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터널의 끝

조효석,문화체육부 2022. 1. 3.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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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석 문화체육부 기자


이른 저녁 아직 사람이 많지 않은 때였다. 젊은 커플이 격앙된 목소리로 식당 직원과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둘 중 하나가 코로나19 백신을 맞지 않은 모양이다. 한두 자리 떨어져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남성이 말하자 직원은 그렇게 해도 신고가 들어간다며 난처해했다. 결국 남녀는 한참을 멀찍이 떨어진 채 애틋하게 음식을 먹었다. 지난 연말 서울 대학로 한 라멘집의 풍경이다.

몇 년 전만 해도 2021년의 끝을 이렇게 그렸던 이는 없었을 것이다. 야근 뒤 인적이 뜸한 귀갓길에서 만난 택시기사들은 “올해는 작년보다 더 심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인들 간 ‘코로나 풀리면 보자’는 인사도 반복하기 지겨워진 지 오래다. 전후 한국 사회를 통틀어 이렇게 차가운 연말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헌법은 우리에게 행복한 삶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지금의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벗과 얼굴을 보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가 없다. 오붓해야 할 연인끼리의, 가족끼리의 자리마저 제약을 받는다. 유례없는 연말을 2020년에 이어 모두가 감당해야 했던 이유는 다들 알고 있듯 명확하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라서다.

엄밀히 말해 정부의 책임은 코로나 확산을 막는 것 자체에 있지 않다. 이 모든 조치의 목적은 의료체계가 붕괴하는 걸 막는 것이다. 중증 코로나 환자가 늘어난 탓에 평소라면 손쉽게 치료할 다른 질병에 걸린 이마저 병상에서 밀려나 어처구니없이 죽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현 조치는 계엄령과 같은 초법적 행정이다. 어쩌면 위헌 요소까지 있는 초법적 행정이 허용되는 건 예외적이고 일시적이라는 전제 아래에서다. 구성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기간과 범위에서만 해야 할 일이다. 이미 그 전제는 무너진 지 오래다. 현 상황은 한시적이지도, 예외적이지도 않다. 진정 두려운 건 익숙해진 마스크만큼이나 우리가 이런 모습에 깊이 적응해 버렸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른바 ‘방역패스’라는 게 정당한 조치인지 이제 묻지 않는다. 시민으로서의 기본권을 보장받는 것이 백신 접종 여부로 판가름나는 일이 일상에 벌어지고 있다. 한시적이라기엔 너무 자주, 반복적으로 그런 일을 목격한다. 국가의 의무는 구성원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만 있지 않다. 구성원이 어떤 모습이냐에 상관없이 국가는 그의 일상을 보장하려 노력할 의무가 있다.

2021년의 마지막 날, 국무총리는 비접종자가 생필품을 사러 대형마트에 가는 것마저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른 시설과의 형평성 때문”이라 했다는 걸 듣고 귀를 의심했다. 3주 전 그는 방역패스를 처음 실시하며 “감염 위협으로부터 미접종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그가 스스로 말했듯 정부가 보호해야 하는 건 시설 간 형평성이 아닌 시민의 권리다.

정부의 선의를 의심하는 게 아니다. 2년 새 하얗게 세어버린 질병관리청장의 머리칼이 보여주듯 공직에 있는 수많은 이들이 상황을 나아지게 하려 애쓰고 있다. ‘위드 코로나’를 유지하려 했다는 대통령의 뜻도 지지율 지키기보다 초법적 상황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데 있었다 믿는다. 다만 물어야 할 건 어떤 방법이 가장 정당하고 정의롭게 사람들의 생명을 잘 지킬지다.

우리는 무한정 연장된 ‘긴급 상황’ 아래에서 무엇을 잃었는지 되짚어야 한다. 별을 보고 출근했다가 별을 보고 퇴근한다는 간호사의 눈물과 빚더미에 올라 생계가 막막하다는 영세 식당 주인의 탄식으로 버텨내는 사회가 정의로울 수는 없다. 오랜 벗과 이웃, 가족과 만나는 것조차 꺼려지는 공동체가 유지 가능할 리 없다.

재작년 봄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 기나긴 터널에서 빠져나올 것’이라고, ‘이후 남을 상처를 지금부터 생각해야 한다’고 같은 지면에 적었다. 아직 터널의 끝은 보이지 않고, 우리는 암흑 속에서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해야 할 말은 같다. 우리는 서로의 남은 상처를 보듬고 어루만져야 한다. 목숨을 지키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조효석 문화체육부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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