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이젠 정직하게 질문할 때-우린 제대로 가고 있나

2022. 1. 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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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었다.

우리가 아직 답을 얻지 못했다면 질문을 던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아직 큰 믿음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스스로 정직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렌트는 정직하게 질문했고 이내 답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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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었다. 쉬이 물러나지 않는 코로나 탓일까. 새해를 맞는 마음들이 그리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 다부진 각오나 기대보다 근심 서린 시선과 위축된 마음이 먼저 읽힌다. 교회도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세상에는 멈춰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지나온 시간도 막다른 길목에 멈춰 섰을 때라야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막다른 길목조차 하나님의 선물이고 모든 시간은 하나님의 축복일 수밖에 없다.

19세기 말 의료선교사 자격으로 ‘위기의 조선’을 찾은 한 여성이 있었다. 로제타 홀이다. 그는 일기장에 한 글귀를 적어두고는 앞이 보이지 않을 때, 혼돈이 찾아올 때, 마음이 복잡할 때, 길을 잃었다고 느껴질 때 조용히 꺼내 읽곤 했다. “정직한 의심이 반쪽짜리 교리보다 더 큰 믿음이다.” 언뜻 보면 의아한 문구다. 어찌 의심이 믿음으로 귀결될 수 있는가. 의심과 믿음은 공존할 수 없는 가치가 아니던가.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힌다.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야 반쪽짜리 교리에 숨지 않고 스스로 정직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어설프게 믿는 체하며 얼렁뚱땅 넘기기보다 차라리 정직하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용기다. 부족함을 거짓 믿음으로 감추기보다 정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참 신앙이다.

의심은 불신앙의 동의어도 믿음의 반대어도 아니다. 질문의 또 다른 이름이다. 질문 없이 답은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아직 답을 얻지 못했다면 질문을 던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아직 큰 믿음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스스로 정직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갈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맹목적 믿음이다. 믿지 않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이 맹신이며 맹목적 열정이다. 모든 사고를 정지시키기 때문이다. 사유 능력을 잃은 사람은 누군가에게 종속된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는 노예의 삶이지 결코 자유인의 삶이라 할 수 없다.

성서의 일관된 가르침도 ‘노예’(종속적 존재)가 되지 말고 ‘자유인’으로 살라는 것이다. 신영복 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유인이란 ‘자기 이유’를 가지고 사는 것을 말한다. 그저 주어진 대로 살거나 무작정 남을 따라 살기보다는 멈춰서더라도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고 기어코 답을 찾아내는 삶이어야 한다. 최근 다시 소환되고 있는 정치철학의 거장 한나 아렌트는 근본악의 근원을 추적하다가 한 가지 큰 물음 앞에 멈춰 섰다. 무시무시할 줄만 알았던 악의 얼굴이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했기 때문이다. 악의 얼굴이 어찌 저리도 평범할 수 있는가. 그는 충격에 빠졌다. 아렌트는 정직하게 질문했고 이내 답을 찾아냈다. 개개인이 생각하기를 멈추는 순간 인간 사회는 언제든 파멸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 생각하지 않고 사는 ‘무사유’의 삶이 결국 거대악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

아렌트는 새해 첫걸음을 내딛는 우리에게 힘주어 말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사유하고 그것을 표현하며 자기 존재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자기 됨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요, 참 사람다움의 길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창조된 참 인간의 모습이라고 말이다. 무작정 빨리 가려고만 하지 말고 천천히 걷더라도 제대로 된 길인지 물으며 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걷다 넘어지면 어떠랴. 멈춤은 질주하던 삶을 이리저리 고개 돌려 살피게 하고, 넘어짐은 서툴렀던 삶에 깊이를 만들어낸다.

하희정(감신대 객원교수)

약력=△감신대신대원(ThM), 미국 버클리연합신학대학원(PhD) △저서 ‘역사에서 사라진 그녀들’ ‘그들은 휴머니스트였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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