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첨단이라더니 온통 녹 범벅..美최종병기 '줌월트함' 잔혹사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색이 짙어지던 나치 독일은 1944년 신형 탱크를 개발했다. 길이 10.2m, 너비 3.71m, 높이 3.63m에 무게만 188t인 괴물이었다. 장갑의 두께는 포탑 전면만 220㎜. 어떤 포탄이라도 막아낼 수정도였다. 무장으론 128㎜ 주포와 75㎜ 부포를 달았다. 어떤 탱크라도 부술 공격력이었다. 가공할 무기이지만, 마우스(Mausㆍ쥐)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마우스를 움직이는 심장(엔진)은 무려 하이브리드 엔진이었다. 무거운 무게를 견딜 변속기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치 독일은 마우스가 연합국의 모든 탱크를 박살 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마우스는 시제차량 2대만 만들어진 뒤 폐기됐다. 당시 기술 수준을 넘는 과도한 요구 사항에 마우스의 연구ㆍ개발이 한없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나치 독일의 어떤 다리도 마우스를 감당할 수 없었다. 디젤 1L에 30m를 간신히 가는 연비도 문제였지만, 최고 속도가 시속 20㎞로 굼떴다. 조금만 움직여도 퍼지기에 십상이었다.
마우스는 시작은 창대하지만, 끝인 미약한 무기의 대명사다. 무지막지한 욕심에 스펙을 너무 높이 잡은 뒤 이것저것을 다 때려 넣으려다 실패한 경우다.
그런데 21세기에도 마우스는 존재한다. 미국 해군의 줌월트급 구축함이 대표적이다.
최첨단 스텔스 구축함의 녹 범벅 사진
지난 9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SNS)에 충격적인 사진이 올라왔다. 미국의 줌월트급 구축함의 1번 함인 줌월트함(DDG 1000)이 온통 녹이 슬고, 외부 타일이 상당수가 변색된 상태로 항구로 귀환하는 모습이었다.
줌월트는 스텔스 설계로 지어졌다. 그래서, 모양이 매우 다르다. 우주전함을 연상케 한다. 최신 구축함이 녹범벅이라니.
미 해군은 “작전을 수행하는 혹독한 환경은 아군 함선을 저하한다. 해군 장병은 전투태세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비ㆍ훈련과 함께 부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해군 관계자도 “거친 바다 환경 속에서 녹이 슬기 마련이다. 수리기간에 몰아서 녹을 벗기고 페인트칠을 한다”고 설명했다.
또, 줌월트의 페인트는 레이더 전파를 흡수하고, 타일은 열을 감춰주는 특수 타일이기 때문에 자주 갈기가 쉽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압도적 제해권을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 줌월트급 구축함의 현재 모습으론 초라하다. 녹슨 사진만 보면 줌월트함은 장기 해외원정을 다녀온 듯하다. 그러나, 줌월트함은 5년째 모항인 샌디에이고를 들락거리고 있다.
미 해군은 작전에 투입됐다고 하지만, 사실상 근해를 오가며 여러 성능을 테스트하는 항해였다.
21세기 미국의 마우스는 줌월트급 구축함
줌월트함은 마우스와 여러모로 닮았다.
줌월트함은 무게(만재 배수량)가 1만5000t이다. 현재 미 해군이 보유한 구축함들 중 가장 무겁다. 구축함보다 한 체급 위인 순양함(타이콘데로가급ㆍ9600t)보다 무게가 더 나간다.
최첨단 기술이 녹아있는 구축함이다. 승무원수는 통상 300명에서 절반 수준인 147명이다. 자동화 시스템 덕분이다.
155㎜ 함포인 AGS(Advanced Gun System)는 분당 10발 이상의 포탄을 쏠 수 있다. 사거리는 최대 154㎞. 거의 미사일 수준이다. 수직발사시스템(VLS)은 모두 80발의 미사일을 싣는다. 여기에 헬기 1기와 드론 3기가 탑재된다.
스텔스 설계에 레이더 흡수 도료의 줌월트함은 40% 더 작은 알레이버크급 구축함보다 50배 더 탐지하기 어렵다. AGS도 평상시에선 포신을 포탑 안에 넣고 다닌다. 소음도 아주 적다.
꿈의 구축함이라 불릴만한 성능이다. 당초 설계대로 그대로 나온다면 말이다.
늘어나는 건조비에 13척에서 3척으로 줄여
가상 적국, 특히 중국이 바다의 만리장성인 반접근 지역거부(A2/AD) 방어망을 촘촘하게 쌓자, 미국은 줌월트급 구축함과 같은 ‘최종병기’가 필요했다.
미 해군은 당초 줌월트급 구축함을 13척을 건조하려고 했다. 그러나 척당 44억 달러(약 5조원)나 되는 건조비 때문에 3척으로 줄여야 했다. 이때부터 줌월트급 구축함의 잔혹사가 본격 시작됐다.
1번함 줌월트함이 2014년 진수돼 2016년 취역했다. 미 해군은 비록 3척으로 줄었지만, 줌월트급 구축함을 인도ㆍ태평양에 배치해 중국을 견제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마저 쉽지 않게 됐다.
줌월트함은 2016년 새 모항인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항으로 가려고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던 중 엔진 고장을 일으켜 서버렸다. 결국 인근 해군기지로 예인돼 수리작업을 받았다. 툭하면 고장에 기능장애를 겪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은 차세대 함포인 AGS였다. 줌왈트함은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이 아닌 AGS에 대지 공격을 맡기려고 했다. 비싼 미사일 대신 값싼 함포로 공격하겠다는 의도다. AGS는 함포지만, 순항미사일처럼 먼 거리의 목표에 정밀타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결과는 가격은 순항미사일과 비슷한데, 사거리와 위력은 많이 떨어졌다. 결국 AGS는 폐기됐다. 미 해군은 AGS 대신 극초음속 미사일 12발을 줌월트함에 탑재할 계획이다.
미 의회 회계감사국(GAO)은 줌월트급 구축함이 빨라도 2025년에 정상적인 작전에 투입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줌월트함의 경우 2021년 12월 초도 작전능력을 완비할 수 있지만, 미 해군은 서두를 생각이 없다고 평가했다.
줌월트 교훈 무시하면 '한국판 마우스' 나와
미국은 줌월트함과 같은 21세기 마우스가 제법 여럿 있다.
대형 전투함이 제대로 활동하기 어려운 얕은 수심의 해역과 복잡한 해안선에서 작전하려고 건조한 연안전투함(LCS)은 잔 고장과 높은 비용 때문에 52척 배치 계획이 40척으로 줄어들었다. 2008년 취역한 1번 함인 프리덤함(LCS 1)은 지난 10월 퇴역했다.
차세대 자주포인 XM2001 크루세이더와 차세대 헬기인 RAH-66 코만치도 눈덩이 굴러가듯 늘어나는 개발비를 견디지 못해 미 국방부가 포기했다.
군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씨는 “21세기 미 국방부는 군사혁신(RMA)을 부르짖으며 중국ㆍ러시아 등 잠재 적국을 압도적 기술력으로 누를 수 있는 최첨단 무기를 가지려 했다”며 “무기 개발은 레고블록 쌓듯 기술과 장비만 더하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능력과 기능에 대한 면밀한 검토 그리고 개발과 생산을 위한 비용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줌월트급 구축함의 개발을 끝낼 순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초 계획보다 시간이 더 걸리고 비용이 더 늘어난다면 그만큼 국민의 혈세가 더 낭비되는 셈이다. 또, 개발한다고 하더라도 마우스처럼 하얀 코끼리(white elephant) 신세가 될 수 있다. 하얀 코끼리는 겉은 화려하나 쓸모가 없는 무용지물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마우스로부터 자유로울까? 우리도 줌월트급 구축함과 같은 무기를 만들지 않을까?
박찬준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위원은 “아직 한국판 마우스가 없었지만, 앞으론 마우스의 교훈을 잘 살리지 않는다면 장담할 순 없다”며 “특히 국내 기반기술만 믿고 충분한 검토 없이 국산화 논리에만 매몰된다면 우려할 만한 상황이 올 것”이라고 경계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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