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에 '반역'까지..종전선언 지지 여부가 평화-반평화 기준인가[뉴스원샷]

유지혜 2021. 12. 12. 05: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21주년 기념식 및 학술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오른쪽)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지혜 외교안보팀장의 픽 : 평화 양분법

내년 3월 치러질 대선을 두고 벌써부터 ‘정책 대선’은 이미 글렀다는 자조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실제 대선과 관련해 나오는 보도들 대부분이 수사와 관련된 사안이거나 후보 부인들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들이다.

특히 유권자들의 관심이 큰 국내적 상황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 외교ㆍ안보 분야는 더 그렇다. 그런 와중에 단편적으로 특정 주제를 단순화해 부각하는 것은 더 위험하다. 종전선언이 그럴 수 있다.

중앙일보는 지난 7일 주요 대선 후보들에게 종전선언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어느 후보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종전선언과 관련한 정책 연속성을 파악할 수 있고, 후보들의 대북관을 살펴보는 기회도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선후보 4인의 종전선언 각론 평가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각 후보 캠프 취합]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전쟁 종식을 합의하는 일반적인 방식은 평화협정의 체결이지만, 평화협정 체결로 가는 로드맵의 초기 단계 조치로서 상대적으로 합의가 용이한 정치적 선언으로서 종전선언 추진이 필요하다”며 지금 종전선언이 추진돼야 한다고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이런 중차대한 일에 대해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종전선언은 북한 비핵화가 실질적 진전을 이뤘을 때 ‘논의’를 시작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며 현재로썬 종전선언 추진이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보였다.

양쪽 입장 모두 일리가 있다. 북한이 미국의 조건 없는 대화 제안은 무시한 채 핵 능력을 강화에 골몰하는 상황에서 대화의 물꼬를 틀만 한 특단의 노력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고,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담보되지 않는 종전선언은 공허한 구호일 뿐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종전선언에 대한 입장 차이가 ‘평화 양분법’으로 흐르는 것은 그래서 우려스럽다. ‘문재인식 종전선언’에 찬성한다고 평화 옹호론자이고, 반대한다고 평화 반대론자라는 식의 접근이다.

특히 지금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종전선언은 실질적 종전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인정하듯 이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으로서, 종전선언을 하더라도 정전협정 체제는 그대로 유지된다. 그러니 ‘종전선언 반대=종전 반대’라는 논리도 사실 맞지 않는다.

대구·경북(TK)을 찾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1일 오전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였던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기념관을 찾아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후보는 11일 경북 칠곡 다부동 전적기념관을 찾아 참배한 뒤 즉석연설에서“대한민국 정치인이 종전을 위해서 노력하진 못할망정 종전 협정, 정전의 종결을 반대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일본이 종전선언에 반대한다는 점을 언급하며 “친일” “반역행위” 등의 표현까지 썼다. 누굴 저격한 발언인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이미 설명했듯이 지금 추진되고, 이재명 후보가 찬성한 종전선언은 ‘협정’도 아니고 ‘정전의 종결’도 아니다. 문 대통령도 “언제든 되돌릴 수 있다”고 했다.

또 현재 국내에서 종전선언에 신중한 이들 대부분은 ‘비핵화가 다뤄지지 않는 종전선언’을 우려하는 것이지 종전선언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일단 종전선언을 해버리고 난 뒤 비핵화 협상은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른다는 점을 주목하는 것이다.

이재명 후보도 비핵화의 필수 불가결성을 잘 알고 있다. 중앙일보 답변지에서 “종전선언이 그 자체로 독립적인 하나의 행사로 끝나지 않고 한반도 평화 증진의 중대 계기로 작용해야 한다”고 했는데, 역시 종전선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이를 시작으로 비핵화 프로세스가 이어져야 한다는 입장인 셈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1일 오후 강원 춘천시 강원도당에서 열린 강원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스1

가장 큰 차이는 종전선언이 정말 비핵화의 입구가 될 수 있느냐인데, 이는 상당 부분 북한에 달린 문제다. 이에 동의하는 이재명 후보와 이는 희망적 사고일 뿐이라는 윤석열 후보 중 누구의 생각이 옳고 그르다고 섣불리 말할 수 없다.

한반도에서 비정상적인 정전 상태가 끝나고 평화체제가 확립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 북한 비핵화가 필수라는 데 반대하는 이들도 없을 것이다.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도 여기서 이견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접근법의 차이를 두고 난데없이 일본까지 끌어들여 종전선언에 반대하면 ‘친일’이라거나 ‘반역’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그래서 다소 아쉽다. 아무리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는 게 선거라고 해도 외교ㆍ안보 분야의 발언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된다면 직접 만나 악수하고 협상해야 할 상대국 정상들도 지켜보고 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