"고 경고한 뒤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도발로도 부르지 않고 있다.
북한이 지난해 9월 28일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했을 때도 "유감"만 표했고 지난해 10월 19일 SLBM 발사 때는 "깊은 유감"이라고 반응했다. 이어 지난 5일 극초음속미사일 발사에 대해선 "우려"라는 표현으로 수위를 낮췄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까지 나서서 "북한이 지난 4년 동안 핵ㆍ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유예하는 모라토리엄을 지켰으니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지난해 9월, 미국 외교협회 대담)는 취지의 주장을 하는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미 본토까지 날아오진 않는 단거리나 중거리 미사일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를 느끼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북한 관련 현안이 미 대외 정책에서 밀려나는 건 핵 문제뿐 아니라 인권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미 북한인권법에 명시된 국무부 북한 인권특사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1년째 공석이다. 이와 관련, 외교가에선 '인권 문제로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한국 정부의 입장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park.hy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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