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실패, 뭐 어때?

이영미 2022. 1. 4.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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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시절에 졸업한 선배가 강연을 한 적이 있다.

새해가 되면 항상 그 선배 생각이 난다.

30여년 전 고등학생이 해낸 일을 반백의 나도 실패하고 노년의 그녀도 실패했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 매일의 실패를 툭툭 털고 일어나는 법을 배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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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영상센터장


고교 시절에 졸업한 선배가 강연을 한 적이 있다. 새해가 되면 항상 그 선배 생각이 난다. 전설의 전교 1등이던 선배는 이런 충고를 했다. “눈 뜨자마자 벌떡 일어나라.” 수면 부족을 이기고 입시에 성공하려면 눈 뜨자마자 고민하지 말고 바로 일어나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간단하단 말이지? 오전 7시 보충수업을 듣는 날보다 빠진 날이 많던 내게 선배 얘기는 경이롭게 들렸다.

전교 1등 선배의 조언을 가슴 깊이 새긴 나는 그 후로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벌떡, 하고 일어나기를 시도했다. 그리고 지금껏 30년 넘게 쉬지 않고 실패해왔다. 30여년간 매일같이 똑같은 실패를 반복한다. 중년의 위기를 넘기느라 새벽 운동을 하고 있는데 6개월째 지금 눈을 뜰까, 말까 30분씩 고민한다. 지치지도 않고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자세로, 똑같은 고민을 한다. 이 고민의 시간을 확보하느라 알람은 30분 일찍 맞춰 놓는다. 정말 어리석은 삶이다. 학생일 때는 휴학계를, 직장 생활을 시작한 뒤로는 사직서를 매일 아침 썼다. 물론 마음속으로만 썼으니 나는 아직도 직장인이다.

게으름에 온몸이 늘어질 때는 어느 문인의 말이 생각났다. 그는 밤에 죽을 것처럼 피곤해도 다음 날 아침에는 벌떡 일어나게 된다고, 아침에는 온몸이 근질근질하고 힘이 뻗쳐서 누워 있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소설가 김연수는 건강이 아니라 과잉의 육체를 지녀야 청춘이라고 했는데. 노년의 소설가가 뿜어내는 청춘의 에너지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열정 넘치는 세상에서 게으름을 끌어안고 사는 건 지치는 일이다. 젊은 시절 내내 자책하며 살았다. 지금은 자책은 하지 않는다. 나는 게으른 인간이구나, 그냥 그렇게 생각한다. 체념이랄까, 용서랄까. 어쩌지 못하는 것들은 그냥 받아들인다. 자기를 미워하지 않으려면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을 리도 없다. 다행히 어느 한도 안에서 게으름은 온전히 내 일이다. 나의 게으름이 낳은 피해와 후회는 온전히 내 몫이어서 나 말고 다른 이들에게는 비난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제때 출근은 해야겠지만 말이다.

연말연시 손 가는 대로 읽는 독서 끝에 위안이 되는 문장을 만났다. 그림책 작가 사노 요코가 노년에 쓴 에세이 ‘사는 게 뭐라고’는 이렇게 시작한다. “6시반에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벌떡 일어나는 사람도 있다는데 믿을 수 없다. 일어나서 대체 무얼 하는 것일까?” 그녀는 이렇게 투덜대기도 했다. “7시반에 눈을 떴다. 기분이 몹시 나쁘다. 오늘은 완전히 재수 옴 붙은 하루가 될 듯한 예감이 든다(…) 아침에 상쾌하게 벌떡 일어나는 사람들의 기분을 모르겠다.” 여기 나처럼 하루를 불쾌하게 시작하는 사람이 한 사람은 있었구나. 된통 심술을 부린 문장에 웃음이 났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특히 비슷한 실패를 하는 사람을 발견하는 건 위로가 된다. 30여년 전 고등학생이 해낸 일을 반백의 나도 실패하고 노년의 그녀도 실패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는 성공보다 실패가 흔하다.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다.

새해 결심의 시간이다. 눈 뜨자마자 벌떡 일어나고, 새벽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외국어를 배우고. 작년에도 했고 내년에도 하게 될 결심의 목록을 적어본다. 올해 누군가는 대통령이 되고, 세기의 발견을 하고, 대박을 치겠지. 그사이 나는 365일 치의 실패를 만나게 될 테고. 성공하게 될 모두에게는 미리 존경과 축하를 보낸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 매일의 실패를 툭툭 털고 일어나는 법을 배울 생각이다. 지금의 나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달래가며. 올해도 새해 결심을 하고 있을 나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실패자에게 따뜻한 동지애를 담아 인사를 보낸다. 해피 뉴 이어.

이영미 영상센터장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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