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새해에는 '더' 빼기를

2022. 1. 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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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예기치 못한 상황이 종종 생긴다.

"모든 것은 가능한 한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더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사실 이 표현은 아인슈타인이 강의 때 했던 말을 압축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 '더' 자극적인 인상을 남기고자 말을 '더'하다가,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과 혼란을 일으킨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회는 현실의 단순성을 그대로 대면하고 그것을 '더' 과장하거나 '더' 단순화하지 않고 서술할 수 있는 절제된 언어와 겸손한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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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예기치 못한 상황이 종종 생긴다. 교육 관련 일을 하다 보니 덕담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가 있다. 바쁘게 연말을 마무리하고 피로 속에서 새해를 맞이하느라 나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는데, 다른 사람 앞에서 뭔가 말을 하려면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다.

여러 눈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부탁을 거절할 정도로 강심장은 못되니 쭈뼛거리며 입을 열기 시작한다. 덕담치고 너무 담백하고 심심한 것 같아 뭔가 심오한 의미를 불어넣으려다 곧 말이 지저분해진다. 빨리 끝맺어야겠다는 초조함에 감동적이고 의미심장한 결론을 찾다가 오히려 말이 더 꼬이고 길어진다.

어디 덕담뿐이랴. 강의든 설교든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마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자 뭔가 해결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한정된 시간에 많은 말을 군더더기 없이 해야 하는 사명을 가진 앵커들은 어떻게 뉴스를 마무리하는지 관찰했다. 유명 앵커들은 단순하게 뉴스를 끝맺었다. “저희가 준비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너무 딱 자르는 감도 있지만 바로 이거다 싶었다. 그래서 “제가 할 말은 여기까지입니다”를 몇 번 써 봤더니, 그 앞에 무슨 말을 했든 상관없이 ‘여기까지’라는 말에 청중의 표정이 환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verything should be made as simple as possible, but no simpler.” 이 문장은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명언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말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모든 것은 가능한 한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더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사실 이 표현은 아인슈타인이 강의 때 했던 말을 압축한 것이라 한다. 아인슈타인 외에도 물리학자들은 ‘복잡한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나 모형은 가능한 한 단순해야 한다’는 전제를 가진다. 문과 출신이라 그런지 과학자들이 단순명료하게 우주의 운동과 법칙을 설명하는 것을 보면 존경심이 우러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명언은 또 다른 의미도 품고 있다. 물리학이 단순한 이론을 이상으로 삼을지라도, 단순성의 추구가 ‘단순화’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는 물리학자만이 빠지기 쉬운 유혹이 아니다. 우리는 현실의 복잡성이 주는 당혹감과 피로함에 실재를 있는 그대로 보거나 서술하지 않고 ‘더’ 단순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각 개인의 고유한 삶 이야기, 공동체가 품은 깊고 넓은 전통, 타 문화가 가진 낯섦 등이 심하게 왜곡되거나 억눌러져 버린다.

반대로 우리는 단순한 사태를 ‘더’ 구구절절하게 서술하려는 욕심도 있다. 내 이야기를 어떻게든 상대가 듣게 만들 때, 자기기만의 서사를 부풀릴 때,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언어로 타자를 조종할 때,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할 때면, 현실의 단순함이 너무 밍밍해 답답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더’ 자극적인 인상을 남기고자 말을 ‘더’하다가,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과 혼란을 일으킨다. 인류의 타락 이야기가 담긴 창세기 3장도 하나님 말씀에 인간이 뭔가 ‘더’하여 해석함으로써 자기 생각과 행동을 정당화하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단순성’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하면서도, 인간으로서 완전히 성취하기 힘든 덕목이 아닐까 싶다.

2022년 대한민국 사회와 교회는 짧은 지면에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여러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이런저런 이야기에 휩쓸리며 사회는 혼란스러워지기 쉽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회는 현실의 단순성을 그대로 대면하고 그것을 ‘더’ 과장하거나 ‘더’ 단순화하지 않고 서술할 수 있는 절제된 언어와 겸손한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몸무게와 뱃살 이외에도 ‘더’ 뺄 것이 있음을 기억하며 임인년을 맞이한다.

김진혁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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