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고시원

장주영 2022. 1. 6.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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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영 사회에디터

“그것은 방이라고 하기보다는 관이라고 불러야 할 크기의 공간이었다.”

소설가 박민규는 소설집 『카스테라』(2005)에 실린 단편 ‘갑을고시원 체류기’에서 고시원을 이렇게 묘사한다. 소설 속 주인공(나)은 아버지 사업의 부도로 친구 집에 얹혀살다 월세 9만원짜리 고시원으로 이사한다. 몇 년 뒤 주인공은 고시원을 나와 취업도 하고 결혼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났음에도, 고시원살이의 팍팍함은 ‘관(棺)’이라는 단어를 통해 또렷하고 선명하게 떠오른다.

고시원은 대개 6.6㎡(2평) 내외의 작은 방으로 돼있다. 자는 시간마저 쪼개가며 공부하는 고시생들을 위한 구조다. 법령에서도 ‘구획된 실(室) 안에 학습자가 공부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숙박 또는 숙식을 제공하는 형태의 영업(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을 고시원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고시생들은 열악한 고시원보다 쾌적한 원룸을 선호한다. 대신 고시원은 취약계층으로 채워졌다. 고시원 거주 2010가구를 대상으로 한 ‘서울시 고시원 거처 상태 및 거주가구 실태조사(2020년)’에 따르면 40대 이상(55.3%)과 남자(76.6%)가 많았으며, 이혼(20.6%)이나 미혼(67.5%)으로 돌볼 가족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장애인(5%)과 금융채무 불이행자(8.5%)의 비율도 높았다.

다닥다닥 방들이 붙은 고시원에서 불이 나면 참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2018년 서울 종로구의 국일고시원에서 일어난 불로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사망자 대부분이 창문조차 없는 방에서 거주하면서 피해가 더 커졌다. 경찰 조사결과, 70대 거주자가 방안에서 사용하던 전기 히터에서 불길이 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채광과 난방이 열악하고 스프링클러조차 없는 낡은 시설이 사고를 키운 셈이다.

서울시는 이런 참사를 막기 위해 7월부터 고시원의 최소 실면적 기준과 창문 의무 설치 규정을 신설한 건축 조례 개정안을 시행한다. 전용면적 7㎡ 이상(화장실 포함 시 9㎡ 이상)이어야 하고, 방마다 창문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늦었지만 당연한 결정이다. 여기에 더해 고시원 거주자의 자활 등 복지 전반에 관한 정책도 계속되어야 한다. 창(窓) 하나 냈다고 뒷짐 지면, 고시원은 ‘볕 드는 관’이 될지도 모른다.

장주영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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