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라더니..정부, 홍콩 언론탄압엔 "지켜보고 있다" 앵무새 반복

박현주 2022. 1. 4.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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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민주진영 매체 시티즌뉴스(眾新聞)가 4일부터 운영을 중단하는 등 홍콩 내 언론 탄압이 심화하는 가운데 정부는 2년째 홍콩 관련 사안에 대해선 "지켜보고 있다"는 등 원론적 입장만 반복했다. 정부의 기계적이고 소극적인 대응은 문재인 정부가 앞세우는 '선진 외교' 기조와 괴리가 있을 뿐 아니라 차기 정부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홍콩 민주진영 매체인 시티즌 뉴스의 크리스 융 사주 겸 편집국장이 지난 3일 언론 앞에서 폐간을 발표하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홍콩 민주 언론 폐간에...외교부, 또 '앵무새 답변' 반복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4일 정례브리핑에서 홍콩에서 시티즌 뉴스가 폐간되는 등 민주 진영 매체에 대한 탄압이 계속되는 상황에 대한 입장을 묻자 "관련 동향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며 "정부는 우리나라와 밀접한 인적ㆍ경제적 관계를 갖고 있는 지역인 홍콩이 일국양제(一國兩制ㆍ한 나라 두 체제) 하에서 고도의 자치를 향유하는 가운데 주민들의 기본적 권리와 자유를 보장받으면서 안전과 발전을 지속해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혔다.

이는 앞서 지난달 29일 또 다른 홍콩 내 민주 진영 매체였던 입장신문(立場新聞) 폐간 당시 외교부가 밝혔던 입장과 동일하다. '진심으로'라는 수식어가 추가된 게 전부다. 정부는 지난해 6월 홍콩 국가보안법이 통과됐을 때부터 홍콩 내 민주주의 탄압과 관련한 입장을 물으면 토씨 하나 바뀌지 않은 같은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앞서 입장신문은 지난달 29일 홍콩 국가안전처가 전ㆍ현직 편집국장 등 간부 7명을 체포하고 사옥과 간부들의 자택을 압수 수색한 직후 폐간을 결정했다. 나흘 뒤인 지난 2일엔 시티즌뉴스가 "정부 당국으로부터 구성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며 폐간을 발표했다. 이로써 지난해 6월 빈과일보(蘋果日報)를 시작으로 반년 사이 홍콩 민주진영 매체 세 곳이 문을 닫게 됐다.
홍콩 민주진영 매체인 시티즌 뉴스의 크리스 융 사주 겸 편집국장이 지난 3일 언론 앞에서 폐간을 발표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선진 외교' 포장하더니...2년째 우려 표명도 안 해


이처럼 홍콩 내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데 대해 정부가 우려조차 표명하지 않으며 소극적 자세로 일관하는 건 최근 문재인 정부가 '선진 외교'를 임기 내 최대 성과 중 하나로 앞세우는 것과도 모순된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3일 신년사에서 "(한국이) 언론 자유와 인권이 신장된 나라가 됐다"며 "세계에서 인정하는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 대열에 합류하며 더욱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갔다"고 자평했다. 이어 정의용 외교부 장관도 같은 날 신년사에서 "우리 외교가 선진국 외교로 발돋움했다"며 "글로벌 선도국가로서 우리의 새로운 위상에 걸맞게 책임을 다하는 선진외교를 계속 추진해 나가자"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부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수호하는 국가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중국의 아킬레스건인 홍콩 문제에서는 침묵하는 건 언행 불일치나 다름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일 오전 청와대에서 2022년 임인년 신년사를 하는 모습. 뉴스1.


中 인권 문제엔 유독 소극적...차기 정부 부담 우려도


정부가 중국의 핵심 이익이 걸린 사안에 대해 유독 저자세를 보이는 건 5월 출범하는 차기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할 소지마저 있다. 차기 정부가 인권과 민주주의 등 보편적 가치 문제에서 원칙론을 세우거나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려 할 때 상대국이 반발하고 외교적으로 문제삼을 여지를 키우는 것일 수 있어서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북한 및 중국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데만 매몰돼 국제사회의 보편적 의제인 인권 외교에서 자산이 아닌 부채만 남겼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정 장관은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가 중국과 북한 내 인권 문제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지적에 "(한국은) 북한과 중국과는 특수한 관계에 있다"며 "여러 가지 우리나라의 안보와 직결돼서 협력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그러한 (북ㆍ중 인권 관련) 국제적 노력에 직접적인 동참을 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부가 '특수 관계'로 판단한 국가에 대해선 인권, 민주주의 등 보편적 사안에서 선택적으로 침묵해도 된다는 논리로 해석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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