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국가경쟁력 갉아먹는 대학 서열화

2021. 12. 13.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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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민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부)


대학수학능력시험 계절에는 어김없이 시끄러워진다. 올해는 ‘불수능’이란다. 너무 쉬워서 물수능이라는 말이 나오더니 어려워지니까 불수능이란 이름이 붙었다. 난이도가 널뛰기하는 것은 예측 가능성을 줄이기 때문에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따지기에 앞서 수능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는 없는가.

수능이 중요한 것은 그 성적에 따라 진학 대학이 결정되고 그것이 수험생의 일생을 결정하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지만, 한국은 특히 심하다. 그 이유는 대학이 단순 서열화돼 있는 데다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하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에서 온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는 우선 혁신 역량 차이 때문이다. 대기업의 혁신 역량은 세계적 수준인데 대다수 중소기업은 한참 뒤처져 있다. 연구·개발 등에서 대학이나 정부출연연구원 등 외부와의 연계가 어렵다. 중소기업 반 가까이가 대기업과 하도급 관계를 맺고 있는데, 대기업이 가격 후려치고 기술 뺏고 사람 빼가는 관행이 여전히 남아 있다. 중소기업은 거버넌스가 나쁘고 직장 문화도 한심한 경우가 많아 유능한 젊은이가 가서 일할 생각이 없다. 진출입이 활발해야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데, 일부 퇴출돼야 할 기업이 ‘좀비(zombie)’로 존속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도 문제다. 비정규직은 급여가 적을 뿐 아니라 지위가 불안정하다. 정규직으로 올라갈 기회보다 그 위치가 고착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비정규직은 직장을 자주 옮기고 훈련받을 기회도 적어서 급여가 올라갈 확률도 낮다. 물론 비정규직 문제는 대·중소기업 문제와 얽혀 있다. 전체로 보아 대기업이나 공공부문 등에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인력은 20%에 미달한다. 그 20% 미만의 취업 기회를 얻는 데 결정적인 것이 대학 학력인데, 그 대학이 단순 서열화돼 있는 것이다.

이런 구도는 여러 면에서 나쁘다. 10대 후반에 한 번 갈린 길이 평생 가는 것은 불공정하다. 20%에 끼지 못한 대다수가 좌절과 불안, 자기비하에 시달리며 살게 된다. 그것은 경제성장에도 나쁘다. 80% 이상의 인력이 평생 훈련과 교육의 기회를 제대로 얻지 못해서 한국인의 인적 자원 역량은 대학 진학 시점에서는 세계 수위를 다투지만, 생산의 주역을 담당하는 중년층에서는 다른 선진국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삶의 불안은 출산율을 낮추어서 재정 부담을 늘릴 뿐 아니라 성장잠재력을 낮춘다.

이런 구도를 어떻게 고쳐야 하나. 우선 대학의 단순 서열화를 고쳐야 한다. SKY대학으로의 집중을 줄이기 위해 비슷한 수준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대학을 육성하는 것이 일차적 방법이다. 중소기업 육성도 중요하다. 중소기업과 외부의 연계를 강화해서 혁신역량을 올리고, 최근 수년간 추진해 온 정부의 혁신조달로 중소기업 혁신 역량을 올리는 것도 방법이다. 하도급 기업의 교섭력을 올리기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강화하거나 최근 도입한 하도급 기업의 단체교섭제도를 보강할 수 있다. 나아가서 중소기업 종업원과 비정규직의 훈련과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좀비기업을 퇴출시켜 진입과 퇴출의 역동성을 올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안전망 강화가 불가피하다.

비정규직 문제는 어떻게 하나. 일각에서 말하는 전체 인력의 정규직화, 비정규직화보다는 장기적으로 해고는 쉽게 하면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유연안전성(flexicurity)’ 쪽으로 가는 것이 방법이다. 한국은 이 개념을 외환위기 이후 도입했지만, 유연성이 우선이고 안전성은 뒷전이었다. 코로나 위기 이후 그런 기조와 다르게 고용보험이 확대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이 문제는 결국 노동시장정책을 위한 정부지출을 늘리기 때문에 재정 부담이 변수다.

물수능 불수능 같은 용어에서 나타나는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수능이 주는 스트레스의 원천은 그 난이도가 아니라 경제 및 사회구조다. 구조적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당장 수능 난이도에 집중해서 해결책을 찾는 것 같은 사고방식은 한계가 명백하다. 그런 식의 사고는 항상 있었지만 ‘정치의 계절’에 더욱 기승을 부리곤 한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에 모두 세상은 보기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제민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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