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 공수처는 재설계 외에 답이 없다

박정태 2022. 1. 4.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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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민간인, 야당 정치인 통신자료 무더기 조회로 사찰
논란 빚어 존립 기반 흔들려… 수사권 남용에 위법 소지 다분
공수처 원죄는 무능한 수사력… 1년간 구속과 기소 모두 제로
판사 출신 지휘부에 검찰 출신 기피, 검사 인력 제한이 원인
수뇌부 사퇴하고 대대적 조직 쇄신 나서야…
국회의 법 개정 통해 근본적으로 뜯어 고치지 않으면 폐지론 감당 못할 것

임인년 새해 벽두부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존폐를 둘러싼 여야 공방이 거세다. 지난 연말 공수처가 언론인, 민간인, 야당 정치인들의 통신자료를 무더기로 조회하면서 빚어진 사찰 논란이 격화되고 있다. 야당은 공수처장 사퇴 촉구 결의안을 어제 국회에 제출하는 등 대국민 여론전에 나섰다. 반면 여당은 통신자료 조회가 합법임을 강조하면서 제도 개선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3월 대선과 맞물려 여야가 정치적 잣대를 달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파문으로 촉발된 공수처 문제는 정치적 유불리 차원으로 접근할 게 아니다. 당초 공수처 도입을 반대했던 야당은 차제에 공수처를 해체하라고 주장하나 그건 너무 섣부르다. 그렇다고 야당의 정치 공세로 치부하기엔 사안이 심각하다. 공수처가 무소불위 검찰 견제라는 국민적 여망을 안고 탄생한 신생 조직인 만큼 본질을 직시하고 근본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오는 21일 첫돌을 맞는 공수처의 원죄는 무능이다. 출범 이후 1년간 보여준 게 아무것도 없다. 기소, 구속, 인지수사 건수 모두 제로다. 수사를 완료한 사건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특혜채용 건을 감사원 모범답안에 맞춰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이첩한 게 전부다. 그 외 20여건은 아직도 수사 중이다.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은 성명 불상이 가득 담긴 손준성 검사 체포·구속영장을 3차례나 기각당해 망신을 자초했다. ‘입건 1호 검사’인 이규원 검사 사건은 9개월간 뭉개다 기소를 포기하고 검찰로 되돌려보냈다. 비리 판검사 기소가 공수처 본래 역할인데 존재 이유를 망각한 듯하다.

총체적 난맥상을 보인 공수처의 존립 기반 자체를 뒤흔든 건 사찰 논란이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국회에 출석해 적법한 절차에 의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절차적으론 적법한지 몰라도 실체적으로는 불법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범죄를 대상으로 하는 검찰 경찰과 달리 공수처의 타깃은 3급 이상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다. 언론사 기자와 가족, 교수, 시민단체 관계자는 수사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정부에 비판적인 기자들을 포함해 200명 가까운 민간인들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다. 일부 기자의 경우 법원의 통신영장까지 발부받아 집행했다. 그러곤 기자도 공범이면 수사가 가능하단다. 하지만 원론적 얘기일 뿐이다. 공직자의 공무상 비밀누설죄는 누설 상대방을 처벌할 수 없다. 무슨 사건의 공범인지도 소상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그런 만큼 민간인 수사는 위법 소지가 다분하다. 적어도 수사권 남용이다.

이러니 ‘공수처 이성윤 황제 조사’ 보도 등에 대한 보복 수사로 보일 수밖에 없다. 무차별 저인망식으로 자료를 수집했다고 봐야 한다. 정교하게 환부를 찾아 메스를 대야 하는데 노하우가 없어 실력이 모자라자 멀쩡한 곳을 여기저기 헤집어 놓은 격이다. 국민의힘 전체 의원의 85%인 89명의 통신자료도 조회해 정치적 중립성까지 의심받고 있다. 범죄 모의가 불가능한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까지 털었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공수처 불법 혐의에 대해 수사에 착수한 검찰이 진상을 명백히 규명해야 하겠다.

수사력 태부족은 태생적 한계다. 이는 초대 공수처장과 차장을 수사 경험이 없는 판사 출신으로 앉혔을 때부터 노정됐다. 검사 기피증에 걸린 현 정권이 내로라하는 특수수사통 출신의 처장 후보들을 제쳐놓았을 때부터 원죄의 싹이 텄다. 검찰을 견제한답시고 검찰 출신이 공수처 검사 정원의 절반을 넘지 못하도록 한 것은 실패의 지름길이었다. 검사 인원을 고작 25명으로 제한해 놓고 거악과 싸우라고 한 것도 언감생심이다. 3년 계약직(3회에 한정해 연임)의 검사 임기 역시 조직의 지속가능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근시안적 설계다. 공수처 신규 검사 수급 체계는 검찰처럼 바꾸고, 유능한 소속 검사가 처장직에 오를 수 있는 평생 봉직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지금의 무능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공수처의 권위는 이미 땅에 떨어졌다. 이제는 현 지휘부가 무능과 오명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고, 실력과 명망을 갖춘 적임자를 새로 뽑아야 한다. 아울러 처장의 경우 야당의 복수 추천자 중 한 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정치적 공정성 시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를 위해 국회가 법 규정을 획기적으로 손봐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검찰보다 유능한 공수처가 되기 위한 대대적인 조직 쇄신에 나서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특단의 재설계를 하지 않으면 비등하는 폐지론을 감당하기 어렵다.

박정태 수석논설위원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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