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으로 확인한 빅브라더 공포

임상균 2022. 1. 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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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균 칼럼]
연락 뜸하던 지인들 텔레그램 가입하니 "어서 와"
평범한 일반인까지 감시·억압 싫어 사이버 이민
국민 옥죄는 검열·사찰..'큰 정부' 견제 방법 없나
아직도 카톡을 쓴단 말이야? 기자 맞아?”

얼마 전 친한 지인들과 저녁 자리에서 들은 핀잔이다. 요지는 얼른 텔레그램으로 넘어가라는 얘기였다. 카톡은 국내 메신저라서 ‘당국’이 들여다볼 수 있고, 텔레그램은 독일산인지라 접근이 안 된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죄지은 일도 없는데 ‘검열’ 내지 ‘사찰’을 신경 쓸 필요가 있겠냐고 여겨왔다. 하지만 지인들 생각은 달랐다. 누군가가 나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 자체를 경계했다. 소름 끼친다는 말도 튀어나왔다. “네 침실에 몰래카메라가 설치돼 있다고 생각해봐.” 한 선배의 말을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일단 텔레그램을 깔아봤다.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카톡으로 자주 소통하던 지인들이 줄줄이 나의 입성을 반겨줬다. 내가 새로 가입했다는 표시가 떴나보다. ‘이제야 오시나’ ‘반갑네 친구’ ‘어서 와’ 같은 환영 문구는 물론 고릴라가 손을 흔들고, 아기 공룡이 히죽거리고, 강아지가 거꾸로 매달리고, 온갖 이모티콘이 날아왔다.

한동안 연락이 뜸하더니 다들 이리 와서 놀고 있었나 보다. 평범한 일반인까지 ‘빅브라더’의 공포를 피해 사이버 이민에 나서고 있었다. 어떤 후배는 그냥 인사말인데도 잠금장치 표시가 붙은 메시지로 보내왔다. 텔레그램 안에서도 비밀 대화를 써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빅브라더 논란이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최근 우르르 텔레그램으로 넘어간 계기가 있었다. 지난해 12월 10일부터 일명 ‘N번방 방지법’이 시행됐다. 단톡방에 동영상이나 압축 파일을 올리려면 사전 검열을 거쳐야 한다. 불법 촬영물 유통을 사전에 막겠다는 취지로 법을 만들었다지만 ‘국가가 개인의 사적 대화까지 검열하냐’는 반발이 거세다.

공수처는 고위공직자 수사는 못하면서 무차별 통신 조회에 나서고 있다. 야당 국회의원의 76%, 현 정권에 불리한 보도와 주장을 한 언론인과 교수 등이 타깃이 됐다. 야당 대통령 후보와 부인, 친지까지 당한 것이 드러나면서 대선 정국의 뇌관이 돼버렸다.

가뜩이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정부의 힘이 막강해졌다. 방역을 위해 이동, 거주, 영업 등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QR코드라는 간편한 도구로 시민 개개인의 동선을 고스란히 확보해간다. CCTV·AI가 구축하는 ‘스마트시티’로 모든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다. 백신패스가 없으면 백화점과 마트도 가지 못한다. 백신 강제 접종을 위한 조치다.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코로나19 시국이니 거부할 수는 없지만 불만과 불안은 쌓여간다. 문재인정부는 아랑곳없이 호기를 만난 듯 ‘큰 정부’의 위력을 내뿜는다.

코로나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빅브라더’가 될 수밖에 없는 국가 권력은 누가 견제할 수 있는가. 조지 오웰 ‘1984’의 한 대목이 잊혀지질 않는다.

“빅브라더는 존재합니까?”

“물론 존재하지. 당도 존재하고 말이네. 빅브라더는 당의 화신이지.”

“제가 이렇게 존재하듯 존재한다는 겁니까?”

“자네는 존재하지 않네.”

[주간국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41호 (2022.01.05~2021.01.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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