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범의 행복심리학] 일하는 시간은 길고, 노는 시간은 왜 짧게 느껴질까

최동현 2022. 1. 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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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행복한 삶을 위한 시간 사용법
경험하는 공간·시간 왜곡하는 뇌
착시현상도 이 때문에 일어나
행복 추구가 목표가 되는 순간
사람들은 시간 부족·불행 느껴
같은 시간도 사람에 따라 감각 달라
어떤 이에게는 세상은 느림보이고
어떤 이에게는 번잡하고 어수선한 곳
현재에 집중하면 시간은 확장
현재의 시간만이 나의 소유물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은 똑같아
미래
이용범 소설가

뇌는 우리가 경험하는 공간과 시간을 왜곡한다. 뇌는 제 마음대로 예측하고, 다듬고, 변형시킨 공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착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시계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시간은 일정하다. 그런데도 일하는 시간은 길고, 노는 시간은 짧게 느껴진다. 그나마 우리는 공간을 잘 구분하는 편이지만 시간에 대해서는 까막눈에 가깝다.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그 카페에 간 적이 있는가. 갔다면, 그때가 언제인가. 아마 카페에 갔던 경험은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 언제 갔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손에 쥔 모래알처럼 시간이 어떻게 슬금슬금 새어나가는지 알지 못한다.

시간은 늘 부족하다

사람들은 늘 시간에 쫓기며 살아간다. 부족한 시간에 대한 현대인들의 스트레스는 미래를 상상하는 데서 비롯된다.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그것이 실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글을 잘 쓴다고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며, 노래를 잘한다고 가수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미래의 가능성을 과대평가하기 때문에 열심히 ‘현재’를 소모하면서 살아간다.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의 저자 대니얼 길버트는 ‘미래에 대한 상상은 그 자체가 속임수’라고 말한 바 있다. 내일 싱싱한 사과를 먹기 위해 오늘 썩은 사과를 먹어치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행복은 그냥 오지 않는다. 행복해지려면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2018년 미국과 캐나다 공동연구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행복이 목표가 되는 순간 사람들은 시간 부족과 함께 불행을 느낀다. 그래서 이들은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으로 불행을 해소하려는 경향이 있다. 반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시간의 여유를 느낄 뿐 아니라 타인을 돕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한다.

행복을 추구할수록 행복에서 멀어진다는 사실은 슬픈 역설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늘 현재 누리는 행복보다 더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불행은 이로부터 비롯된다. 시간은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 하지만 같은 시간이라도 사람에 따라 시간감각이 다르다. 가령 특정 성격을 가진 사람은 시간 부족에 대한 압박감이 더 심하다. 이들은 시간의 압박을 느낄 때 심장박동, 혈압, 혈액 중 호르몬 농도, 호흡 횟수가 쉽게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시간증후군은 심신의 변화를 일으켜 수명을 단축한다. 이는 100년 인생을 50년으로 축약해서 사는 것과 같다.

하루를 열흘같이

동물의 시간감각은 모두 다르다. 가령 파리는 깜박이는 불빛을 초당 240회까지 구분할 수 있지만, 바다거북은 초당 15회를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초당 60회 정도의 프레임을 가진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파리를 잡기는 어렵다. 바다에서 살아가는 생물은 이보다 훨씬 느리다. 이들에게 세상은 슬로 모션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것이기 때문에 먼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대개 작은 동물일수록, 포식자의 위협에 시달리는 동물일수록, 뇌가 발달한 동물일수록 신진대사가 빠르고 세상을 인지하는 프레임의 속도도 빠르다. 이들은 멀리 있는 포식자나 사냥감을 보았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머릿속에 그릴 수 있다. 미래를 상상하는 이 능력 때문에 고등동물은 공포와 불안감을 안고 살게 되었다.

인간 역시 개인마다 조금씩 다른 카메라 셔터 속도를 가지고 있다. 긴장감과 초조함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확장된 시간 속에서 여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예컨대 숙달된 명상가는 현재의 시간을 확장하여 ‘지금 여기(the here and now)’에 머문다. 이들은 영원한 현재 속에서 충만한 삶을 누린다. 또 사고나 죽음 같은 시간상의 사건들을 위협으로 느끼지 않고, 비극적인 사건에도 무덤덤하게 반응한다. 말 그대로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급박한 위기에 닥쳤을 때에야 비로소 시간의 확장을 경험한다. 2007년 미국 베일러의과대학 연구팀은 16층 높이의 무중력 놀이기구에 실험참가자들을 태운 후 2.5초 동안 낙하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이들이 느낀 낙하 시간은 바깥에서 관찰한 이들보다 세 배나 길었다. 몸이 위험에 처한 순간, 뇌는 모든 것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많은 양의 정보를 한꺼번에 수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뇌는 사건이 천천히 일어났다고 해석한다. 몇몇 학자는 서로 다른 시간감각이 사람의 성격이 다른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카메라 셔터 속도가 개인의 성격, 의사결정, 일처리, 운동 능력 등을 설명해준다는 것이다. 빠르게 전환하는 프레임을 가진 사람에게 세상은 느림보처럼 보이고, 반대의 프레임을 가진 사람에게 세상은 너무나 번잡하고 어수선한 곳이다.

돈과 시간의 역설

시간감각을 바꿀 수 있다면 인생을 몇 배로 늘여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어진 시간 안에서 아등바등 촌각을 다투며 살아간다. 우리는 영원히 손에 쥘 수 없는 행복을 좇으며 물적 소유를 탐닉하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물건이 아니라 시간을 살 수 있다. 우리 주변에는 시간을 사거나 파는 상점들이 널려 있다.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자신의 시간을 팔고 있다. 음식점에 들어가면 키오스크로 음식을 주문하고, 스스로 음식을 나르고 빈 식기까지 반납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림자 노동(shadow work)’으로 자신의 시간을 지불하는 대신 약간의 비용을 할인받는 것이다. 우리가 음식점, 주유소, 은행에 시간을 팔아 벌어들이는 이익은 쥐꼬리만큼도 되지 않는다.

숲속으로 들어가 자연인으로 살 게 아니라면 시간을 파는 대신 시간을 사야 한다. 2017년 미국 하버드비즈니스스쿨 연구팀이 6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청소, 세탁, 요리 등을 직접 하지 않고 사람을 고용하여 해결하는 사람들은 행복도가 매우 높았다. 2016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연구팀도 사람들이 돈보다는 시간에 가치를 두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즉 사람들은 돈보다는 출퇴근 시간의 길이나 근무시간을 더 중시했고, 시간을 우선시했을 때 더 행복감을 느꼈다. 하지만 누가 그걸 모르겠는가.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기려면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근무시간을 줄이려면 경제적 여유가 뒤따라야 한다. 시간을 사려면 더 열심히 일하면서 시간에 쫓기는 악순환의 늪에 빠지는 것이다.

돈을 적게 들이고 시간을 사는 방법도 있다. 첫째, 시간에 값을 매기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가령 시간당 2만원을 버는 사람이라면, 2만원보다 싼 한 시간은 무조건 사는 것이 낫다. 둘째, 좋은 사람들과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연구에 의하면, 타인을 위해 시간을 사용하는 사람의 시간은 더 느리게 흘러간다. 셋째, 미래의 성취를 탐하기보다 ‘지금 여기’에 머무는 것이다. 현재에 집중하고 있을 때 시간이 확장된다. 넷째, 시간이 흐르면 지금보다 더 행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 것이다. 많은 연구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걱정과 달리 50대 이후의 삶은 이전의 삶보다 전반적으로 행복하다.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의 소유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시간뿐이다. 현재의 시간만이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나의 소유물인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면서 하루가 가는 것을 아쉬워하고, 지금 이 순간의 평안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불안해한다. 하루의 시간이 24시간이라는 것은 모든 이에게 동일하다. 그러나 시간에 대한 주관적 느낌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충분히 살고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그 절반도 안 되는 시간을 살아간다. 짧은 인생을 사는 사람은, 그 절반의 시간마저 근심에 젖어 있다.

이용범 소설가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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