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이 맹활약에 승리한 강원FC, 입맛이 씁쓸한 까닭

이준목 2021. 12. 13.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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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강원FC, 대전하나시티즌 꺾고 1부리그 잔류 성공.. 볼보이 고의 지연 전략

[이준목 기자]

 12일 강원 강릉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1년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 강원FC와 대전하나시티즌의 경기. 강원이 대전을 4대 1로 누르고 1부 리그 잔류를 확정하자 이정협이 팬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2021.12.12
ⓒ 연합뉴스
 
보통 축구 경기에서 볼보이가 주목받는 경우는 드물다. 볼보이의 역할은 말 그대로 공을 빨리 주워서 그라운드에 전달하여 원할한 경기진행을 돕는 역할이다. 가끔 홈팀이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볼보이들이 종종 공을 늦게 전달하는 텃세를 부리는 것이 마치 일종의 '홈 어드밴티지'처럼 인식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축구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비매너 행위다.

강원 FC와 대전하나시티즌의 승강플레이오프 2차전 경기가 펼쳐진 지난 12일 경기에서는 뜻밖에도 볼보이가 최대의 이슈로 떠올랐다. 강원은 이날 경기에서 대전을 4-1로 대파했다.

1차전에서 0-1로 패배했던 강원은 2차전에서도 먼저 선제골을 내주며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렸으나, 전반 26분부터 5분 사이에 내리 3골을 몰아치는 드라마를 연출하며 경기를 뒤집었다. 후반 추가시간에 1골을 추가한 강원은 1, 2차전 합계 전적에서 4-2로 역전하며 극적인 1부리그 잔류에 성공했다.

역대 승강 플레이오프 사상 1차전을 내준 팀이 2차전에서 역전에 성공한 경우는 강원이 역대 최초였다. 지난 11월 16일 정규리그 2경기를 남기고 강원의 지휘봉을 잡은 '명장' 최용수 감독은 FC서울 사령탑 시절이던 2018년에 이어, 다시 한번 소속팀을 승강 PO에서 구해내며 소방수의 역할을 다했다. 극적인 과정과 결과, 완벽한 스토리텔링까지 K리그 역사에 남을 '강릉대첩'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명승부로만 남을 수 있었던 경기는 볼보이들과 구단 팬들의 행태로 빛이 바랬다. 강원이 3-1로 앞선 상황에서 시작된 후반전들어 강원 홈팀 볼보이들이 시간을 지연하는 행위가 속출한 것. 통상적으로 공이 그라운드 밖에 나가면 볼보이를 신속하게 공을 주워서 던져주며 경기가 중단되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대전의 스로인 상황이 돌아왔을 때마다 강원 볼보이들은 선수들이 다가올 때까지 공을 주지 않았다.

심지어 대전의 골킥 상황에서 한 볼보이는 대전 골키퍼 김동준에게 주어야할 공을 반대편으로 던져버리는가 하면, 또다른 볼보이는 아예 공을 줍지 않고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어서 선수가 그라운드 밖까지 뛰어나가 공을 직접 주워와야 했다. 참다못한 대전 벤치와 선수들이 심판에게 거듭 항의했으나 심판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자연히 경기장 분위기는 갈수록 험악해질 수밖에 없었다. 분노한 대전 원정팬들은 물병을 집어던지고 볼보이를 향하여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반면 강원 팬들은 볼보이들의 시간지연 플레이가 나올 때마다 오히려 박수를 치며 격려했다.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자 경기감독관이 뒤늦게 일부 볼보이를 교체하도록 지시했지만 이마저도 신속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경기가 강원의 승리로 끝난 이후 볼보이들은 강원 벤치 뒤에 모여 환호하며 하이파이브를 주고받기도 했다. 수단이야 어찌 됐든 우리 팀이 이겼으니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뻔뻔한 태도에서는, 스포츠맨십이 결여된 행태에 대한 반성이나 부끄러움은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

경기를 지켜본 대부분의 축구 팬들은 강원 볼보이들이 보여준 낯뜨거운 행위에 강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일각에서는 볼보이들의 행동을 축구에서 종종 벌어지는 홈어드밴티지의 일환 내지는 '승강 전쟁의 절박함'이라는 특수성으로 이해하려는 반응도 있다.

홈팀 볼보이들이 시간을 끄는 행위는 K리그 다른 구단이나 해외축구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강원 볼보이들의 행동은 상식적인 정도를 아득하게 벗어났다. 경기 진행을 노골적으로 방해하는 행위를 홈어드밴티지로 미화한다면, 침대축구나 할리우드 액션도 비판할 수 없다.

또한 승강 전쟁이 절박한 것은 강원만이 아니며 대전 선수들과 팬들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구성원들이 이 한 순간을 위하여 일년을 절치부심하며 여기까지 올라왔다. 실력으로 패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정당하지 않은 외부의 방해와 간섭으로 인한 불이익까지 감수해야한다는 것은, 축구에 인생을 바친 모든 이들의 꿈과 노력을 모욕하는 행위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을 안이하게 방치할 경우 언제든 더 위험한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볼보이들의 부적절한 행동이 반복되면서 양팀 선수들의 감정이 격앙되었고, 이전까지 차분하게 진행되던 팬들의 응원전도 험악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심판과 경기감독관, 강원 구단까지 어느 누구도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번 강원 볼보이 사태를 일종의 우발적이고 가벼운 해프닝 정도로 여긴다면 언제든 이런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 이는 선수들의 스포츠맨십이나 팬들의 응원 문화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는 나아가 K리그의 이미지에까지 손상을 입힐 수밖에 없다.

강원 구단은 1부리그 잔류에 안도하기 전에 구단의 공식적인 사과 및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프로축구연맹에서도 이 사건에 대하여 경기진행을 방해한 혐의에 대한 징계를 검토해야할 필요가 있다. 강원 볼보이들의 만행은 2021년을 마감하는 K리그와 한국축구에 남긴 심각한 오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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