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무기력하고 게임만 하는 청소년 치유법은?

2021. 12. 12.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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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현 가능,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현실적인 것부터 시작


K는 학교를 자퇴한 지 2년 째인 18살 청소년이다. ‘집중이 되어야 공부를 할 텐데 이게 안 되니 너무 힘들다’ 고 병원을 찾았다. 공부를 해보려 해도 안 되고 독서를 해보려 해도 읽히지를 않았다. 유일하게 집중할 수 있는 것은 컴퓨터게임이라 거의 종일 침대에 누워 있거나 게임만 한다고 하였다. 이런 행동에 부모님이 지적을 하면 매우 공격적으로 변하여 감당하기 힘들었다.

K는 어려서는 말을 잘 듣고 고분고분 하여 공부도 시키는 대로는 잘 했다. 그런데 중학교에 가서 공부가 어려워지다 보니, 잘 할 수 있는 ‘운동’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운동도 지속하는 것이 힘들어지자 다시 공부를 해보겠다며 고집을 부려 자퇴를 했다. 외동인 K에게 기대가 컸던 부모였지만 이제는 거의 포기하는 마음으로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 왜 그때 공부를 포기하고 운동을 했을까? 왜 그때 운동을 배우다가 중단했을까? 왜 자퇴를 했을까? 과거를 되새김질하다가 하루가 갈 때도 있다. 이럼 때면 너무나 우울해지고, 자신을 잘 이끌어 주지 못한 부모님에게 화가 나고 원망스러워진다. 이럴 때 부모님이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말씀을 하시면 화가 폭발하고 모든 원망을 부모님께 쏟아냈다. 그리곤 자책하여 괴로우면 게임에 몰입하게 된다.

게임을 하면서는 학교 다니는 친구들과 소통도 하고 꽤 게임을 잘한다고 인정도 받으면서 기분도 좋아진다. 당연하게도 이런 기분을 일시적이라도 느낄 수 있으니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당연히 다시 게임을 찾게 된다. 행동의 정적 강화가 이루어진 거다. 하지만 ‘이렇게 인정받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잠시’ 시간이 흐르면 게임에 시간을 낭비한 자신을 책망하고 실망하게 되면 우울한 기분은 더욱 심해진다. 또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고교 졸업장도 없는데 대학은 가야 할 텐데, 미래엔 직업을 가질 수는 있을까, 뭘 먹고 살아야 할지 불안한 마음에 생각에 생각의 꼬리를 물게 되고 생각을 되새김질을 하는 ‘반추’에 빠진다.

게임이나 반추는 모습은 다르지만 ‘우울감에서 벗어나려는’ 회피행동으로 기능적으론 한가지이다. 행동을 분석해 보면 A:선행사건(지난 일에 대한 후회) ->B:행동(게임하기) ->C1:단기 결과(우울감을 잠시 잊기) C2: 장기 결과(자책과 더욱 심한 우울감)로 이어지고 결과에 의해서 다시 우울해지는 정적 강화가 이루어지는 ABC->A 악순환 고리가 형성됨을 알 수 있다.

K를 객관화해서 볼 수 있게 해보자. 이는 K에게 질문을 던지고 행동의 결과들을 스스로 되짚어 보아야 한다. 악순환의 고리를 선순환으로 바꾸기 위해 ABC 중 선택이 가능한 단계는 무엇일까? 묻는다. A 단계 즉 ‘지난 일에 대해 후회되는 생각’을 멈추거나 가능할까? 대개의 경우 생각을 바꾸거나 멈추는 것은 일시적으로 가능할지 모르지만 생각을 안 하려고 할수록 더욱 강하게 떠오르기 마련이다. C 단계는 행동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이므로 선택할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K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단계는 B 단계 즉 행동일 뿐이다. 행동은 K가 선택할 수 있다. 행동치료의 기본 원리이다.

K에게 묻자. 지금 고민하는 문제들이 보두 해결된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즉 어떤 가치가 K에게 소중한지를 물어보자. K는 유능하고 힘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다. 보통 무기력감, 우울, 불안 문제가 해결되어야 내가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가치에 부합하는 행동을 할 때의 느낌을 체험할 때도 기분이 나아진다. 하지만 K도 역시 ‘내 기분이나 집중력이 나아져야 무언가 할 수 있다’ 는 생각에 갇혀 있었다.

그 다음엔 자신의 하루 일과와 그 행동을 한 후의 기분을 모니터링하는 일지를 써서 실제 일상 생활에서 하고 있는 활동을 객관화보고 그때의 기분과 연관해서 관찰해 본다. K의 경우엔 처음엔 일과의 대부분이 침대에 누워 있기, 게임하기였고, 게임 할 때 잠시 기분이 나아질 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유능감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 지금은 ‘게임’뿐이었던 거다.

자신의 가치에 부합 되는 행동을 찾아서 행동을 해보자 했을 때 K의 첫마디는 ‘공부해 보기’였다.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지금까지도 수차례 시도했지만 실패했던 일을 다시 반복하려 하는 것이다. 시도하고 실패하고를 반복하면서 스스로 ‘나는 무능해’‘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라는 열패감에 빠져 왔던 것임에도.

이때 가치에 부합되는 행동은 아주 잘게 쪼개어, 실현이 충분히 가능하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현실적인 것이어야 한다. K는 먼저 건강해지려는 운동을 하기 위한 운동화를 고르러 쇼핑을 나가는 활동부터 시작해 보기로 하였다. 그러면서 기분이 나아짐을 경험하면서 유인적으로 그 다음 행동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너무 힘들고 거창한 계획을 세우면 거의 100% 또 다른 좌절을 경험하고 더욱 ‘무능한 자기’에 고착된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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