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로비' 수사 눈감고..공수처, '법리 논란' 사건만 몰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의 ‘고발 사주’ 의혹 수사를 연내 종결하는 걸 목표로 막바지 법리 검토에 한창이다. 법조계의 이목은 공수처가 그간 압수수색 절차상 위법 논란에 따른 법원의 취소 결정, 세 차례의 체포·구속영장 기각이란 불명예를 딛고 유의미한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지에 쏠려있다. 일각에선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채 법리 싸움에만 골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여전하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은 지난해 4월 손준성 검사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당시 검찰총장)의 지시를 받고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등에 대한 고발장 작성과 관련 자료 수집 작업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이를 김웅 국민의힘 의원(전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후보)에게 전달해 야당이 실제 고발하도록 사주했다는 의심도 받는다.
그런데 공수처가 이제까지 의혹과 관련해 확보한 증거는 ‘제보자’ 조성은(33)씨가 제출한 휴대전화 속 텔레그램 캡처 화면과 그 안에 적혀 있는 ‘손 준성 보냄’이란 문구, 당시 김 의원과 조씨의 통화 녹음파일 정도다. 지난 9월 9일 입건 뒤 수차례 압수수색과 소환조사에도 고발장 작성자와 지시자, 고발을 사주받았다는 야당 관계자 등을 특정하지 못했다. 여권과 가까운 한 법조계 인사는 “갑자기 누군가 ‘양심선언’을 하겠다며 ‘내가 고발장을 작성했다’고 번쩍 손을 들지 않는 이상 이 수사가 성공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와 같은 공무원 직무 관련 범죄는 재판에서 유죄 성립을 두고 치열한 법리 공방이 벌어지곤 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공무원이 남용한 직권이 법령 등에 규정된 직무 권한에 속하는 것이어야 하고 ▶이를 통해 부하 직원에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시키는 한편 ▶해당 업무가 단순 보조를 넘어 법령상 명시된 고유 권한과 직무집행 기준·절차에 위배되는 것이어야 범죄가 성립한다.
여권 인사에 대한 고발장 작성이 손 검사 등의 당시 직무 권한이었는지, 손 검사 휘하 직원들의 고발장 작성 행위가 사실이더라도 법령상 권한 등을 위배한 행위인지부터 따져봐야 할 문제다. 손 검사가 당시 검찰청법상 수사 검사가 아니라 범죄 정보 수집을 담당하며 검찰총장을 보좌하는 신분이었다는 점에서 설사 고발장 작성을 지시했다고 하더라도 직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어서다.
공수처의 이성윤 서울고검장 공소장 유출 의혹 수사는 공무상 비밀누설죄를 다룬다. 수원지검은 지난 5월 이 고검장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긴급출국금지 수사 무마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로 불구속기소했다. 그 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유포된 공소사실 편집본을 단순 ‘비공개 자료’가 아닌 ‘공무상 비밀’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다.
대법원 판례는 ‘공무상 비밀’을 ▶실질적으로 비밀로서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누설에 따라 국가의 기능이 위협받는 것이어야 한다고 좁게 해석하는 추세다. 대개 1차 공판준비기일에서 공개되는 공소사실이 1차 공판기일 전에 언론에 보도됐다고 해서 이를 공무상비밀누설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해석도 분분하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선 “공수처가 차라리 대장동 사건 관련 고위 법조인들을 포함한 정관계 로비 의혹을 입건해 수사력을 집중했다면 세간의 평가가 지금과 사뭇 달랐을 것”(현직 검찰 간부)이란 지적도 나온다.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검사)이 수사 중인 곽상도 전 의원과 권순일 전 대법관, 박영수 전 국정농단 특별검사 등의 ‘50억 클럽’ 의혹에 관해서다. 권 전 대법관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과 관련한 ‘재판 거래’ 의혹으로도 고발된 상태다. 이들 의혹은 모두 공수처 수사 범위에 해당한다.
공수처법 24조에 따르면 ▶다른 수사기관이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고위공직자범죄 등을 인지한 경우 그 사실을 즉시 공수처에 통보해야 하고(2항) ▶공수처장은 통보한 다른 수사기관의 장(長)에게 수사개시 여부를 회신해야 한다. 그러나 이날 현재 서울중앙지검이 공수처에 곽 전 의원과 권 전 대법관의 혐의를 인지했다고 통보한 적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공수처도 지난 10월 검찰에 대장동 관련 고발사건을 이첩한 뒤 손을 뗀 상태다.
이는 공수처가 지난 3~5월 ‘김학의 불법 출금’ 관련 사건을 수사한 수원지검에 줄기차게 이첩을 요구해 오던 것과는 정반대되는 모습이다. 검사의 고위공직자범죄 사건이 아니더라도 현행 공수처법은 공수처장의 의지만 있다면 모든 고위공직자범죄 사건에 대해 ‘공정성’ ‘적절성’ 등을 이유로 이첩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공수처 스스로 범죄 혐의를 인지해야 하지만, 이날 현재까지 공수처가 입건한 사건 중 자력으로 인지한 사건은 0건이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음악 끊고 대뜸 "식약처장입니다"…스벅서 들린 이 소리 정체
- 신분증 사진만 보냈는데 1.6억 증발...은행 간편 서비스의 비극 [목소리 사기, 7000억 시대]
- 폐암 김철민 “덕분에 행복했다” 의미심장 인사 후 올린 사진
- 코로나 꺾이자 성병 퍼졌다…日 6000명 매독 폭증, 무슨일
- 주4일제 실험, 결과 엄청났다…美도 '월화수목일일일' 급물살
- "투자자, 류승룡이었어?" 스타트업 놀래킨 그, 집짓기 나섰다
- "6000원밖에 없다" 이자카야 이어 미용실 먹튀...마스크탓?
- "이건 국가도 아니다" 격한 성토 쏟아낸 尹, 타깃은 대통령
- 덕수궁에 현수막 두른 소 두 마리…집회 온 주인이 두고 떠났다
- "내눈 닮은 딸…코도 하자" 수험생 성형, 엄마가 먼저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