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증하는 규제·책임 경영·ESG..법조인 출신 CEO가 뜬다

박수호,류지민,윤은별 2021. 12. 29.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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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네이버는 최수연 대표를 선임해 화제가 됐다. 1981년생으로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2005년 네이버(당시 NHN)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4년간 홍보·마케팅 조직에서 일한 후 로스쿨(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법무법인 율촌에서 변호사로 재직하다 2019년 네이버에 재입사해 글로벌 사업을 이끌다가 이번에 깜짝 발탁됐다. 함께 선임된 김남선 CFO도 변호사 출신이다. 그는 서울대 공과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뒤 미국 로펌 크라벳, 스웨인&무어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네이버는 2009년 판사 출신 김상헌 대표를 선임, 8년간 경영권을 위임하기도 했다. 김 전 대표는 2021년 4월 ‘배민’으로 유명한 우아한형제들 부회장으로 합류했다.

법조인 출신 CEO와 경영진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예전에는 법조 고위 관료가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정도였다면 최근에는 젊은 법조인이 경영진으로 발탁되거나 시작부터 사내변호사로 입사, CEO로 선임되는 사례도 다수다. 직접 창업하는 경우도 보인다.

이완근 한국사내변호사회장은 “예전에는 법조인 출신 임원이라 하면 오너 리스크 때문에 검사 출신을 영입하거나 사외이사에 이름 걸어놓고 거수기 역할을 하는 게 전부였다. 지금은 다르다. M&A, 근로기준법, 상장, 투자 유치 등 회사의 중요한 이슈가 생겼을 때를 위해 법조인 출신 발탁을 선호하는 경향이 생겼다. 현직 법조인보다, 사내변호사로 시작해 거의 기업인 느낌의 법조인 출신을 선호하는 식으로 트렌드도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플랫폼 기업 법조인 모시기 바람

▷기술 발전에 따른 법 해석 이슈

최근 재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은 급성장하는 플랫폼 기업의 ‘법조인 모시기’ 바람이다. 플랫폼 사업이 급성장하면서 기술 발전에 따른 법 해석이 이슈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쿠팡은 2020년 10월 로켓배송 소송을 승소로 이끈 강한승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를 경영관리총괄 대표로 선임했다. 판사 출신 강한승 대표는 2017년 쿠팡의 로켓배송 소송을 대리해 승소를 이끈 것을 계기로 쿠팡과 인연을 맺었다. 2015년 10월 기존 택배 업체들이 쿠팡 물류 사업에 대해 ‘미허가 사업’이라며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강 대표는 소송 대리를 맡아 1심, 2심은 물론 대법원 판결까지 2년여 소송전 끝에 최종 승소했다. 이후 강 대표는 쿠팡과 협력하며 다양한 법률 조언을 이어왔다.

업계 관계자는 “법률 자문을 담당하던 법조인이 대표로 취임하는 경우 소송 과정에서 회사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알게 되고 그만큼 빠른 대응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배달 앱 시장 업계 1위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은 2021년 4월 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를 부회장으로 영입했다. 김상헌 부회장은 서울대 법대 학사와 석사 수료, 하버드 로스쿨 법학 석사를 취득한 사법연수원 19기, 판사 출신 법조인이다. 서울형사지법 지적소유권 전담부 판사를 거쳐 LG 구조조정본부 법률고문실 팀장, NHN 경영관리본부장,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우아한형제들은 앞서 2020년에도 부장판사 출신 함윤식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를 고객중심경영부문장 겸 법무실장으로 영입하는 등 회사 핵심 요직에 법조인을 잇따라 중용했다. 회사의 급격한 성장에 따라오는 정부 규제 등 각종 리스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다.

세계 최대 온라인 스트리밍 콘텐츠 기업인 넷플릭스는 2021년 4월 국내 법무담당 총괄로 여성인 정교화 변호사를 영입해 눈길을 끌었다.

연수원 28기로 판사 출신 정교화 변호사는 김앤장 국제중재팀에서 근무하다 2018년 가을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대표변호사로 옮겨 법무와 함께 대관, 사회 공헌 업무를 총괄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단순한 법률 자문을 넘어 선제적 리스크 관리를 포함해 회사 경영이나 정책을 판단·실행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망 사용료 논란 등 국내에서 소송을 진행 중인 넷플릭스 역시 이런 역할을 기대하고 정 총괄을 영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규제가 나오고 있는 블록체인·가상자산 업계에서도 법조인 활약이 두드러진다.

▶신산업 블록체인 업계 법조인 활약

▷이슈와 위기관리 전문가 각광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UPbit)를 운영하고 있는 두나무 이석우 대표는 미국 로스쿨을 졸업하고 2004년까지 외국 변호사로 활동하며 한국아이비엠 고문변호사, NHN 법무담당 이사 등을 역임했다. 이후에는 NHN 미국법인 대표, 카카오 공동대표 등을 맡으며 경영에도 뛰어들었다. 두나무 창업자 송치형 의장은 2017년 업비트를 선보인 지 3개월이 채 안 된 시점에 사업의 안정성을 위해 법률 전문가면서 경영 경험도 있는 이 대표를 낙점했다.

또 다른 가상자산 거래소 프로비트(PROBIT)를 운영하는 오션스의 도현수 대표는 오랜 기간 변호사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도 대표는 14년 동안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기업 인수합병(M&A)과 자본 시장 거래 등을 담당하며 금융 전문 변호사로 전문성을 쌓았다. 중국 최초 가상자산 거래소 비티씨씨(BTCC)의 한국법인 비티씨씨코리아 대표를 맡았던 이재범 변호사, 2021년 10월 블록체인 플랫폼 기업 디알씨모빌리티(DRC)의 총괄 CEO로 선임된 법무법인 명천의 김명보 변호사도 블록체인·가상자산 업계에서 활약하는 법조인이다.

법조인의 기업행은 C레벨 최고위 임원으로 갈 수 있는 고위 법조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법조계 전반에 부는 현상이다. 시니어급 변호사뿐 아니라 이제 막 유학을 마치고 온 주니어 파트너 사이에서도 플랫폼 기업 또는 4차 산업에서 뜨고 있는 기업으로의 진출 욕구가 크다는 후문이다.

정종채 법무법인 정박 대표변호사는 “신생 플랫폼 혁신 기업 입장에서는 규제 관련 이슈나 독과점, 플랫폼 노동자 착취 논란 등 법적 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관련 법제가 정비되지 않은 시점에서 시장에 우호적인 법제도와 여론을 조성하고, 이슈와 위기를 관리할 검증된 법률 전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법조인의 기업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투명·책임 경영 위해 법조인 영입

▷기업 비즈니스 전문성도 갖춰

ESG가 재계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투명 경영·책임 경영 차원의 법조인 영입도 늘고 있다.

롯데그룹은 2020년 말 박은재 율촌 변호사를 롯데지주 준법경영실장(부사장)으로 영입했다. 박 부사장은 컴플라이언스·법률 조직 최고책임자다. 그는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장과 대검 미래기획단장 등을 역임했다. 준법경영실은 법적 측면 리스크 관리와 컴플라이언스 시스템 구축, 지배구조 정책 수립 등을 담당한다. 경영 활동이 법 테두리 안에서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는지를 사전에 점검하고 조율하는 데 변호사가 적임자라는 판단의 결과다.

SK그룹은 수펙스추구협의회에 거버넌스위원회를 신설하며 윤진원 사장을 위원장에 임명했다. 거버넌스위원회는 지배구조 투명성 확대와 더불어 관계사의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가속화하기 위한 조직이다. 윤 사장은 검찰 출신이다. 2008년 SK에 영입돼 윤리경영부문장, 수펙스추구협의회 자율·책임경영지원단장 겸 법무지원팀장을 맡았다.

GS그룹에서는 임병용 GS건설 대표이사 부회장과 조재호 GS건설 도시정비사업그룹장이 검사 경력을 갖고 있다.

임 부회장은 1992년 수원지검 검사직에서 퇴직한 후 럭키금성그룹(현 LG그룹)에 입사했다. 당시 직책은 법률고문실 상임변호사였다. 이후 LG텔레콤 상무와 GS홀딩스 사업지원팀장, GS 경영지원팀장 등을 거쳤다. 조 전무는 2008년 검찰에 사표를 내고 GS건설에 입사해 법무실, 주택영업1팀 등을 거쳤다.

강호성 CJ ENM 대표도 검사 출신이다. 강 대표는 법무법인 두우와 광장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가수 싸이의 군 재입대 사건과 이태란·백지영·주병진 씨 사건을 맡아 엔터테인먼트 전문 변호사로 이름을 날렸다. 2013년 CJ E&M(현 CJ ENM)의 전략추진실 법무실장으로 영입됐고, 지주사 CJ로 이동해 2018년 경영지원총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20년부터 CJ ENM 경영지원총괄을 겸임하면서 준법 경영을 강화해 ‘프로듀스 101’ 투표 순위 조작 사건으로 실추된 CJ ENM의 이미지를 회복하는 데 주력했다.

지난 2019년 운용 업계 최초 30대 여성 CEO로 주목받았던 이수형 파인아시아자산운용 대표는 2021년 6월 연임에 성공했다.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이 대표는 한컴그룹 법무 총괄 변호사로 재직하며 인수합병(M&A) 및 투자업무를 주력으로 담당하다 2018년 파인아시아자산운용에 경영총괄 상무로 합류했다. 이 대표는 취임 이후 주주 갈등과 금융감독원 제재 등 당면 과제를 원만하게 마무리하고 위기관리 능력을 인정받아 연임에 성공했다.

손도일 율촌 파트너변호사는 “기업 경영에서 컴플라이언스의 중요성이 커지고 준법 경영이 중시되면서 법조인의 경영 참여 폭이 넓어지고 있다. 법률적 측면 외에 기업 비즈니스에도 전문성을 가진 법조인을 향한 기업의 러브콜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법조인 CEO 앞으로 더 나올까

▷수요공급 맞아떨어져…창업도 많아

전문가들은 수요공급 측면에서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사법시험이 폐지되고 로스쿨로 법조인을 양성하는 시대가 되면서 일단 전문 인력 공급이 많아졌다. 변호사 시험 합격자 수는 2018년 1599명에서 2020년 1768명으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기업 입장에서도 법조인 선호도가 점점 높아져가고 있다.

IT 기업 텐마인즈의 장승웅 대표는 “자문을 하던 로펌 변호사를 영입, 법무 업무 외 기획, 생산 관리, 신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입했는데 업무 이해도가 빠르고 적응력도 좋아 이후 법조인을 되도록 많이 뽑으려 한다”고 귀띔한다.

또한 앞으로도 기업 경력과 적응력 등에서 인정받는 법조인이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수진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은 “20년 전부터 사내변호사는 물론 기업에 취업해 동등하게 경쟁을 하며 회사 생활을 한 법조인도 많다. 이들이 두각을 나타내며 임원급으로 성장한 사례가 많아 조만간 여건이 맞아떨어질 때 CEO로 선임되는 사례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더불어 스타트업 창업으로 눈을 돌리는 법조인도 증가할 것이라는 인식도 존재한다. 당장은 법률 분야 스타트업, 일명 리걸테크 분야에서는 이미 이런 트렌드가 읽힌다. 비교해보고 변호사를 선택할 수 있게 한 ‘로톡’은 로스쿨 출신 김본환 대표가 창업한 기업이다. 연수원 39기 동기인 박효연, 이상민·남기룡 변호사는 2015년 온라인 법률 상담 스타트업 ‘헬프미’를 공동 창업했다.

새로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법조인 창업 사례도 있다. ‘나만의 맞춤 영양제’로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인 CES에서 혁신상을 받은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는 김앤장 출신이다.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전 디캠프 센터장)는 “실무를 통해 MBA 수업처럼 다양한 기업 성공, 실패 사례를 다루면서 사실상 경영 수업을 했던 변호사들이 규제 혹은 종전 기업이 보지 못했던 시장의 빈틈, 결핍을 발견하면서 논리적인 사고, 법리적으로 해결책을 창업을 통해 해결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박수호·류지민·윤은별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40호·신년호 (2021.12.29~2021.01.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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