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명의 파시오네] 한국 창작오페라 르네상스

2022. 1. 5.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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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명 성악가(소프라노)

지난 한 해 우리나라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창작 오페라 작품이 공연됐다. 창작 오페라 한 편을 제작하려면 보통 2~3년이 필요하다. 미리 준비된 작품이 무대에 오르거나 예전에 공연된 작품이 새롭게 조명되며 관객들과 만난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공연예술계 전체가 침체했던 상황을 고려하면 이는 분명 긍정적인 현상이다. 창작 오페라 콘텐트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해 전국적으로 공연된 창작 오페라를 돌아본다. 국립오페라단(박형식 단장)의 서정 오페라 ‘브람스...’(전예은 작곡), 김해문화의전당과 대구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소개된 오페라 ‘허황후’(김주원 작곡), 제주아트센터와 경기도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 제주 4·3 오페라 ‘순이삼촌’(최정훈 작곡),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 무대에 오른 광주 5·18 오페라 ‘박하사탕’(이건용 작곡), 여수 예울마루에서 공연된 여순 10·19 오페라 ‘1948년 침묵’(최정훈 작곡), 창원시립예술단이 선보인 3·15의거 오페라 ‘3·15’(이호준 작곡), 대전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 최초의 아트-팝 오페라 ‘안드로메다’(김효근 작곡) 등이 대표적이다.

「 지난해 왕성했던 창작오페라
역사에 눈돌리고 아이들 주목
올해에도 화제작 계속 나올듯
오페라의 사회적 역할 기대 커

예전에 우리나라 창작 오페라의 주류를 이뤘던 작품도 살펴보자. ‘시집가는 날’ ‘춘향전’ 등 한국적 전통을 오페라로 표현한 작품이 많았다면 요즘의 창작 오페라는 소재와 장르가 다양해지면서 관객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가고 있다. 우리나라 현대사의 비극을 예술적으로 조명한 작품이 많았다는 점이 주목된다. 오페라의 사회적 기능이 다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난해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창작 오페라 ‘박하사탕’. 광주 5·18민주화운동을 다뤘다. [연합뉴스]

오페라는 어렵다는 편견을 깬 작품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키즈 오페라 공연이 활발했다. 오페라 시장의 큰 변화로 평가된다. 예컨대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 온난화 문제점을 아이들의 시각으로 풀어낸 서울오페라앙상블(예술감독 장수동)의 가족 환경 오페라 ‘빛아이 어둠아이’(신동일 작곡)가 초연됐고, 라벨라 오페라단의 키즈 오페라 ‘푸푸아일랜드’가 2년 연속 어린이들과 만나며 호응을 얻었다. ‘푸푸아일랜드’는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을 각색한 작품으로 ‘푸푸송’(서순정 작곡)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노래를 새롭게 추가하며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이강호 단장(라벨라 오페라단)은 “오페라 본연의 음악적 장점은 살리고 작품의 연출적 효과와 접근방식에 차별화를 둔 것이 성공 요인”이라고 말했다.

임인년 새해에도 창작 오페라 공연은 계속된다. 이달 공연되는 대표적인 창작 오페라 두 편 모두 한국문화예술위(박종관 위원장)의 지원사업인 창작산실 당선작이다. 예술위의 ‘올해의 신작’은 매년 심사를 통해 우수 작품을 선정하고 단계별로 지원하는 사업이다. 2021년 당선작인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장총’(안효영 작곡)은 악기가 되려다 무기가 된 졸참나무의 이야기로, 방아쇠를 당기면 수많은 사람을 쓰러뜨리는 장총(長銃)이 주인공이다. 라벨라 오페라단의 ‘검은 리코더’(나실인 작곡)는 2018년 당선작으로서 노인 고독사라는 현대사회의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오는 4월 23일부터 5월 8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질 한국 소극장 오페라 축제에는 두 편의 창작 오페라(신동일 작곡의 ‘로미오 대 줄리엣’, 안효영 작곡의 ‘텃밭킬러’)와 두 편의 외국 오페라(‘비밀결혼’ ‘리타’)가 번안돼 모든 작품이 ‘우리말 오페라’로 공연된다. 한국 소극장 오페라 축제 유인택 위원장(예술의전당 사장)은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위로와 격려로 사랑과 신뢰를 재확인하는 뜻깊은 음악축제가 될 것”이라며 “우리말 오페라만의 장점과 매력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대한민국 오페라 축제(조장남 위원장)에서는 국악과 실내악이 어우러진 ‘부채소녀’(정미선 작곡)가, 국립오페라단 창단 60주년 기념공연으로는 1962년 창단 기념작인 ‘왕자 호동’(장일남 작곡)이 재공연되며 그 의미를 더한다.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의 ‘심청’은 대구 오페라 축제(정갑균 예술감독)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관심을 받고 있다. ‘안드로메다’ ‘순이삼촌’ ‘허황후’ ‘1948침묵’ 등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 더욱 새로워진 모습으로 찾아올 준비를 하고 있다.

2022년에는 제대로 된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까. 기대가 크다. 문화예술계 불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새로운 소재를 통한 장르의 다양성을 추구하며 저변 확대를 위한 노력을 시도해온 한국 오페라계의 창작 활동이 고마울 뿐이다. 흑사병 이후 문화예술의 꽃을 피운 르네상스 시대마저 떠오른다. 임인년 새해에는 한국 창작오페라의 화려한 르네상스를 꿈꿔본다.

강혜명 성악가(소프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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