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진실을 말하는 것이 곧 혁명이다

2022. 1. 3.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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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훈 (숭실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과)


우주의 기원을 관측할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차세대 우주망원경 제임스웹이 지구에서 150만㎞ 떨어진 지점을 향하고 있다. 웹은 29일간 여행하는 동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벼랑 끝 작업’을 연거푸 펼쳐야 한다. 이를테면 발사 3일 후 웹의 거대한 태양 가림막을 고정해야 한다. 5장 시트로 이뤄진 태양 가림막은 완전히 펴면 테니스장 크기가 된다. 차곡차곡 접힌 것을 펴는 과정이 엄청나게 복잡하다. 140개의 이탈 장치와 70개의 힌지 조립체, 400개의 도르래 장치, 90개의 케이블, 8개의 전개 모터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작동해야 한다. 망원경의 주 반사경 거울을 정렬할 때는 ‘풀이 자라는 속도’보다 느리게 거울을 움직여야 한다. 이 모든 것 중 하나라도 실패하면 100억 달러짜리 최신 망원경은 무용지물이 된다. 과학은 증거로 움직인다. 거짓말하면 금세 들통난다. 우주는 진실의 바다일 수밖에 없다.

과학에 비하면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학문은 그 발전이 너무 느리다. 아직 구석기 시대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2500년 전 사람인 (소크라) 테스형에게 인생 상담을 할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할까. 그런 인간이 진실을 외면하고 부인하며 능멸하기까지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20세기 ‘첨단 철학’ 포스트모더니즘에 그 책임을 묻는 사람이 적지 않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인습의 굴레를 박차고 자유의 지평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큰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그 자유의 끝이 문제였다. 프랑스의 자크 데리다 등 대표적 철학자들은 인간의 의식 활동이 문화적 맥락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에 객관적 진실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진실이라고 하지만 특정인에게, 특정 맥락에서만 진실일 뿐이라고 한다. 그들 논리를 따라가면 허무주의를 피할 수 없다. 우리 행위를 인도해줄 보편적 기준이 없다면 너나 나나 욕망의 나르시시즘에 빠지기 마련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 때문인지 진실을 나 몰라라 해도 부끄럽지 않은 시대가 돼버렸다.

누구나 자신만의 의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진실은 그럴 수 없다. 사람에 따라 진실이 달라진다면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진실이 각자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면 제임스웹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진실을 확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객관주의의 이름으로 무서운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거짓말해서는 안 된다는 한 가지 사실은 안다. 남을 등쳐먹고 잘 살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이 우주적 철칙이 흔들리고 있다.

2016년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탈진실(post-truth)을 꼽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탈진실이란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적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진실이 무의미할 정도로 퇴색됐다는 것이다. 진실을 외면하면 남는 것은 욕심뿐이다. 물신주의가 정신 가치를 박대한 결과가 팬데믹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에 인간은 녹초가 돼버렸다. 이제 기후 이변이 인간을 후려칠 것이다.

탈진실의 끝판왕은 한국 정치다. 막장 드라마의 연속이다. 거짓말과 조작과 후안무치가 성공의 조건이 돼버렸다. 미국의 철학자 해리 프랭크퍼트는 개소리(bullshit)가 넘쳐나는 시대를 한탄한다. 개소리꾼은 상대방을 현혹하기 위해 아무 말이나 씨부렁거린다. 진실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는다. 개소리가 진실을 몰아내는 사회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 대통령선거가 두 달 남았는데 국민의 57%가 양대 정당 후보는 교체돼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개소리나 늘어놓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을 수 없다는 것이다. 탈진실은 파시즘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누가 선거를 민주주의의 축제라고 했던가.

다행히 탈진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탈진실 개념은 진실이 퇴색되고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워하는 심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직 진실은 살아 있다. 더 늦기 전에 거짓말에 맞서 싸워야 한다. 진실이 밝혀지면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이 진실을 두려워한다. 그들의 이익에 이바지할 것인가. ‘1984’를 쓴 조지 오웰은 명백한 사실을 거듭 외치는 것이 지성인의 첫 번째 의무라고 했다. 거짓이 판치는 시대에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곧 혁명이라고 했다. 그렇다. 우리가 방관하지 않으면 탈진실을 극복할 수 있다. 진실을 존중해야 우리 삶이 제 궤도를 찾을 수 있다. 새해 첫 출근날이다.

서병훈 (숭실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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