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미중 갈등과 한반도, 이번에는 다르다

2022. 1. 5.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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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현실 진단과 미래 예측에 있어 정반대의 오류가 있다. 첫째는 현 상황이 과거와 유사한 패턴을 보이는데도 이전과 다르다고 믿는 오류다. 둘째는 구조적인 변화를 간과하고 지금 일어나는 일을 예전과 비슷하다고 판단하는 오류다. 미·중 갈등이 일으키는 불확실성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하는 우리 사회가 바로 이 오류에 빠진 듯하다.

미·중 갈등은 세계질서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는 미·중의 전방위적 대립뿐 아니라 그동안 두 나라를 지탱해오던 제도의 균열이 이 갈등과 결합할 가능성 때문이다. 먼저 미국을 보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미국을 세계 최강대국으로 만들었다. 두 제도는 1인 1표제와 시장 거래라는 수평적 관계에 입각해 있다. 독재나 중앙계획경제처럼 수직적 위계로 강제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다. 자유로운 시장 활동으로 경제가 발전하면 중산층이 늘어나고 타협의 문화가 촉진돼 민주주의가 공고해진다. 또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으로 재산권을 보호함으로써 자본주의를 발전시킨다. 거의 모든 선진국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국가임은 우연이 아니다. 이처럼 이 두 제도는 서로를 강화함으로써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자유의 동력이 되었다.

「 미국, 경제적 양극화로 제도 균열
중국은 정치와 경제의 모순 심화
내부가 흔들리는 거인의 대립은
한반도에 커다란 불확실성 요인

우려스럽게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균열할 조짐을 보인다. 경제적 양극화 때문이다. 미국에서 상위 1%에 속한 가계의 소득이 전체 가계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70년대의 10%에서 2010년대에는 20%로 급격히 증가했다. 가장 주된 이유는 세계화와 금융화다. 이처럼 자본주의를 발전시킨 그 힘이 민주주의에 내상을 입힌다는 점에서 이 균열은 구조적이다. 이 두 요인은 경제 효율성을 증가시키는 반면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킨다. 그 결과 미국은 대공황 직전, 혹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과 비슷한 수준의 양극화가 진행됐다. 혹자는 미국의 불평등도가 로마제국 시대와 유사한 수준이라며 경고한다. 높은 불평등이 고착된 자본주의와 정치적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는 동행할 수 있을까. 이 두 제도의 균열이 미·중 갈등에 주는 함의는 무엇일까.

중국의 제도 부조화는 더욱 심각하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이 고성장을 지속한 동력은 자본주의로의 체제이행과 아울러 독재정치가 연성화(軟性化)됐기 때문이다. 연성 독재는 경제적 자유 및 사유재산권을 보장함으로써 성장을 가져왔다. 그러나 시진핑 체제가 들어선 후 체제이행은 멈추었고 정치 권력은 오히려 경성화(硬性化)하고 있다. 중국의 쌍궤제(雙軌制)는 처음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요소를 병존시키면서 점차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를 대체하게 만드는 체제이행 전략이다. 그러나 시진핑 정부에서 국영기업과 은행의 민영화는 중단됐다. 이들마저 사유화하면 공산당 일당독재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수직적인 독재는 자본주의라는 수평적 제도와 충돌한다. 그뿐 아니라 중국의 정치 엘리트는 국유기업 및 금융기관과 유착하여 막대한 지대를 누리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경제적 비효율성으로 귀결된다.

중국의 노동생산성은 미국의 30%대에 불과하다. 1970년대 중반 소련의 생산성이 미국의 60%였음과 비교해도 한참 낮은 수치다. 더욱이 세계은행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9~2018년 동안 중국의 총요소생산성은 연평균 0.7% 증가하는 데 그쳤다. 자본과 노동이 증가하지 않았다면 연 성장률이 0.7%에 그쳤을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이런 성장 방식은 지속되기 어렵다. 중국은 일부 첨단 산업에서 우수한 기술력 및 양호한 인적자본을 보유한 데다 디지털경제로의 전환이라는 호기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체제의 경직성이 이를 허비하고 있다. 더욱이 중국과 공급망을 분리하려는 미국의 정책으로 첨단 산업의 성장 동력이 약화하고 이에 대응해 중국 정부가 대내적으론 사상 통제와 경제간섭, 대외적으론 경제보복에 나선다면 성장률은 더 급속히 추락할 수 있다. 시진핑 정부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무력을 써서라도 대만과 통일하려 할 것인가. 온건한 지도자에게 권력을 넘겨줄 것인가.

미·중 대립은 오래가고 그 파급효과는 세계 패권을 다툰 이전의 사례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경제뿐 아니라 인구와 영토의 대국(大國)이다.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졌던 사례에서 대국과 대국이 맞붙었을 때 패권 경쟁은 더 오래 지속되었다. 대국은 많은 자원을 한꺼번에 동원할 수 있으므로 전쟁에 유리하고 위기에서도 오래 버틴다. 더욱이 민주주의 제도가 결핍된 정부는 힘으로써 이 위협에 대응하려는 속성이 있다. 중국은 내부 모순 때문에 미국의 압박을 더욱 공세적인 대외정책으로 되받아칠 수도 있다. 이처럼 미·중 대립, 특히 중국이 취할 행동에 따라 세계질서는 크게 요동칠 수 있다.

내부 제도가 흔들리는 두 거인이 거세게 대립한다면 세계는 어떻게 변할까. 한반도는 어떻게 될까. 그러나 이 불확실성과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뭘 하고 있나. 올바른 지도자가 되려면 “이번에는 다르다”며 우리 사회에 경각심부터 일깨워야 할 것이다.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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