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민심 위에서 바르게 걷기

김나래 2022. 1. 5.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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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를 걷는 것만 기적이 아니다. 땅 위를 바르게 걷는 것도 기적이다.' 16세기 스페인의 수도사가 남긴 글이다.

실현 불가능한 일이 이뤄지는 걸 기적이라고 부르지만, 하루하루 제대로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진짜 기적 같은 일이란 얘기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연이은 실책과 지지율 하락에 선거대책위원회와 당직을 맡은 인사들이 3일 집단 사퇴를 선언했다.

이미 그 전부터 선대위 밖에서 연일 후보 비난을 이어갔던 이 대표 모습 자체가, 어느 대선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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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래 온라인뉴스부장


‘물 위를 걷는 것만 기적이 아니다. 땅 위를 바르게 걷는 것도 기적이다.’ 16세기 스페인의 수도사가 남긴 글이다. 실현 불가능한 일이 이뤄지는 걸 기적이라고 부르지만, 하루하루 제대로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진짜 기적 같은 일이란 얘기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이 문장을 불현듯 떠올린 건, 실시간으로 쏟아진 국민의힘 뉴스 때문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연이은 실책과 지지율 하락에 선거대책위원회와 당직을 맡은 인사들이 3일 집단 사퇴를 선언했다. 그 과정에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의 사의 표명을 두고 진위 공방이 벌어졌다. 김 위원장은 선대위 총사퇴에 앞서 전면적 쇄신을 강조하면서 “‘후보도 태도를 바꿔서 우리가 해준 대로만 연기를 좀 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발언으로 비판의 빌미를 제공했다. 선대위를 진즉에 떠난 이준석 당대표는 거취에 변함없다는 입장만 내놓았다. 선대위 사퇴 사실을 미리 알지 못했던 윤 후보는 이날 밤 “오롯이 후보인 제 탓”이라고 했지만 4일 측근을 통해선 ‘나에 대한 쿠데타’라며 격노했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2017년 대선 이후 국민의힘이 정권을 되찾기 위해 집권 준비를 제대로 해 왔다면 이렇게 우왕좌왕하는 선대위를 꾸리려 해도 꾸릴 수 없었을 거다. 대선 판도의 변곡점이라 할 이 시점에 총괄선대위원장도 사퇴했네 아니네 확인하게 만드는 선대위 모습은 아마추어라고 불러주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다.

윤 후보는 부동산 가격 폭등과 조국 사태 등을 거치며 문재인정부에 분노한 민심에 기대어 제1야당 대선 후보가 됐다. 여의도 정치 경험이 없는 그에게 ‘준비된 대통령’의 모습을 기대하진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국민을 상대로 정치하는 것의 의미는 안다고 생각했다. 국민 앞에서 정책 토론하는 것을 싸움으로 치부하고, 당내 갈등 앞에서 손 놓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에게 정치란 무엇일지 묻고 싶어지게 될 줄은 몰랐다. 매번 발언의 진위를 곱씹고 핵심 관계자를 통해 나온 말을 재해석하며 그의 진심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을 반복하게 될 줄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김 위원장은 박근혜·문재인 대통령을 당선시킨 실패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며 이번엔 윤 후보를 택했다. 실존 정치인 중 노련함 분야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가 ‘연기 좀 해 달라’는 말을 공개 석상에서 하다니,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대통령 될 수 있다’는 오만함을 감추지 않는 모습에 놀라웠다. 이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대표직 사퇴 목소리가 나온 것에도 연연하지 않는 듯했다. 대선을 앞둔 공당의 대표가 당의 결정적 위기의 순간에도 자기 자리에 관해서만 말했다. 이미 그 전부터 선대위 밖에서 연일 후보 비난을 이어갔던 이 대표 모습 자체가, 어느 대선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박근혜 탄핵과 촛불혁명을 거치는 동안 국민의힘은 감히 정권교체를 기대할 수 없는, 무능한 정치 세력으로 낙인찍혔다. 그들에게 ‘정권교체 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의 불씨를 되살려준 건 그들 스스로 뼈를 깎는 쇄신을 잘해서가 아니다. 문재인정부의 정책 실패와 집권 세력의 위선 및 내로남불 행태에 힘입어 가까스로 대선이라는 링 위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뿐이다.

조금은 달라졌을까 지켜봤다. 국민의힘은 집권을 위한 비전도, 능력도, 세력도, 후보도, 어느 것 하나 준비하지 못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대선까지 남은 시간은 60여일. 하루하루를 윤 후보와 국민의힘이 민심이라는 땅 위에 제대로 발 딛고, 민생만 바라보며 똑바로 걸어갈 수 있을까. 제1야당이 선거를 제대로 치르는 것 자체를 기적이라고 여겨야 할 대선을 지켜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김나래 온라인뉴스부장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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