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北도 찬성하니 종전선언 하자"는데..세달째 눈길도 안 준 北

박현주 2022. 1. 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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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외교력을 종전선언 추진에 쏟아붓는 가운데 북한은 굵직한 대외 메시지를 낼 수 있었던 연말연초 계기에 종전선언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임기 말까지 종전선언 드라이브를 멈추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청와대에서 화상으로 열린 '2022년 신년 인사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뉴스1.


"北도 찬성한다"며 끝까지 종전선언 추진


문재인 대통령은 3일 신년사에서 종전선언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아직 미완의 상태인 평화를 지속 가능한 평화로 제도화하는 노력을 임기 끝까지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간 종전선언을 시작으로 평화협정까지 달성할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해온 만큼 문 대통령이 말한 '평화의 제도화'는 종전선언에 대한 의지를 다시 표명한 것으로 볼 소지가 있다.

사실 정부가 그간 종전선언을 밀어붙인 가장 큰 명분은 북한의 호응이었다.

문 대통령은 앞서 지난달 13일(현지시간) 호주 캔버라에서 열린 한ㆍ호주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종전선언에 대해선 관련국인 미ㆍ중ㆍ북 모두 원론적, 원칙적 찬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3일 신년사에서 "지난 역사 속에서도 남ㆍ북ㆍ미를 포함한 평화의 플레이어들이 종전선언을 비롯해, 한반도 평화에 대해 공감하고, 일정한 시간 안에서 같은 방향으로 해결의 의지와 노력을 모은 시점은 그리 자주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북한도 한국 만큼이나 종전선언에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앞서 지난해 12월 29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도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종전선언 제안에 대해 북한은 일련의 신속하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왔다"고 평가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달 1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반도 종전선언을 위한 대토론회에서 축사하는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미끼 던지고 희망 고문하는 北, 의도는?


정부가 이처럼 북한이 종전선언에 찬성한다고 강조하는 근거는 북한 최고위급에서 잇따라 보인 '관심' 때문이다.

지난해 9월 문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한 직후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공정성과 서로에 대한 존중의 자세가 유지될 때 의의 있는 종전이 때를 잃지 않고 선언(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김정은 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대북 적대시 정책과 이중기준의 철회 등 종전선언의 선결 조건을 제시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후로 석 달 넘게 종전선언 관련 침묵을 지키며 정세를 관망하고 있다. 지난달 27일부터 닷새간 진행했던 노동당 전원회의 후에도 종전선언은 물론이고 대외 정세 관련 언급 자체를 자제했다. 애초에 정부가 물밑 접촉 등을 통해 진의를 파악하는 단계를 거치지 못한 채 북한 매체에 공개된 공식 반응을 토대로 '북한도 찬성한다'는 대전제를 세운 것 자체가 다소 무리였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미국 역시 한국과의 협의 과정에서 비슷한 의문을 표했다고 한다. 외교 소식통은 "종전선언 관련 한ㆍ미 간 협의 때마다 미국은 종전선언과 관련한 북한의 진의에 의문을 표했고 이에 정부는 '김 위원장의 공개 발언이 있지 않느냐'는 취지로 설득했지만 미국 측이 쉽사리 납득하지는 못했다"고 전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미국이 종전선언과 관련해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을 북한도 뻔히 아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기조에 발맞추는 행보를 보여봤자 오히려 협상력을 저해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로썬 종전선언 관련 입장을 보류하고 패를 감추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가 개막한 지난달 2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회의에 참석해 사회를 보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동맹 이견, 남남 갈등만 남아...남은 과제는?


이처럼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종전선언에 북한이 호응하지 않으면서 결국 한ㆍ미 간 이견과 남남 갈등만 부각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가 바이든 행정부에 종전선언 추진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북한이 노려온 한ㆍ미 동맹 '갈라치기' 효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실제 정의용 장관은 지난달 29일 "종전선언 문안에 관해 (한ㆍ미 간에) 이미 사실상 합의가 돼 있는 상태"라고 말했지만, 같은 날 미 국무부는 이를 확인하지 않고 "대북 외교에 전념한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해 10월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종전선언 관련 순서ㆍ시기ㆍ조건에 한ㆍ미 간 이견이 있을 수 있다"며 의견 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오는 3월 대선을 앞두고 불거진 종전선언 관련 남남 갈등도 문제다. 종전선언 찬반 여부에 이념적 색채가 덧칠되며 소모적인 정치 논쟁으로 번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종전선언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가운데 또 다른 대북 카드로 보건ㆍ방역 분야의 대북 인도적 지원 역시 꾸준히 검토할 전망이다. 이는 이미 한·미 간에도 큰 틀에서 합의가 이뤄진 내용인 데다 코로나19로 인한 북한의 인도주의 위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인도적 지원의 경우 베이징 겨울 올림픽 등 특별한 정치적 계기가 없더라도 북한이 수용 의사만 밝힌다면 언제든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있다.

외교부는 3일 북한이 전원회의 종료 후 종전선언 관련 언급이 없었던 점 등에 대한 입장을 묻는 중앙일보 질의에 "종전선언 등 다양하고 창의적인 대북관여 방안을 통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조기 재가동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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