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면 더 특별해질까..'非소비'가 만든 이중성

2022. 1. 6. 15:3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영칼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 조나 버거 교수는 최근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버거 교수는 이런 상황을 연출했다. 저녁에 친구와 함께 마시려고 12달러짜리 와인을 샀는데, 열지 않고 다음에 마시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에 와인을 마실 기회가 생겼을 때 사람들은 과연 그 와인을 오픈할까? 실험 결과, 해당 와인을 마실 가능성은 의외로 적었다. 연구의 핵심은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을 미룬 제품은 다음 기회에도 사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고급 샴페인도 아닌 평범한 와인이지만, 마실 기회를 미루면 특별한 와인이 되기 때문이다. 다음번에도 마시지 않으면 와인의 특별함은 더 커지고, 데이트, 생일 파티 등 점점 더 충분히 특별한 상황을 기다리며 모셔두게 된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도자기, 결혼식 예복은 그 자체가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12달러짜리 와인은 어떻게 특별하게 여겨지는 것일까. 사용하지 않음, 즉 비소비(nonconsumption) 행동 자체가 물건에 특별함을 부여해 소비자 인식을 바꾸고, 과대평가된 특별함은 이후 계속 사용 가능성을 떨어뜨린다. 평범한 물건이 보물로 변해가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특별함의 나선(specialness spiral)’으로 설명된다.

실제로 버거 교수는 비슷한 일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학교에 자리 잡기 전, 그는 채용 인터뷰를 준비하며 구두를 한 켤레 장만해 몇 차례 신었다. 그런데 그 후로는 다시는 신지 못했다고 한다. 그 구두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좋아하고 아끼기 때문에 꼭 신어야 하는 정말 특별한 날을 기다리며 계속 미룬 것이다. 그러다 몇 년이 지나고 유행에 뒤처지게 된 구두는 결국 버려지게 됐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물건은 생각보다 많다. 양말 한 켤레, 수건 한 장도 마찬가지다. 새 양말을 신을 기회를 다음으로 미루면 시간이 지날수록 오늘이 그만큼 적당한 날이 아닌 것 같아 또 다음 순간을 기다리기가 십상이다. 사용하지 않음으로 특별해진 물건, 평범한 보물이 하나둘 쌓이는 것이다. 기업은 상품이 특별하게 여겨지기를 원한다. 그런데 특별함을 강조하다 보면 구매 후 소비자가 실제로 상품을 사용할 기회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특별하게 여겨지는 셔츠, 양말, 와인은 한 번도 제대로 소비되지 않고 오랜 시간이 지나 수명을 다할 수 있다. 소비자가 브랜드를 충분히 경험하지 못하면 다음에 같은 상품을 재구매할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든다. 브랜드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으니 고객 생애 가치도 낮아지는 것이다. 집 안에 쌓이는 잡동사니에 스트레스를 받은 소비자가 기업을 원망할 수도 있다.

버거 교수는 특별함에 따른 부작용을 방지하려면 제품을 사용하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라고 조언한다. 멋진 드레스, 맛있는 와인이 아닌, 가족 파티에 어울리는 드레스, 스테이크와 함께 마시기 좋은 와인과 같은 식이다. 또 바나나를 가장 맛있게 먹는 날짜를 정해주듯, 제품을 빨리 소비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가능하다. 소비자는 특별함이 과대평가된 잡동사니를 쌓아둘 가능성이 줄고, 마케터는 상품 사용 가치를 제대로 알려 재구매 가능성을 높여 좋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41호 (2022.01.05~2021.01.11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