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 주 4일제..'반대'할 이유 없지만 임금 깎으면 '반대'

명순영 2021. 12. 14.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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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이상 직장인이라면 어렴풋이 기억한다. 토요일 오전 회사에서 일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은 주 5일 근무제를 당연하게 여기지만, 이 같은 시스템이 안착한 것은 2004년 7월부터였다.

한 걸음 나아가 주 4.5일제는 어떨까. 13년 전 토요일 반차를 없앴듯, 또 한 번 반차 근무를 줄이는 식이다. 아예 하루를 줄여 주 4일제는 가능할까.

최근 정치권發 주 4일제 논란이 뜨겁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던지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받는 모양새다. 심상정 후보는 당내 경선에서부터 주 4일제를 포함한 ‘신노동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재명 후보는 “인간다운 삶과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주 4일제는 언젠가 해야 할 일”이라고 화답했다.

▶UAE 세계 최초 국가 차원 주 4.5일제

▷일본 등도 노동시간 축소 법제화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이슬람 국가인 아랍에미리트(UAE)가 내년부터 공식 주말을 ‘금요일∼토요일’에서 ‘토요일∼일요일’로 바꾼다. 그러면서 무슬림이 금요 대예배를 여는 금요일 근무 시간은 오전 7시 30분부터 정오까지로 했다. 국제 기준에 주말 휴일을 맞추는 동시에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공식적으로 ‘주 4.5일 근무제’를 도입하는 국가가 됐다. 종교적인 이유가 있으나, 아랍에미리트 정부는 “이번 조치로 주말이 연장되는 효과가 있으며, 국민의 삶의 균형과 복지가 향상될 것”이라고 밝혀 다목적 포석임을 알렸다. 이웃 나라 일본 또한 지난 4월 집권당인 자민당이 주 4일제 추진을 공식화했다. 자민당 방식은 ‘선택적 주 4일제’다. 희망 직원에 한해 주중 4일 근무를 허용하며 급여를 10~20% 정도 삭감하는 방식이다.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가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하며 주 4일제 시행을 적극 반기고 나선 배경이다. 주 4일제는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다. 노동자라면 누구나 ‘적게’ 일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적지 않은’ 임금을 전제로 한 얘기다. 주 4.5일제든 주 4일제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키워드는 ‘생산성’이다. 만약 적은 시간 일하며 생산성을 유지하거나 더 높일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주 4일제에 찬성하는 쪽은 노동시간을 줄일 때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지난 8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1908시간이다. 수치가 집계된 OECD 국가(38개국) 중 세 번째로 많다. OECD 평균 노동시간 1687시간과 비교해도 상당히 많다. 반대로 시간당 노동 생산성은 41.7달러로, 1년 전(40.5달러)에 비해 높아지기는 했지만 27위에 불과하다. 근로시간이 길어 삶의 질도 낮은 데다 생산성마저 좋지 않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근로시간을 줄이면 생산성이 높아질까. 아이슬란드는 국가 차원에서 실험에 나섰다. ‘노동시간이 줄어도 생산성은 그대로거나 높아진다’라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5년간(2015~2019년) 아이슬란드 노동 인구 1.3%에 해당하는 노동자 2500명이 노동시간 단축 실험에 참여했다. 이들은 주당 40시간 근무에서 35~36시간으로 근무시간을 줄였다. 지난 6월 영국의 리서치센터 ‘오토노미’는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아이슬란드의 여정’ 보고서를 통해 “일하는 시간이 줄어도 생산성이 유지되거나 향상됐다”며 “근로자 삶의 질이 다양하게 높아진 것을 파악했다”고 평가했다. 이 실험의 성공으로 아이슬란드 노동 인구 86%가 근로시간을 단축했거나 단축할 예정이다.

과거에도 이런 실험이 있었다. 모바일 게임 회사 스프라이폭스의 게임디자이너 다니엘 쿡은 ‘오래 일하면 생산성도 높아지는지’ 항상 의문을 가졌다. 그는 직접 주 60시간과 40시간 근무자를 나눠 비교했고 재미있는 결과를 얻었다. 업무 초반에는 주 60시간 근로자 생산성이 크게 높았지만 하락 곡선 역시 가팔랐다. 4주 차부터 주 40시간 일하는 근로자보다 생산성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생산성과 업무시간을 엮은 그래프를 두고 학계에서는 ‘다니엘 쿡의 생산성 법칙’이라 부른다.

일은 많이 하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이유를 ‘공허 노동(empty labor)’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기도 한다. 스웨덴 사회학자 로랜드 폴슨이 처음 쓴 이 말은 근로자가 일과 무관한 업무 시간 잡담, 인터넷 서핑 등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뜻한다. 그는 공허 노동을 최소화하고 업무에 집중해야 근로시간 단축을 이뤄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내에서도 주 4일제 실험이 진행 중이다. 교육 기업 에듀윌이 그 사례다. 에듀윌은 2019년 6월부터 주 4일제인 ‘드림데이’를 도입했다. 임직원들은 월요일에서 금요일 중 하루를 자유롭게 선택해 쉰다. 에듀윌은 자체 조사에서 직원 97%가 만족감을 느낀다고 소개했다. SK는 2018년 말 시범 운영을 시작해 2019년부터 SK수펙스추구협의회와 지주회사에서 격주로 주 4일제를 시행 중이다. 배달 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2017년부터 월요일 1시에 출근하는 4.5일제를 시행했다.

설문조사를 보면 주 4일제 찬성 의견이 압도적이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최근 성인 남녀 415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83.6%가 ‘주 4일 근무제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주 4일제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휴식권이 보장되고 워라밸 문화가 정착될 수 있어서’가 72.4%로 가장 많았다. 이어 ‘충분한 재충전으로 업무 효율이 높아질 것 같아서(51.7%)’ ‘건강 관리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32.1%)’ ‘휴일이 늘어 내수가 진작되고 경제가 성장할 것 같아서(21.2%)’ ‘자녀 돌봄 등이 용이해져서(20.1%)’ 등이 뒤를 이었다.

▶근로시간 감소로 실업 늘어날라

▷임금 삭감 동반 땐 반대 의견 우세

하지만 부정적인 의견도 만만치 않다. 근로시간 단축이 시대 흐름인 것은 맞지만 주 4일제는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대세다. 원칙적으로 찬성론을 밝힌 이재명 후보도 시기를 저울질해야 한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앞서 언급했듯 ‘적은 시간을 일하되 적지 않은 임금을 받고 싶은’ 욕구를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문제다.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단위당 인건비는 늘어난다. 고용주는 일자리를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다. 최저임금을 올렸을 때 일자리가 줄어들었던 것과 비슷한 논리다. 일자리가 부족한 한국 경제 현실을 감안하면 주 4일제 시행은 실업률을 더 높일 수도 있다. 부족한 인력을 보충하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을 대거 양산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임금 삭감과 동반된 주 4일제에 대한 여론도 부정적이다. 한국리서치가 지난 10월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51%는 ‘주 4일에 찬성(반대 41%)한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임금 삭감을 동반한 주 4일제’로 물음이 달라지자 ‘반대(64%)’가 ‘찬성(29%)’보다 높아졌다.

52시간 근무제 시행이 겨우 안착했는데, 바로 근로시간을 더 단축하는 게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국회에서 “주 6일제에서 주 5일제로 오는 데도 10년여가 걸렸다. 잘 안착하려면 충분한 공감대가 먼저인 것 같다”며 “논의 과정이 막 시작되는 단계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명순영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38호 (2021.12.15~2021.12.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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