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보기]'예술 하면 밥 굶는다'는 말

2022. 1. 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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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혜리/언론인·문화비평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콘텐츠 산업은 지난 해 눈에 띄게 성장했다. K팝 열풍을 비롯해 게임, 만화, 드라마 등 한류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은 결과다.

특히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 K팝 아티스트들과 ‘오징어게임’,‘D.P.’,‘지옥’ 등 넷플릭스 시리즈, 모바일게임 ‘모바일 배틀 그라운드’ 등은 글로벌 흥행 성공과 함께 K콘텐츠의 경쟁력을 세계에 과시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해 K콘텐츠 산업의 매출 규모가 133조 6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K팝 열풍은 건재하고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온라인 게임 시장도 뜨겁게 달아오른 점으로 미뤄 올해에도 콘텐츠 분야의 성장세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예술 하면 밥 굶는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이제는 틀렸다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장면을 바꿔서 문화 콘텐츠 생산의 주체인 예술가(대중예술 포함)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들여다 보자. 한 마디로 예술활동 상황은 전반적으로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다. 지난 연말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1 예술인 실태조사’(2000년 기준)에 따르면 예술인 개인이 예술 활동을 통해 벌어 들인 연 수입은 평균 755만원으로 3년전 1281만원 보다 526만원 41% 감소했다. 월 100만원 수입도 안되는 예술가 비중은 2018년 72.7%에서 86.8%로 늘었다. 예술활동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전혀 없는 경우도 무려 41.3%나 됐다. 3년 전(28.8%)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예술인 가구의 연간 총 수입은 4127만원으로 국민 가구 소득 평균 6125만원(가계금융복지조사, 통계청)과 약 2000만원의 차이를 보였다. ‘예술 하면 밥 굶는다’는 말 그대로다.

문체부는 예술인 복지와 창작 환경 등을 파악하고, 이를 예술인의 권익 보호와 복지 정책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3년마다 예술인 실태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번에는 14개 예술 분야에서 17개 시·도의 예술인 5109명이 설문에 참여했다. 설문 응답자 중 전업 예술인이 55.1%였다. 모집단을 보면 예술 활동 증명 완료 예술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및 지방자치단체 공모 사업 참여 예술인, 문화 예술 관련 협회·단체 회원들이다.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에 속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인 복지법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예술인 활동 증명서’ 발급이 가능한 사람은 제한적이고, 코로나19 팬데믹 장기화로 공연 등 발표 기회가 사라지면서 예술을 전공하고도 생계 유지를 위해 아르바이트와 허드렛일, 퀵서비스를 하는 청년 예술인들이 부지기수다. 실제 상황은 실태 조사에서 나타난 것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예술인 실태조사의 법적 근거는 ‘예술인복지법’이다. 예술인들의 사회적 지위와 생존권 보장을 위한 법으로 2012년 11월 18일부터 시행 중이다. 이 법은 지난 2011년 1월 29일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최고은씨의 사망을 계기로 제정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를 나와 촉망받는 영화인이었던 최 씨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32세를 일기로 요절했다. 최 씨가 거주하던 다가구주택 문 앞에는 “그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제가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을 좀 두들겨 주세요.”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예술인복집법 시행 10년째인 2022년, 아직도 우리의 예술가들은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 몰리고 있다.

‘예술인’이란 예술 활동을 업(業)으로 하여 국가를 문화적·사회적·경제적·정치적으로 풍요롭게 만드는 데 공헌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문화 예술 분야에서 창작, 실연, 기술 지원 등의 활동을 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했던 백범 김구 선생께서도 기뻐할 정도로 몇몇 분야에서 우리 문화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예술’로 밥벌이도 못하는 예술가가 많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된다.

대통령선거가 코앞이다. 예술인들의 권익을 어떻게 보장하고, 심각한 불균형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다는 말을 하는 후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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