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가장 가까운 마애불.. 어떤 염원을 담은 걸까
[정윤섭 기자]
하늘(신)을 향한 인간의 염원은 때로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만들어 낸다. 인간에게 종교적 열망이 얼마나 강한지는 불가사의한 세계의 여러 유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고려시대는 불교국가라 할 수 있다. 이 시기 바위의 암벽에 조성된 거대한 마애불을 전국의 여러 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지금의 기술로는 어려울 것 같은 마애불 조성은 당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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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출산 구정봉 호남의 금강산인 월출산은 기암과석으로 이루어진 남성적인 산이지만 불교문화가 융성한 곳이다. 구정봉은 천황봉과 함께 월출산의 양 봉우리를 이루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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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나주평야를 지나 영암으로 내려오다 보면 벌판 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월출산을 만나게 된다. 산은 아주 높지 않지만 넓은 벌판에 우뚝 서 있어서인지 웅장하기 이를 데 없다. 지난 1일 이곳을 방문했다.
월출산은 대부분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지만 이 산을 둘러싸고 동쪽에 천황사, 남쪽에 무위사, 서쪽에 도갑사 등 사방에 사찰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1987년 광주 민학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용암사지, 천황사지, 성풍사지, 청풍사지, 월남사지, 월산사지 등 40여 개의 절터와 사찰이 확인되어 불교문화가 매우 융성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불교문화가 융성한 것은 통일신라와 고려시대를 거쳐 가는 동안 이 지역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의 역할과 비중, 문화적 역량이 매우 높았음을 반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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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출산 마애불좌상 월출산 구정봉 아래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조성되어 있는 마애불상이 있다. 월출산 넘어 멀리 서남해를 바라보며 이곳 사람들의 염원을 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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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의 여러 불교유적 중에 구정봉(738m) 아래에 조성되어 있는 마애불좌상은 불교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는 월출산마애불은 지금까지 조성된 마애불 중에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 하늘과 가장 가까운 마애불이라 불린다. 마애불은 멀리 서남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이곳 사람들의 염원을 모두 들어줄 듯 인자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월출산 마애불을 보려면 주봉인 천황봉과 양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구정봉을 올라야 한다. 구정봉은 기암괴석이 기묘하고 아름다워 월출산의 가장 아름다운 비경을 갖추고 있는 봉우리다.
이 마애불을 보기 위해서는 구정봉 정상을 넘어가야 하는 상당히 힘든 등반을 해야 한다. 오래전에는 영암읍 쪽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갔을 것으로 보이지만 등산로가 없어진 지 오래되어 강진군 월남마을에서 구정봉을 거쳐 가든지, 도갑사에서 출발하여 구정봉을 거쳐 가든지 하는 험난한 등반의 고통이 뒤따른다. 어찌 보면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워 오랫동안 잘 보존되어 있었던 셈이다.
이처럼 월출산마애불좌상은 험준한 바위로 이루어진 곳에 조성되어 많은 인력과 석공들의 기술, 그리고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경제력이 뒤따라야 했을 것이다. 이를 보면 이 마애불을 조성한 사람들의 실체와 세력, 그리고 무슨 목적으로 이 마애불을 조성하게 되었는지 매우 궁금해진다.
월출산마애불좌상은 오랫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다가 지난 1970년 무렵에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거의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마애불은 높이 약 8.6m로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조각 기법도 우수하여 1972년 국보 제144호로 지정되었다.
마애불 인근에서는 '통화이십오년정미(統和二十五年丁未)'라 쓰인 기와가 수습되었는데 통화 25년은 1007년으로 이를 통해 고려초기 무렵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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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암사지 터 마애불좌상이 있는 곳에서 약 150미터 내려가면 용암사지터가 나온다. 사방이 절터를 빙 둘러 보호하듯 하고 있어 수도처로서 최고의 절터로 보인다. |
ⓒ 정윤섭 |
구정봉 아래 마애불은 어느 절에서 주관하여 조성하였을까? 인근 두륜산 대흥사 북암에 북미륵암마애여래좌상이 있듯이 마애불 인근에는 마애불을 조성하고 관할했을 절이나 암자가 있다.
마애불 바로 아래로 약 150여m 내려가면 용암사지 옛 절터가 있다. 용암사지는 산들이 빙 둘러싸고 있는 좁은 협곡 같은 곳에 꽤 넓은 터를 유지하고 있다. 마애불에서는 멀리 서남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지만 조금 내려온 용암사지는 사방이 산줄기로 둘러싸고 있어 아늑하고 속세의 번뇌를 다 잊을 수 있을 것 같은 요지에 자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참선을 하고 부처의 도를 깨닫는 수행자가 거처하기에는 최고의 자리로 여겨진다.
산 정상 부위에 이런 절터가 자리하고 있으리라고는 상상이 가지 않는 곳이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사방이 둘러싸여 있어 태풍과 북풍한설도 다 비켜 갈 수 있을 듯한 명당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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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암사지삼층석탑 용암사지터 남서쪽 언덕에는 삼층석탑이 서있다. 멀리 산벽을 배경으로 서있는 석탑의 모습은 한때 융성했던 용암사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
ⓒ 정윤섭 |
남쪽으로 가려진 산벽을 배경으로 고고하게 서 있는 탑을 보면 몇천 년 전의 세월이 어제처럼 느껴진다. 이 삼층석탑은 높이 약 4.7m로 석탑의 크기와 세부적인 양식, 마애여래좌상과의 연계성을 고려해볼 때 고려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용암사지 터에는 절의 규모를 말해주는 듯 돌로 잘 짜인 우물과 절구 형태의 석조, 조성 당시의 유적으로 보이는 석조 부재들이 흩어져 있다. 용암사지 바로 아래에는 부도 2기도 있어 이 절의 규모가 상당했음을 추정하게 한다.
용암사는 통일신라말의 승려 도선국사가 승평(순천) 선암사, 희양(광양) 운암사와 더불어 호남의 삼암사(三岩寺)로 지목한 3대 비보 처 중의 하나로 여길 정도로 중요한 사찰이었다고 한다.
용암사의 창건과 폐사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統和二十五年丁未(통화이십오년정미)'란 글자가 새겨진 명문 기와가 인근에서 발견되어 고려초기에 창건된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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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층석탑과 마애불 마애불좌상에서 바라다 보이는 언덕에는 삼층석탑이 있다. 자연석을 기단삼아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 독특하기도 하고 마애불과 서로 바라보고 있어 당시 사람들의 염원과 불심이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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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또 하나 독특한 모습은 지상에서 약 2미터가량 높이의 자연석 바위 위에 조성되어 있는 삼층석탑이다. 이 석탑은 약 200여 미터 떨어져 있는 마애불좌상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마치 다정한 부부처럼, 또는 형제처럼, 자매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그러나 같은 유형의 유적이 아니고 불상과 석탑이라는 상이한 두 종류의 조화라는 점에서 이를 조성한 이들의 의도가 매우 궁금해진다.
평평한 자연석 위에 조성된 석탑은 가끔 볼 수 있지만 꽤 높은 바위 위에 조성된 석탑은 이곳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아래에서 보면 금방 무너져 내릴 것처럼 위태롭기까지 하다.
기단부를 몇 개의 돌로 개어 평형을 유지하고도 오랜 세월을 버텨 온 것을 보면 불심의 힘일까? 투박하게 몇 개의 단으로만 만들어진 삼층석탑을 보면 뭔가 이질적이면서도 조화로운 균형이 있다.
고려 초기 구정봉 아래에 이처럼 거대한 불상과 석탑을 조성하였을 이들의 염원과 불심이 새삼 느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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