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안티 페미니즘 유감

2022. 1. 6.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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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홍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전 노동부 장관)


흔히 MZ세대라 불리는 20, 30대 젊은이들의 문화와 가치관을 기성세대가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언제나 세대 간의 갈등은 있어 왔고 이런 갈등은 사회 발전의 결과이자 동시에 동력이기도 하다. 다 인정하면서도 못내 아쉽고 씁쓸한 뒷맛이 남을 때가 있다. 특히 인류 보편적이라 믿었던 가치가 흔들린다는 느낌이 들 때는 더욱 그렇다.

‘페미니즘’에 대해 요즘 젊은 남성들이 종종 불쾌감, 거부감, 심지어는 혐오감이나 적대감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곤 한다. 기성세대 남성들은 페미니스트였다는 말이 아니다. 그들은 애초에 가부장적인 남성 우월주의자에 가까웠던 만큼 설사 내심으로는 페미니즘을 혐오하더라도 그런 감정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데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반면에 신세대 남성들의 안티 페미니즘은 당당하고 공개적이다. 지나친 여성 우대로 인해 자신들의 기회가 제한되고 공정하지 못한 역차별을 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피해자이니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젊은이들의 팍팍한 삶이 이런 현상을 낳았다.

인류 역사는 사회적 약자의 해방사이기도 하다. 노예해방의 역사, 노동해방의 역사였고 여성해방의 역사였다. 현대 문명사회에서 노예제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노예해방은 종결됐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은 노예가 아닌 임금노동자들의 몫이다. 자본에 고용돼 노동력을 판매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수취하는 자본주의적 노동자를 신분적 예속 하에 계속 묶어둘 수는 없다. 그래서는 시스템이 돌아가지 않는다. 노동자는 이제 자유계약의 당사자여야 하기에 자유인일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의 정착과 함께 노예해방이 완성된 연유다.

반면에 노동해방과 여성해방의 역사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노동자가 신분적 예속을 벗어나 정치적으로는 자유인이 됐지만 경제적으로도 바로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형태로 발현된 경제적 예속에서 벗어나 노동자가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자 하는 역사의 물줄기가 노동해방 운동이다. 모든 해방의 역사는 해방 당사자의 역할 증대와 궤적을 같이한다. 생산 과정에서 자본에 비해 노동의 역할이 미미했던 초기에는 노동해방이 빠르게 진전될 수 없었다. 기술 발전과 함께 노동의 중요성이 증대되면서 비로소 노동해방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오늘날은 일부 과격한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질 만큼 노동해방이 진전됐다. 노동의 역할 증대보다 더 빠른 속도로 노동해방이 추진되고 있다는 비판인 셈이다. 과속도 위험하지만 그렇다고 노동운동 자체가 무의미해졌을까. 노동자는 이제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란 말일까. 노동에 대한 자본의 통제 질서인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되는 한 노동자는 여전히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다.

여성해방도 마찬가지다. 남녀가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누구의 역할이 더 중요한가에 따라 남녀 간의 사회적 관계가 본질적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수렵 시대에는 근육의 힘이 센 남성이 당연히 우월적 지위를 누렸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진입한 오늘날도 육체적 능력에서 앞서는 남성이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더 큰 역할을 한다고 우길 수 있을까. 기술 발전에 힘입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여성의 역할이 빠르게 증대됐다. 여성해방의 진전은 당연한 결과다.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이 관철될 수 있는 객관적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당혹감을 느낄 수는 있다. 실제로 여성해방의 급진전으로 남성들이 역차별을 당하는 사례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은 이제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여성해방은 종결됐다고 선언해도 좋을까.

노예해방은 자본주의의 정착으로 종결됐지만 노동해방은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되는 한 여전히 미완성이다. 여성해방은 체제의 성격과 무관하게 어쩌면 영원히 미완성의 과제로 남을지도 모른다. 육체적 조건, 출산과 양육의 문제 등 여성에게는 극복하기 어려운 생물학적 제약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이념화된 일부 전투적 페미니즘에 대한 거부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이 안티 페미니즘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전투적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이 정당하다고 해서 노동운동 자체를 부정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권기홍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전 노동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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