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우 칼럼] 다시 公正

이흥우 2021. 12. 22.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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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불만 요인이 커질수록 휘발성 이슈로 떠오르는 ‘공정’
이회창, 두 아들 병역 의혹으로
문재인정부, 조국 사건으로 지지율 하락 변곡점 맞아
배우자 허위 학·경력 논란에 내로남불 시비 휘말린 윤석열
국민 상식 어긋나면 15대 대통령선거 전철 밟는다

코로나19 이후 명품 소비가 큰 폭으로 늘었다고 한다. 한쪽에선 못살겠다고 아우성인데 다른 한편에선 돈 쓸 곳을 찾지 못해 안달이다. 명품 소비 증가는 코로나 장기화에 따른 보복소비 성격이 강하지만 하루하루 버티기 힘든 자영업자·소상공인 입장에선 딴 세상 얘기다. 자영업자의 아우성은 우리 탓에 코로나가 발생한 게 아닌데 어째서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자신들 몫이 돼야 하는가에 대한 공정성, 형평성에 대한 문제 제기다.

공정과 형평의 문제는 사회적 불평등 정도에 비례한다. 사회가, 특히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면 수용할 수 있는 의제까지 사회적 문제로 비화한다. 불평등 정도가 임계점을 넘으면 시위로 번지고, 심할 경우 미국이나 유럽에서 자주 목격되는 폭동으로 확산한다. 정치민주화를 이룬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진국에서 공정과 형평의 문제는 주로 경제적 불평등에서 비롯된다.

일찍이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 대통령은 1936년 대통령후보 재지명 수락연설에서 “한때 우리가 누렸던 정치적 평등은 경제적 불평등 앞에서 무의미한 것이 됐다”고 개탄했다. 제이콥 해커 예일대 정치학과 교수와 폴 피어슨 캘리포니아대 정치학과 교수는 공저 ‘부자들은 왜 우리를 힘들게 하는가’(2012년 발간)에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은 정치적 측면에선 평등할지 모르나 경제적 측면에선 결코 평등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부자를 기득권자로 치환해도 무방하겠다.

코로나19는 전 세계적으로 부자를 더욱 부유하게, 빈자를 더욱 가난하게 만들었다. 파리경제대학 부속 세계불평등연구소(WIL·World Inequality Lab)는 지난 7일 발표한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22’에서 “2019년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부의 대부분이 최상위층에 집중되는 현상이 극도로 심해졌다”고 진단했다. 1995년 세계 자산의 1%를 차지했던 억만장자의 재산이 2021년 3.5%로 증가했다고 한다. WIL에 따르면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상위 10%가 전체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990년대 35%에서 지난해 46%로 11% 포인트 올랐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면 공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이런 환경에선 기회의 공정, 절차의 공정, 과정의 공정, 결과의 공정 문제는 매우 휘발성이 강하다. 특히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고 좌우하는 입시, 취업, 병역의 경우 폭발력이 더하다. 단적인 예가 15대 대통령선거다. 선거전 초반 지지율 50%에 육박했던 이회창 대세론은 이회창 후보 두 아들의 병역면제 의혹이 제기되면서 급전직하한다. 두 아들이 몸무게 미달로 면제받는 과정에서 어떤 불법 흔적도 발견된 게 없었는데 당시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60%이상이 불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이회창의 대응은 안이했다. 그러는 사이 지지율은 20% 초반대로 곤두박질쳤다. 이회창은 훗날 회고록에서 “나는 병역면제 과정에 아무런 위법이 없었으므로 그들(야당)이 문제화해봤자 잠시 시끄럽겠지만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가볍게 생각했다”고 후회했다. 그는 다음 대선에서도 끝내 이 벽을 넘지 못했다.

문재인정부는 조국 사건을 변곡점으로 지지율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조국 사건은 문재인정부의 국정철학인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형해화시키고 20, 30대가 등을 돌리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동시에 검찰총장 윤석열을 제1야당 대통령후보로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윤 후보 배우자의 학·경력 허위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윤 후보는 ‘부분적으론 몰라도 전체적으론 허위가 아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일반 대중은 그렇다 해도 직전 검찰총장이 할 말은 아니다. 부분의 허위로 정경심 전 교수는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고, 최강욱 의원은 1심에서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 수사를 검찰총장으로서 진두지휘한 장본인이 윤 후보다.

공정과 상식을 내세우며 정치에 뛰어든 윤 후보는 후보 수락연설에서 “내 사전에 내로남불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배우자 문제에 대처하는 윤 후보의 자세는 자신이 내세운 가치들과 부합하지 않아 보인다. 유권자도 그렇게 보기에 배우자 리스크가 불거진 이후 윤 후보가 이재명 후보에게 뒤지는 여론조사가 연달아 나오는 거다. 이회창은 국민의 상식을 잘못 읽어 실패했다. 윤 후보가 지금 그 길을 가고 있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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