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 좌절시킨 사람은 제갈량 아닌 손권
주유의 꿈

강동의 2인자 주유는 능력과 명분을 모두 갖춘 인재였다. 오나라 개국 공신이자 손책을 도와 강동 지방을 평정한 최고의 장수였다. 야망도 남달랐다. 손책, 손권과 마찬가지로 주유 역시 오나라 땅에 만족하지 않았다. 현재 위치에 안주하려는 잔챙이들과는 그릇이 달랐다. 잘생기고 팔방미인이었던 주유는 장수로서의 판단력과 용기, 실천력이 있었다. 화려한 리더십과 카리스마는 덤이었다. 그는 천하 쟁패를 구상하고 있었고, 손씨가에 대한 의리와 충성심도 높았다.
빼어난 인물이 2인자로 있으면 갈등이 생기는 법. 손권이 왕이 되자 둘 사이에 긴장 관계가 형성됐다. 그럼에도 조조의 침공이라는 국가적 위기가 덮친 탓에 대놓고 반목하거나 알력을 보이지는 않았다.
조조의 침공 외에도 주유가 손권에게 반기를 들지 않은 이유는 하나가 더 있다. 정치 공학적으로 손권에게 상황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손권은 주유가 포섭하지 못하는 토호 세력과 노장 세력 지지를 등에 업고 있었다. 반면 주유는 손책 휘하 노장들과 다소 껄끄러운 사이였다. 오나라의 대장급 장수들인 정보, 한당, 황개 등은 손견을 따르던 부하들이다. 이들은 손책에게 삼촌과도 같은 존재였다. 오나라 노장들에게 손책의 친구인 주유는 조카의 귀공자 친구에 불과했다. 확실한 ‘원 팀’이라고 묶기에는 간극이 컸다.
오나라 노장들의 손견과 손책에 대한 충성심은 손권에게 이어졌다. 반면 이들은 주유는 존중하지 않았다. 적벽대전 당시 주유와 정보는 오나라군을 절반씩 지휘했다. 정보는 처음에 주유를 무시했다. 위기가 코앞에 닥치자 일단 힘을 합쳤다. 그러나 주유를 지휘관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이 일화는 손책의 사망 후 주유의 곤란한 위치를 보여준다.
견제와 무시로 고난을 겪은 주유다. 다만 능력 하나만은 확실했고 오나라를 위기에서 건져낸 것도 사실이다. 아직 젊은 신세대였던 주유는 놀라운 재능과 리더십을 발휘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개성 강한 오나라 노장들을 성공적으로 통솔했다. 훗날 오나라의 핵심 장수로 성장할 여몽의 재능을 발견하고 키워준 이도 주유였다.
유일한 실수는 손책과 마찬가지로 전장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늘 전투의 한복판에 섰다. 덕분에 병사와 부하들의 절대적인 존경을 받았다. 존경의 대가는 컸다. 조인과의 전투에서 그는 화살에 맞았다. 부상은 갈수록 심해졌다. 처음에는 치료가 성공한 듯했다. 그러나 바로 후유증이 그를 덮쳤다. 결국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적벽의 승리 이후 죽음까지, 그사이에서 주유의 야심과 활동은 소설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소설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제갈량과 주유의 라이벌 대전에 온통 지면을 할애했다. 결과적으로 소설의 흥미를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소설과 전혀 다르다.
▶유비 대신 촉 땅 차지하려 한 주유
적벽대전은 조조를 격퇴한 전투가 아니라 조조의 오나라 침공을 ‘겨우’ 막아낸 전투다. 조조군은 형주에서 완전히 물러나지 않았다. 형주는 조조군이 지키는 북쪽 양양과 동쪽의 오나라 점령 지역, 그리고 서남쪽의 유기군 점령 지역으로 삼분됐다.
적벽대전 이후에도 유비는 여전히 손님이었다. 형주는 유기가 계승했고, 유비도 유기를 지원했다. 유기가 후계 없이 사망하면서 유비는 비로소 형주의 남은 땅과 잔존 세력을 계승한다.
이런 구도는 손권에게는 환영이었고, 주유에게는 불만이었다. 주유는 적벽전투 이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는 손권에게 두 가지 안을 내놓는다. 첫 번째는 관우, 장비 이하 유비의 장수와 병력을 자신에게 달라는 것이었다. 유비는 제거할 수는 없으니 군대와 부하를 뺏은 다음 남쪽으로 보내 편히 살게 해주자고 제안했다.
두 번째는 촉 정벌이었다. 물려받은 유비의 병력을 이끌고 촉을 침공해 정복하겠다는 것이다. 이후 천하를 위와 오·촉으로 양분해 조조와 최후의 일전을 겨루자는 방안이었다. 삼국지가 아니라 이국지를 꿈꾸는 천하 양분 지계를 그렸다. 주유가 관우, 장비에게 욕심을 낸 것은 그들의 재능도 재능이지만, 지나치게 물과 늪지에 특화된 오나라 군대의 약점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장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데는 오나라 수군이 유리하다. 그러나 그 이후가 문제다. 촉 땅의 산악 지형에 적응하고 한중을 침공해서 위나라와 싸우려면 오나라의 수군보다는 화북 평원을 달리던 유비의 병력이 절실했다.
손권은 주유의 제안을 거절했다. 핑계는 천하를 제패하려면 천하의 인심을 얻어야 하는데, 유비를 제거하면 인망을 잃는다는 것이었다.
이건 핑계고 진심은 간단하다. 주유의 세력을 키워줄 수는 없다는 것. 주유가 촉을 정복한다고 해서 이국지가 된다는 보장도 없다. 그가 촉에서 독립해 다시 삼국지로 진행될 가능성도 컸다.
또 유비가 호락호락 물러날 사람이 아니다. 관우, 장비가 주유 밑에 들어간다는 것은 더욱 생각하기 어렵다. 주유의 구상은 재기 발랄한 30대 젊은이의 도전 정신과 총기를 보여주지만, 이미 세상은 그 이상의 재능과 신중함을 요구하고 있었다.
유비의 재활용법이 그랬고 성급한 촉 정복론이 그랬다. 그는 아직 손책과 함께 소수의 병력으로 단숨에 강동을 정복하던 쾌감과 감동을 잊지 못했다. 그러나 그 앞에 있는 상대 유비와 조조는 유요, 엄백호와 같은 강동의 지방 세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물이었다. 손권은 주유의 제안을 거절했고, 유비와 동맹을 맺기로 결정한다. 실망한 주유는 단독으로 촉으로 출정하려다 병사했다. 주유의 명예를 위해서는 다행이었다. 주유의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단독 출정은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손권은 지원을 끊었을 테고, 유비가 구경만 하고 있었을 리도 없다.
▶촉과 한중 땅으로 몰리는 영웅호걸들
당시 유비의 전략은 형주의 자기 영역을 안정시키고 군비를 확충하는 것이었다. 장기적으로는 촉 땅의 정벌을 생각하고 있었다. 제갈량과 방통 같은 유비의 최측근 모사들은 이미 천하 삼분 지계를 건의해놓고 있었다. 모두가 천하 쟁패, 조조와 벌이는 최종 결선을 위해서는 촉을 차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조조도 그 위험을 알았다. 촉과 한중이 넘어가면 자신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급부상할 확률이 컸다. 쉴 틈이 없었다. 적벽의 후유증을 치료하기도 전에 관중과 한중으로 눈을 돌리고 대책을 고안했다.
적벽대전은 전주곡이었다. 삼국지는 이제 진정한 본선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38호 (2021.12.15~2021.12.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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