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그럼에도 사형은 폐지되어야

2021. 12. 12.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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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무도한 강도살인사건이 또 일어났다.

그럼에도 사형은 폐지되어야 한다.

그 당시 10만명당 살인율이 3.09%였는데, 사형을 폐지하고 27년이 지난 2003년에는 1.73%를 기록했다.

'사실상'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명실상부한 '사형폐지국'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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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무도한 강도살인사건이 또 일어났다. 50대 전과자 권재찬이 한 여성을 목 졸라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뒤, 피해자의 신용카드를 이용해 수백만원을 인출해서 썼다고 한다. 권재찬의 범행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이 흉악범은 다음날 공범인 40대 남성을 살해한 뒤 인근에 사체를 유기하기도 했단다.

이 자의 전과가 화려하다. 1992년에는 강도상해죄로 징역 6년, 1998년에는 특수강도강간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2003년에는 강도살인, 특수절도, 뺑소니, 밀항단속법위반 등의 죄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징역 15년으로 감형되어 복역하고 출소했다. 출소한 지 몇 년만에 또다시 이번 강도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20대 초반에 강력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해서 50대 초반이 될 때까지 30년 동안 무고한 피해자 3명을 살해하고 21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이 정도면 19세기에 롬브로조가 주장했던 ‘생래적 범죄인(生來的 犯罪人)’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롬브로조는 이탈리아 의사였다.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그 시절에 롬브로조는 수많은 범죄자의 뇌 뼈를 연구한 끝에 범죄자의 뇌 모양은 그 자체가 다르다며 범죄자는 범죄자로 태어난다고 주장했다. 태어날 때부터 범죄자로서의 소질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생래적 범죄인은 환경에 관계없이 운명적으로 범죄인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이들을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해야 한다.

연쇄살인마 지존파,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 이춘재 등. 이들의 범행이 세상에 드러날 때마다 ‘사형시키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래서 때로는 이들 중 일부에 대하여 사형을 집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쇄살인을 포함한 살인 범죄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번 권재찬의 범행이 드러나면서 또다시 ‘사형’ 여론이 비등해질 것이다. 지금 여론조사를 해보면 사형 찬성 여론이 아마 90%를 넘길 것 같다.

왜 살인 범죄와 같은 강력 범죄는 끊이지 않는 것일까. 정말 ‘생래적 범죄인’은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사형수에 대해 남김없이 사형을 집행하면 이런 범죄를 줄일 수 있을까. 사형이 생래적 범죄인의 범죄 욕구를 억누를 수 있을까.

그럼에도 사형은 폐지되어야 한다.

근대 형법 사상의 기초를 마련한 이탈리아의 법학자 체사레 베카리아는 그의 저서 ‘범죄와 형벌’에서 사형은 법률상으로나 형벌의 효과 면에서 실효를 거둘 수 없기 때문에 불필요하다고 보았다. 다만, 공공선 증진에 효과가 좋은 종신노역형을 최고의 형벌로 쳤다.

캐나다는 1975년에 사형을 폐지했다. 그 당시 10만명당 살인율이 3.09%였는데, 사형을 폐지하고 27년이 지난 2003년에는 1.73%를 기록했다. 사형을 폐지하기 전에 비해 44%가량이 줄어든 것이다.

인혁당 사건을 기억하는가. 박정희 정권은 유신독재에 반대하고 민주주의와 통일을 생각했던 8명을 고문 끝에 간첩으로 몰아 사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18시간만인 1975년 4월 9일 새벽에 모두 사형시켰다.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이들은 2007년에 재심을 통해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는다고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30일 이후, 현재까지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사실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된다. 집행도 하지 않을 ‘사형’이라는 형벌을 굳이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이제 흉악범에 대한 형벌은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형’으로 대신하자. ‘사실상’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명실상부한 ‘사형폐지국’으로 나아가자.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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